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톤

밀톤(Milton, 1608-1674)

 

비들과 같은 시대에 살았으며, 그와 함께 많은 견해를 나눈 밀톤은 감옥 밖에서 사는 삶을 택하여 비들만큼 서슴없이 말 하지 않았습니다.

 

두 권으로 된 ‘진리 종교의 논문’에서 그는 말합니다.

“아리우스파와 소치니교가 삼위일체에 반대하는 논쟁을 벌였다. 그들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경전과 사도의 신조에 따라 믿는다고 단언한다.

경전에서 볼 수 없는 삼위일체니, 삼자일체니, 동질성이니, 삼위 격 성이니 하는 말을 학자의 인식이라고 거부한다. 그 경전은 프로테스탄트교의 일반 격언에 따르면, 평이하고 명료하므로 매우 고귀한 문제와 반드시 알아야 할 것, 그리고 매우 난해하면서도 경전의 평이한 교리에 속한 것들을 가장 적합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자체 의미가 풍부하다고 한다.”

 

그는 다른 책에서 더 직선적이었다. 교황과 공의회와 주교와 장로 등이 행사하는 권력을 가장 높은 지위의 포악한 독재로 분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모든 법령과 의식과 교리의 주입은 자유에 대한 부당한 침입이다.”라고 계속 언급을 했습니다.

 

이 시인은 국가의 시민 당국에 대해 공개로 반대하지는 않았으나, 국립교회의 편협과 불 관용에 대한 항의자로서 남아 있었습니다. 많은 저명한 지식인들처럼, 그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존슨(Johnson) 박사는 밀톤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프로테스탄트교의 어떤 종파와도 연합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가 어디 소속이었는지 알지 못한다. 로마 교회 소속도 아니요, 그렇다고 영국 교회 소속도 아니다. 밀톤이 나이가 들어서도 경배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는 대부분 시간을 기도로 보내지 않았으며-자기 일과 명상이 바로 습관적으로 드리는 기도였다.”

 

존슨 박사는 밀톤이 쓴 책을 몰랐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 책은 1823년, 그의 사후 150년이 지난 다음에야 발견 되었습니다. 그 필사본이 화이트 홀 (Whitehall)에 있는 옛 정부 문서실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제목은 ‘하나님에 관한 논문’이었습니다. 이 책은 그가 크롬웰의 라틴어 서기로 있을 때 쓴 것으로, 자기 생애 중 발간되는 것을 분명히 바라지 않았습니다.

 

이 책의 1권 2장에서 밀톤은 하나님의 덕성에 관해, 그리고 특별히 하나님의 유일성에 관해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비록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지만,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편 14:1)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 마음에 논란의 여지가 없는 많은 증거와 많은 흔적을 심어주셨기 때문에, 전체 자연을 통해 분명한 진리를 어느 누구도 자기 감각으로 모를 수가 없다. 이 세상 만물은 그 아름다운 질서와 분명하고 유용한 목적을 위한다는 증거를 깨달으며, 어떤 최고 존재의 효율적인 힘이 이 모든 만물을 특별한 목적을 위해 미리 정해놓았음을 증명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 의심이 없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자연이나 이성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이나 메시지와는 별도로 자기 자신의 인도에 따라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생각을 가질 수 없으니…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이 인식할 수 있거나, 혹은 우리 취약한 자연이 견딜 수 있도록 계시를 완전하게 보내셨다…신에 대한 그런 지식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듯이, 그분께서는 자기 선에 따라 충분히 계시하신 것을 기뻐하셨다…하나님의 이름과 속성은 그분의 본성이나 그분의 전능하심과 뛰어나심을 밝혀준다”.

 

그런 다음 밀톤은 하나님의 몇 가지 덕성에 대하여 표를 답니다:

진리, 영혼(나는 내가 있는 것이다), 광대와 무한, 영원, 불변 (나는 변하지 않는다), 불멸, 불후, 편재, 전능,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일성이다. 그는 이 유일성이 “이상의 모든 속성에서 반드시 유래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밀톤은 성경으로부터 다음 증거를 하나하나 예증한다: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신명기 4:35)

…상천 하지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신명기 4:39)

이제는 나 곧 내가 그 인줄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신명기 32:39)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 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열왕기상 8:60)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 이다. (열왕기하 19:15)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이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알지 못하노라. (이사야 44:8)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이사야 45:5)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이사야 45:21)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이사야 45:22)

 

이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밀톤은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 어떤 영도, 어떤 위도, 어떤 존재도 없으니, 아무도 없다는 것은 보편적 부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이사야 46:9)

 

밀톤은 계속해서 언급합니다:

수의 개념에서 보통 신의 유일성을 수용하고 있는데, 한 하나님과 한 영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는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고, 또 일상적인 말에 더 가깝고 쉽고 분명한 그런 말이 과연 있을까? 진정으로 합리적이고 또 쉽게 인정할 수 있는 내용은 애매모호한 표현 없이 그처럼 평이한 문체로 전달되어야 한다. 그래야만이 최 하층민 까지도 충실하게 복종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강력한 명령이 경배자들을 오히려 실수나 의심이나 근심으로 몰아갈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명령이 율법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에서 볼 때, 언제나 하나님께서 어떤 동반자도 없는, 숫적으로 한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신학교수들 중에 자기 자신이 현명하다고 지나치게 신뢰한 나머지, 혹은 더 적절히 말한다면, 순전히 모순된 논의를 통해 자기들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유일성 교리를 비난한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기 때문에, 결코 모순되는 일을 하시지 않는다고 대체로 말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에서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유일성과 일치하지 않고, 또 동시에 그분께 유일성과 복수 성 이라는 양 속성을 부여한 사실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마가복음 13:29-32에 이렇게 언급되어 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이시니라…서기관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입니다.”

 

그런 다음 밀톤은 성령 본성에 대하여 계속해서 논의를 했습니다. 그는 경전이 그 본성과 존재 방식, 그리고 어디서 그것이 생겨났는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추종자들이 가장 우선으로 하는 중요성이나, 의심 없는 확실성이나, 혹은 경전의 가장 명확한 증거라고 주장하는 교리를 신자들이 그처럼 난해하게 신봉한다고 해서 위험하지는 않다고 말하는 그 자체가 매우 불합리하다. 또한 심지어 이성과 반대된다고 고백해야 하는 점을 의심스럽고 모호하게 반박하기보다는 단지 인간의 이성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밀톤은 성경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즉 성령은 진지하지 못하다. 성령은 편재하지 못하다. 성령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행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부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만약 그렇다고 하면, 왜 성령을 예수님 이후에 올 보혜 사 라고 불렀겠는가? 그는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므로 그의 힘은 남으로부터 얻는 것이다. (요한복음 16:7-14) 그러므로 ‘보혜사’를 예수 다음에 올 한 예언자라는 분명한 의미로써 받아들이는 대신에, 그를 성령이나 하나님으로 부르는 것을 끝날 수 없는 혼동을 일으킨다”.

 

밀톤은 예수가 영원하지 않다고 주장한 아리우스에 동의합니다.

하나님 권능으로 예수가 태어날 수도 있었고 안 태어날 수도 있었다 말합니다.

예수가 ‘시간의 제한 속에서’ 태어났다고 결론을 짓습니다. 그는 ‘예수의 영원한 세대’를 지지할 수 있는 경전 구절을 찾지 못해서 당황합니다.

예수가 개인적으로, 그리고 수적으로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가설은 기이하며 또 이성에 모순됩니다.

 

이 교의는 이성뿐 아니라 경전에 나타난 증거에도 위배됩니다. 하나님은 단지 한 분 뿐인 하나님이라고 믿는 ‘이스라엘 백성’에 밀톤은 동의합니다. 여기에는 아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또 하나님 한 분 만이 자존하시며, 그리고 자존하지 못하는 존재는 하나님일 수 없다는 것 등은 자명합니다.

그는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어떤 자들이 쓸데 없는 어려움이나 혹은 교묘한 술책으로 경전 구절이 지니고 있는 평이한 의미를 어렵고 모호하게 하는 일에 몰두하였다는 사실을 보면 놀랍다”.

 

성령은 그의 임무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나 예수보다 더 열등 했노라고 밀톤은 말합니다. “자기 마음대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 성령은 매사에 하나님께 복종한다. 그를 하나님께서 보내시며, 자의로 말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밀톤은 이런 견해를 공개로 표현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 개인의 안전을 위협하고, 또 비들과 다른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을 똑같이 당할 것이기 때문 이었습니다.

1611년 밀톤이 살아있는 동안 레가트(Legatt)와 위트만(Wightman)이라는 두 사람을 왕이 화형을 명령하여 처형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유일성에는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삼 위가 없고, 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진정한 아들도 아니요, 아버지의 신성에서 보면 그분과 똑같은 실체나 영원이나 위엄이 없으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인간이자 피조물이고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한 사람 안에 있을 리 없다라고 믿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살면서 침묵을 지킨 일들을 이해 할 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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