Originally posted 2024-01-18 14:23:18.
꾸란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정확한 출처 때문에, 계시서 중 구약성서나 신약성서와는 함께 나눌 수 없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구약성서와 복음서가 현존하는 형태로 전해지기 전에 변질이 있었다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선지자 당시 바로 기록 되었다는 간단한 이유 만으로도, 꾸란은 여기에 해당되지를 않습니다. 앞으로 이 경전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그 과정을 살펴 보겠습니다.
여기에서 꾸란과 성경을 구분할 수 있는 차이점은 결코 그 시기와 관련된 문제들 때문만은 아닙니다. 유대 기독교와 꾸란 계시가 기록되었던 시대에 만연한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어떤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런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들은 선지자에게 꾸란이 계시된 당시 환경을 똑같이 무시합니다.
서기 7세기 경전 내용이 십 오 세기나 더 오래된 다른 경전보다 변질되지 않고 전해질 가능성이 더 높다고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더 최근 것 인 꾸란 내용을 인간이 수정할 수 있다는 염려가 적다는 인식을 강조하기 보다는 수세기를 지나오면서 유대 기독교 경전에서 저지른 변질을 변명하려는 것일 뿐입니다.
구약성서의 경우 기독교 이전 시대부터 어떤 책은 그 내용이 변질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전하는 저자 들 수가 진짜로 많기 때문에 부정확하고 모순됩니다. 복음서가 예수의 충실한 어록 이라거나, 혹은 그분의 행동이 변질되지 않고 사실대로 기록되어 있다고 어느 누구도 주장할 수가 없습니다. 이 경전의 연속 판에서 정확한 출처가 빠져있고 그 저자들이 목격자가 아니었음을 앞에서 알아 보았습니다.
또한 강조해야 할 사항은 일종의 계시 기록서로서 꾸란과 무함마드의 언행을 수집해 놓은 하디스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지자의 교우들 중에는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부터 하디스를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실수가 담겨 있을 수 있으므로, 그 선집에 심한 비판을 가한 뒤에야 그 자료를 실제로 믿었습니다. 여니 복음서처럼 하디스의 출처는 매우 다양합니다.
꾸란 상황은 매우 다릅니다. 계시가 계속됨에 따라 선지자와 그 교우들은 그 내용을 암송하였고, 또한 그들 중 필기자 들이 이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서에서는 부족했던 두 가지 출처를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이 일은 선지자 무함마드가 사망할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글을 쓸 수는 없었지만 암송할 수 있었던 시대에 경전 결정판을 편집할 때 암송을 통하여 이중 점검이 가능했기 때문에, 상당히 이로웠습니다.
꾸란 계시는 천사 장 가브리엘이 무함마드에게 전한 것입니다. 이것은 선지자 생시에 수라 (Surah, 장) 96의 첫 번째 절로 시작해서 향후 3년간의 공백이 있은 다음 서기 63년 사망할 때까지 20여 년 긴 기간, 즉 헤지라 (Hegira)1) 이전 10년부터 이후 10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다음내용이 최초의 계시입니다 (96장 1-5절)
“읽어라, 그대를 창조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들러붙은 것에서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다. 읽어라, 그대 주님은 가장 고귀하시며, 펜으로 가르치신 분이자,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을 가르치신 분이다.”
하미둘라 교수는 꾸란의 불어 번역판 머리말에서 이 첫 번째 계시 주제가 ‘꾸란을 기록하여 보존하려는 선지자의 관심을 설명해 줄 인간의 지식 수단으로써 펜의 찬미’ 였다고 언급합니다.
선지자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향해 떠나기 (헤지라) 훨씬 전에, 그때까지도 계시된 꾸란이 기록되어 왔음을 그 내용으로 정히 증명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얼마나 꾸란이 믿을 만한지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무함마드와 주변 교우들이 계시 받은 내용을 암송하는 습관이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꾸란에서 현실과 맞지 않은 사실을 언급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선지자를 따르는 사람들이 복사자 들 에게 물어서 그 내용을 매우 쉽게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께서 서기 622년 메카로 떠나기 전, 즉 헤지라 이전 시간에 계시 된 네 장에서 꾸란이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겠습니다
(80장 11-16절)
“결코! 진실로 이것은 경고의 말씀이니, 원하는 자는 이를 기억할 것이다. 영예롭고 고귀하며 정결한 판들에 경건하고 선한 필기자들의 손으로 (기록된).”
1934년 유숲 알리 (Yusuf Ali) 는 영문 번역판 주석에서 이 장이 계시 되었을 때는 꾸란 전체 114장 중 모두 42장이나 45장이 이미 기록되어 있었고, 무슬림들이 이를 잘 보존하였다고 말합니다.
— 85장 21-22절: “아니, 이것은 영광스런 꾸란 [암송] 이다 보존된 판에 (새겨진).”
— 56장 77-80절: “이것은 숭고한 꾸란 [암송] 이다 잘 보존된 책에. 청결한 자들만이 만질 수 있다. 이 책은 온 세상의 주님께서 내려 보내신 계시이다.”
— 25장 5절: “그들은 ‘그가 기록한 것이 조상의 이야기로 아침 저녁으로 받아쓰게 한 것이다.’고 말한다.”
이 내용은 적들이 선지자를 ‘사기꾼이다’ 라고 비난한 언급입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옛날 이야기를 그분이 받아 베껴서 기록 해 두었다거나 복사하게끔 했다 (이 말의 뜻은 논쟁이 될 만도 하지만, 선지자가 문맹자 이였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는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어찌됐든, 무함마드의 적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기록해 적어두었다는 이런 사실을 위 구절에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헤지라 이후 계시된 한 장에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내용이 기록되었음을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 98장 2 – 3절: “하나님 선지자가 정결한 판 들을 암송할 것이니 그 안에 올바른 명령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꾸란 그 자체에서 선지자 당시에 이를 기록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분을 따르던 여러 필기 사 들 중에는 후대에 가장 널리 명성을 떨친 자이드 이븐 사비뜨 (Zaid Ibn Thabit) 가 있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기정 사실입니다.
하미둘라 (Hamidullah) 교수는 꾸란의 불어 번역판 (1971년) 머리말에서 꾸란이 기록된 당시부터 선지자가 사망할 때까지 상황을 잘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꾸란의 일부분이 계시될 때마다 선지자는 글을 알고 있는 교우들을 불러 받아쓰게 하였으며, 동시에 이미 계시 받은 부분에다 새로운 것의 위치를 정확하게 지적하였음을 모든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선지자는 필기 사 에게 받아쓰게 한 것을 다시 읽게 하여 어떤 결함이 있을 경우에는 이를 수정할 수 있었다는 언급이 있다…
또 널리 알려진 다른 이야기는 매년 라마단 단식 달에 선지자는 (그때까지 계시 받은) 꾸란을 전부 가브리엘 천사 앞에서 암송했으며…
선지자가 사망하기 전 마지막 라마단 달에 가브리엘은 그분께 두 번 암송해 주었다…
선지자 생시 이래로 무슬림 들이 라마단 달 밤에 보통 예배 외 특별 예배 중에 꾸란 전체를 암송하는 습관이 있었음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몇 가지 자료에서 덧붙일 수 있는 사실은 무함마드의 필기 사 자이드가 경전의 최종 수집 작업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마찬가지로 다른 수많은 무슬림 들이 이 일에 참여했다.”
이처럼 최초 기록 당시에는 매우 여러 가지 재료들이 사용되었습니다. 즉 양피지, 가죽, 나무 판, 낙타 어깨뼈, 매끄러운 돌 등입니다.
그렇지만 이 와 동시에 무함마드 께서는 충실한 신자들에게 꾸란을 암송하라고 권하였습니다. 그들은 예배 중에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분을 암송이나 낭송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꾸란을 전부 기억하여 남에게 전하는 하피즈(Hafiz, 암송 자) 가 생겼습니다. 경전을 기록하고 동시에 암송하여 이중으로 보존하게끔 한 방법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선지자가 사망하고 (632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슬람의 초대 칼리프 아부 바끄르 (Abu Bakr) 는 무함맏의 주 필기 사 자이드 이븐 사비뜨에게 사본을 하나 만들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우마르 (Umar) (차기 칼리프) 의 제안으로 자이드는 메디나에서 수집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구하였습니다. 즉 하피즈의 증언과 각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여러 재료에 적힌 경전의 사본으로서, 이 모두가 사본을 만들면서 생길 수 잇는 실수를 면할 수 있게 끔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매우 믿을 만한 경전을 소장할 수 있었습니다.
643년 아부 바끄르의 후임자, 칼리프 우마르는 한 권 (무스하프, mushaf) 을 만들어 보존하고 있다가 죽을 때 자기 딸이자 선지자의 미망인, 하프사 (Hafsa) 에게 주었다고 여러 자료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의 3대 칼리프 우스만 (Uthman) 은 644년에서 655년까지 칼리프 직에 있으면서 전문위원회에게 자기 이름을 담은 대 교정을 준비하라는 위임을 부여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때까지 하프사가 소유하여 보관하고 있던, 아부 바끄르가 준비한 기록의 출처에 대하여 점검했습니다.
그리고 위원회에서는 경전을 전부 외우고 있는 무슬림 들과 심의를 했습니다. 경전의 정확성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 매우 엄격하게 적용되었습니다.
논란의 대상이 될 만한 구절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도록 증인들의 동의가 필요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 시효에 대하여는 꾸란의 어떤 구절이 다른 구절을 어떻게 바로 잡는지는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예언자의 활동 기간이 이십 년 이상이나 계속되었음을 기억한다면, 쉽게 설명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앞에서 언급했듯이, 라마단 달에 예언자가 꾸란을 전부 암송한 장 순서 그대로 경전이 보존 되었습니다.
혹자는 세 명의 칼리프, 특히 우스만이 경전의 수집과 교정을 맡은 동기에 의문을 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즉 무함마드 사후 불과 몇 십 년 동안 이슬람의 팽창이 매우 급속하여 신자 중에는 모국어가 아랍어가 아닌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원전을 손상하지 않고 그대로 전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절대적이었으며, 우스만의 교정은 바로 여기에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우스만은 몇 권의 교정판을 이슬람 제국의 중심지로 보냈으며, 하미둘라 교수에 따르면, 그리하여 타쉬켄트 (Tashkent) 와 이스탄불 (Istanbul) 에서 그것들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복사 과정에서 한 두 가지 가능한 실수는 그렇다 하고, 이슬람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는 오늘날 최고의 기록들이 모두가 똑같으며, 유럽에 보존된 기록들 (파리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서기 8, 9세기, 즉 헤지라 2, 3세기에 기록된 것들) 도 마찬가지 입니다.
현존하는 수많은 옛 기록들이 극히 미미한 경우를 제외하고 경전의 전체 의미가 결코 변질되지 않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문맥상 가끔 한 가지 이상 해석이 가능할 경우에는 옛날에는 필기가 오늘날보다 더 간단했기 때문에 당연합니다.
총 114장은 각 장 별로 길이가 줄어드는 순서로 배열되었으며, 그 중에 예외도 있습니다. 계시 연대기의 순서에 따르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그 순서가 알려져 있습니다. 가끔 상당한 내용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경전 여러 군데에서 언급되어 있습니다.
매우 자주 한 구절이 불완전한 형태처럼 보이는 내용을 상세하게 보충할 수가 있습니다. 꾸란에는 다른 많은 주제들처럼 현대 과학과도 관련된 모든 내용이 유사한 것끼리 구분되지 않고 여기저기에 산재 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