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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역사 -2편

역사가들이 할 일은 바로 이 가면을 벗겨서 그 안에 숨겨진 본래 신앙의 윤곽이 얼마나 다른 것인지를 반드시 밝히는 일 입니다.”

기독교가 예수의 본래 가르침과 무관하다는 것을 오늘날 사람들이 점점 더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이세기 동안 역사가들이 연구 한 결과, 기독교의 ‘신비’는 더 이상 믿기지 않았지만, 현 교회에서 말하는 그리스도는 역사 속 예수와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진리를 추구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처한 궁지가 어떠한 것인지는 금세기 기독교 역사가들이 쓴 저술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아돌프 하르나크(Adolf Harnack)가 지적하듯이, 근본 문제점은 “4세기까지 현존 한 복음서에 그리스 철학이라는 가면이 씌워 진 것 입니다.

역사가들이 할 일은 바로 이 가면을 벗겨서 그 안에 숨겨진 본래 신앙의 윤곽이 얼마나 다른 것인지를 반드시 밝히는 일 입니다.”

그러나 교리에 씌운 가면이 너무 오래 되어서 종교의 얼굴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이 일을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 합니다.

가면 그 자체에 생명력이 있어서,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두 가지 본성, 교황의 무 오류성, 이들 교리와 관련한 모든 부차적인 주장들이 역사 속의 상황과 결정이 만들어낸 산물이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조만간 거의 다른 결과나 새로운 형태의 힘을 가져왔을 것이다. 교리는 처음부터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기독교인들이 유대인을 버리고 그리스인한테서 빌어 쓴 지적 화라는 나쁜 습관 때문이었다.

하르나크는 다른 책에서 이 주제를 확대하여 주장합니다. 네 번째 복음서(요한복음)는 역사의 권위자로 인정할 수 없는 사도 요한이 그 저자도 아니며 또 그렇게 인정받지 못한다…네 번째 복음서 저자는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였으며, 사건을 바꾸어 이상한 인상을 갖게 하였다. 그는 혼자서 논쟁거리를 끄집어내어 중요한 개념을 상상 속의 상황에 따라 예증하였다.

그는 계속하여 저명한 기독교 역사가 데이빗 스트라우스(David Straus)의 글을 인용하면서, 그가 “네 번째뿐 아니고 처음 세 복음서에 대한 신뢰를 모두 훼손시켰다.”5고 말합니다.

다른 역사가 조하네스 레흐만(Johannes Lehmann)에 따르면, 공인된 네 권의 복음서 저자들이 역사 속 실체를 밝혀낼 수 있는 예수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분을 묘사하고 있는데 레흐만은 다음 내용을 지적한 하인즈 잔트(Heinz Zahrnt) 말을 인용합니다:

만약 역사 탐구를 통하여 역사 속의 예수와 설교 내용대로 그리스도 사이에 조화를 이룰 수 없는 정반대되는 요소가 존재하고, 예수에 대한 믿음 자체가 그분 자신으로 부터 아무런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면, 달(N.A. Dahl)이 말하듯 신학으로는 절대 치명일 뿐 아니라, 모든 기독교 학의 종말을 뜻한다. 하지만, 우리 신학자들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고 본인은 확신하면서도-우리가 할 수 있었던 때가 있었던가? -그러나 할 수 있다고 해도, 우리는 거짓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상 간략하게 인용한 글은 오늘날 기독교가 얼마나 궁지에 빠져있는지를 보여주는 반면, 잔트가 한 말 또한 여기에서 강조한 것보다 더 어떤 심각한 점을 보여줍니다. 즉 예수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인 것, 또 그분을 따르는 교회나 분파 사이에 복잡하게 관련된 것, 그리고 예수가 본래 가르치려 한 목적을 무시하거나 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테오도르 잔 은 국립 교회 내부에서 벌어지는 심한 갈등을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그가 지적한 바에 따르면, 로마 카톨릭교는 그리스정교가 좋고 나쁜 의도를 가지고 성경 내용을 추가하고 삭제하여 재구성하였다고 비난하고 있으며, 그 반대로 그리스정교에서는 카톨릭교 자체가 원전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 두 종교는 서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담합하여 비 국교도 기독교인들이 ‘진정한 길’에서 벗어났다고 비난하면서 이들을 이단자라고 공박하며, 반대로 이들 이단자들을 카톨릭교인 들은 ‘진리를 위조한 위조자 들’이라 비난합니다. 잔은 결론으로 “사실이 이런 비난을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7라고 말합니다.

예수 자신은 완전히 잊혀졌습니다. 이제까지 어떻게 변질되었는지는 잘 알게 되었으며, 매우 진지하게 예수의 본래 가르침으로 돌아 가 살고 자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본래 가르침이 전부 없어져서 재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에라스무스(Erasmus)는 이렇게 말 해야만 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신성함에 관하여 거의 토론하지 않았다. 전에는 신앙이 삶 자체였지 신조 고백이 아니었다. 신앙이 마음속보다는 글 속에 자리 잡게 되자, 거의 사람들만큼 많은 신앙이 생겼다. 조항은 늘어만 가고 진실은 줄어들었다. 논쟁은 뜨거웠고 사랑은 차가웠다. 처음에는 세세히 구별하지 않은 그리스도 교도가 철학의 도움에 의존하였다. 이것은 교회가 퇴조한 첫 단계였다.

그래서 교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용을 강제로 설명해야 했으며, 양측에서 의지할 데라고는 황제의 지지를 받는 것 이였고. 에라스무스는 계속해서 이를 언급합니다

교황 권한이 이런 일에 개입한다고 해서 참 신앙에는 도움을 주지 못했다. 신앙이 가슴보다는 입 안에 있을 때, 그리고 성경을 분명하게 우리가 알지 못할 때, 우리는 남을 위협하여 믿지 않는 것을 믿으라고 하고, 사랑하지 않는 것을 사랑하라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라고 했다. 진실은 강요 할 수 없는 것이다.

당시 예수 추종자들인 초기 기독교인들은 결코 표현 할 필요가 없는 신의 유일성을 인정하였으며, 그분 가르침이 전파되고 교회들끼리 갈등이 심해짐에 따라 지식인들은 신의 실체에 대한 자기 지식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을 에라스무스는 알았습니다 만 결국 예수의 모든 가르침과 그 안에 담긴 유일성이란 말을 상실하였습니다. 그들이 실제 의지할 곳이라고는 하나가 아닌 삼위라는 견해를 믿는 그리스 철학에서 온 용어와 술어였습니다.

실체에 대한 매우 단순하고 순수한 신조나 예수와는 전혀 낯선 언어로 표현하였으며, 예수를 신성시하고 또 성령과 함께 삼위일체 교리를 형성하였으며. 사람들이 실체의 유일성을 상실하였을 때 따르는 필연적인 결과는 혼란과 분열뿐이었습니다.

예수가 실제 누구였으며, 그분의 가르침이 무엇이었는지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이상의 내용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일단 사람들이 그런 선지자의 모든 일상적인 행동에 의존할 수 없게 되자, 삼위일체 교리를 믿어야 할지, 아니면 신의 유일성을 육성으로 확언해야 할지 모른 채 당황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 필요 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녀가 사람들에게 그를 데려왔을 때, 그들이 말하기를 “마리아여, 그대는 이상한 것을 가져왔으니. 아론의 자매여! 그대 부친은 사악한 분이 아니었으며, 그대 모친은 부정한 여인이 아니었다.”고 했다.

마리아가 그(아이)를 가리키자, 그들이 “어떻게 요람에 든 아이가 우리에게 말을 한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아가가 말했으니. “나는 하나님 종복으로. 내게 경전을 주셨으며 나를 선지자로 삼으셨노라. 내가 어디에 있건 축복을 내리시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 예배 드리고 구빈세를 내도록 명령하셨으며, 모친에게 효도하라고 하셨다. 내가 태어난 날과 내가 죽을 날, 그리고 내가 살아 부활할 날에 평화가 있을 것이다.”

그는 마리아의 아들 예수였으니, 그들이 의심한 것에 대한 진리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두지 않으시니, 그분께 영광 깃드소서! 그분께서는 어떤 일을 명하실 때면, ‘있으라.’고 말씀만 하면, 이루어진다.” (꾸란 19:27-35)

부모 없이 태어난 아담 경우가 가장 큰 기적입니다. 어머니 없이 태어난 이브 경우는 예수 경우보다 더 큰 기적인 경우로 꾸란에서 이에 대하여 말합니다:

“하나님께 예수 경우는 아담과도 같으니. 그분께서 흙으로 그를 만드신 다음 ‘있으라.’하고 말씀하시니, 생겨났도다.” (꾸란 3:59)

예수 생애를 출생 당시의 정치 사회 상황과 관련하여 알아 본다면 당시 유대 세계는 아주 불안한 시기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유대인들은 계속 침략자들로부터 유린을 당해 왔으며, 본 이야기와 관련하여 더 상세히 조사해 보면. 무력한 패배 결과가 늘 유대인들은 가슴 속 증오의 불을 태우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도, 상당수 유대인들은 정신의 균형을 유지하였으며, 새로운 모세가 나타나 침략자들을 몰아내고 여호와의 통치로 인도할 것이라며, 그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는 메시아, 즉 기름부음을 받은 이였습니다.

유대 민족 중 어떤 종족은 바람을 잘 받도록 돛을 손질하면서 매일 뜨는 해를 섬겼는데, 역경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그렇게 했던 겁니다. 그들은 세속적이고 종교적인 부와 지위를 모두 얻었으나, 다른 유대인들에게 매국노라는 미움을 받았습니다.

이 두 부류 외에 전혀 다른 세 번째 부류가 있었는데. 이들은 광야로 피신하여 토라(Torah, 역자 주: 모세의 오경)에 따라 종교를 실천하고 기회가 생길 때 에는, 침략자들에 대항하여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기간에 로마인들은 이들이 머무르고 있는 은둔처를 찾으려 하였으나 번번이 실패 하였습니다.  애국자들은 계속 늘어났으며 우리는 우선 요세푸스(Josephus)로부터 이들에 관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유대인들을 세 부류로 구분하여-바리새인(Pharisees), 사두개인(Saducees), 엣세네인(Essenes)-이라고 각각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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