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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비들

존 비들(John Biddle, 1615-1662)

 

영국 유니테리언 창시자 존 비들은 1615년 출생 하였습니다.

그는 총명한 학생이었으며, “자기 스승을 능가하여 자기 자신이 스승이 된” 인물이라고 묘사 되었습니다.

그는 1634년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하여 1638년 학사와 1641년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옥스퍼드를 졸업한 뒤 글로스터(Gloucester) 주에 있는 성 메리 드 크립트(St. Mary de Cript)의 자유학교 선생으로 임명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종교에 대한 견해를 재 연구하고 삼위일체 교리 타당성에 대하여 회의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는 유럽에 있는 유니테리언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는데, 소치니의 가르침을 이제 영국에서도 받아 들였기 때문입니다. 라틴어 판 라코브 교리문답 집이 영국 제임스 왕에게 증정 되었습니다. 1614년 그 책을 공개 함으로서 교수형 집행인이 소각을 했습니다. 그 책은 불에 타 없어졌으나, 그 내용에 대해 일반인들이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 책의 정당성을 뒤 엎으려는 조치가 취해 졌습니다.

 

크롬웰(Cromwell)이 주재한 국책회의에서 소치니의 가르침을 반박하라고 임명 받은 존 오웬(John Owen)은 이렇게 말했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너와 거의 무관한 일로 보지를 말라. 악마가 문 앞에 와 있다. 영국에서 그 독이 번지지 않은 도시나 시골은 없다.

 

교회에서 신봉하는 교의를 유지하기 위한 그런 시도는 반대에 부딪쳤습니다.

윌리암 칠링워드(Wiliam Chillingworth, 1602-1644)는 “인간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찬성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들을 박해하고 불태우고 저주하게 한 불행한 신조”를 비난 했습니다.

제레미 테일러(Jeremy Taylor)와 밀톤(Milton) 두 사람은 “이성을 충분히 추구한다고 해서 이단자가 되지 않으며, 불행은 의지를 오용한 영향 때문에 생긴다”고 단언을 했습니다.

논쟁은 널리 퍼졌으며,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을 보호하기 위해 당국은 더 많은 조치를 취했습니다.

 

1640년 6월 캔터베리(Canterbery)와 요크(York)의 집회에서 소치니 서적들의 수입, 발행, 유통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사제들도 소치니의 교리를 설교해서는 안되다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또 이 교리를 믿는 자는 누구나 파문을 당할 것 이라고 경고 하였습니다. 수많은 작가와 사상가들이 이 결정을 비난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런 재평가와 신선한 조사 분위기 속에서 비들의 견해는 특히 삼위일체 교리와 연관하여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유롭게 이에 대하여 말했으며, 결국 행정관이 1644년 신앙고백서를 서면으로 제출하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는 간단한 말로 응답을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라는 전능하신 한 본질의 존재를 믿는다. 또 본질적으로 한 존재만이 있음도 그러하다.”

그는 또 이 당시 “성령의 신성을 반박하는 열 두 논의(Twelve Arguments Refuting the Deity of the Holy Sprit)”라는 제명으로 소책자를 발행 했습니다. 이 책은 ‘기독교 독자’를 그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1645년 ‘열 두 논의’의 필사본이 압수당하고 비들은 투옥 되었습니다. 그는 의회에 소환되었으나, 성령의 신성을 신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책자를 1647년 재 발행 했습니다.

같은 해 9월 6일 의회에서는 그 소책자를 교수형 집행인으로 하여금 소각하라고 명령을 하였으며, 그대로 되었습니다.

1648년 5월 2일 ‘가혹한 법령’이 통과 되었습니다. 삼위일체나 예수와 성령의 신성을 부정하는 자는 누구나 성직의 재판특전의 혜택을 받지 않고 죽임을 당할 것 이라고 언급 하였습니다.

 

그처럼 심한 조치를 내리게 한 원인이 된 ‘열 두 논의’는 이렇습니다:

 

1) 하나님과 구분되는 자는 하나님이 아니다.

성령은 하나님과 구분된다.

고로 성령은 하나님이 아니다.

 

비들은 계속 이처럼 삼단논법을 이용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대전제는 성령이 하나님이지만 하나님과 구분되므로 모순이라고 우리가 말하는 것처럼 매우 명확하다. 성령이 하나님과 구분된다는 소전제는 경전의 전체 흐름으로 확인되었다. 성령을 본질이 아니고 개체로 생각한다면 하나님과 구분된다는 논의는 모든 논리에 반하는 것이다.

 

첫째, 어느 누구고 마음 속에 두 존재를 생각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본질과 위격을 구분할 수 없다. 결국 두 신의 존재에 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위격이 그분의 존재와 구분된다면, 그 위격은 독립된 것이다. 그러므로 유한하거나 무한할 것이다. 유한하다고 하면, 교회에 따르면, 하나님께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 자신이라고 하므로, 하나님은 유한한 존재가 된다. 만약 무한하다고 하면, 하나님께 두 가지 무한한 것이 있는 것이고, 결국 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되므로, 앞에서 한 논의보다 더 터무니없다.

 

셋째, 하나님은 비인격적 존재라고 말하는 것은 엉터리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 위에 절대 군림하시는 한 인격의 이름임을 모두가 인정하기 때문이다…한 사람이 남에게 군림할 수 있다고 해서 인격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분이 아닌 것을 그분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다”.

 

2) 이스라엘인에게 성령을 보내신 분은 여호와 한 분뿐이다.

고로 성령은 여호와나 하나님이 아니다.

 

3) 자기 힘으로 말하지 못한 자는 하나님이 아니다.

성령은 자기 힘으로 말하지 않는다.

고로 성령은 하나님이 아니다.

 

4) 배움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아니다.

자기가 말할 바를 남에게서 듣는 자는 배움을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전달받은 바를 말한다.

고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니다.

여기에서 요한복음 8:26을 인용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길,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지상에게 말하노라 하시되.”

 

5) 요한복음 16:14에 예수께서 이르시길, “하나님께서는 만인에게 만물을 주신 분이시다.”

남으로부터 받는 자는 하나님이 아니다.

 

6) 남이 보낸 자는 하나님이 아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보내신다.

고로 성령은 하나님이 아니다.

 

7) 모든 것을 주지 못한 자는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자는 모든 것을 주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자는 주어진 자이다.

선물은 주는 자의 힘과 처분에 달려있다.

고로 하나님이 다른 자의 힘과 처분에 달려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여기에서 비들은 사도행전 17:25을 인용합니다. “하나님은 만인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 이심이라.”

 

8) 장소를 바꾸는 자는 하나님이 아니다.

성령은 장소를 바꾼다.

고로 성령은 하나님이 아니다.

비들은 이 삼단논법을 이런 말로 계속 설명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장소를 바꾸신다면, 이전에 계셨던 곳을 그만두고 이전에 계시지 않은 곳에 계시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편재성과 신성에 위배된다. 고로 예수에게 온 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위격을 유지한 천사였다.”

 

9) 그리스도에게 와서 심판해 달라고 기도한 자는 하나님이 아니다.

성령이 그렇게 한다.

고로 성령은 하나님이 아니다.

 

10) 로마서 10:14에 언급되어 있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남이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이 아니다.

성령을 믿지 않은 자들은 제자였다.

고로 성령은 하나님이 아니다.

 

11) 하나님으로부터 간접으로, 즉 예수 그리스도가 말한 것을 듣는 자는 하나님과 구분되는 이해력을 갖고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말할 바를 듣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배웠다.

성령이 그러하다.

고로 성령은 하나님이 아니다.

 

12) 하나님의 의지와는 수적으로 구분되는 의지를 가진 자는 하나님이 아니다.

성령은 하나님과 수적으로 구분되는 의지가 있다.

고로 성령은 하나님이 아니다.

여기에서 비들은 로마서 8:26-27을 언급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심에.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비들은 또 국립교회에서 삼위일체를 지지하기 위해 인용한 신약성서의 한 구절을 논의 했습니다. 그것은 요한1서 5장 8절 입니다.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비들은 이 구절이 상식에 어긋난다고 말했습니다. “경전의 다른 구절들과 모순되며, 본질의 일체가 아니라, 동의와 승인의 일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 구절은 복음서의 옛 그리스 사본이나 시리아어 번역본이나, 옛 라틴어 판 에는 전혀 나와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 구절은 삽입된 것이며, 고대와 근대의 모든 해석 가들이 그렇게 해석하여 그 구절을 부정하였다”.

 

1648년의 법령에도 불구하고, 비들은 또 다른 두 권의 소 논집을 발간 했습니다. 의회의 많은 독자적인 의원들이 아니었더라면, 그 일로 그는 교수형에 처해졌을 것 입니다. 그 중 한 권은 ‘경전에 따른 삼위일체에 관한 신앙고백서’라 불렀습니다. 그 책은 일곱 항목으로 구성되었는데, 모두 성경을 인용하여 예증하였고, 자기 논의로 지지 하였습니다. 머리말에서 그는 대담하게 삼위일체 교리의 신조를 낳은 악마를 이야기 했습니다.

 

삼위일체론 자들이 사용하는 논의가 “기독교인보다는 요술쟁이에게 더 알맞다.”고 언급을 했습니다. 다음은 비들의 ‘신앙고백서’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나는 가장 높으신 한 하나님을 믿는다. 그분은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시고 만물의 첫 원인이시며, 결국 우리 신앙과 경배의 궁극적인 대상이시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형제이고, 우리 약점을 느끼는 동료이며, 그래서 우리를 더 쉽게 도울 수 있는 분으로 믿는다. 그분은 인간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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