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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21 Nov 2024

바르나바 복음서

Originally posted 2023-10-17 09:45:17.

바르나바 복음서(Gospel of Barnabas)는 예수께서 메시지를 전달한 약 삼 년 동안 대부분 시간을 그분과 함께 보냈던 한 제자가 기록 한 현존하는 유일한 복음서로 전해집니다.

그러므로 그는 네 권의 공관복음서 저자들과는 달리, 예수와 함께 직접 체험하였으며, 그분 가르침 모두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르나바스 예수와 그 가르침을 기억하여 적어놓은 것인지, 사건과 설교내용이 일어났던 대로 기록한 것인지, 혹은 예수께서 지상을 떠난 뒤 가르침이 일부 변질되거나 분실될까 두려워 이 복음서를 저술한 것인지에 대하여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요한이나(John), 마가(Mark)와 함께 사이프러스(Cyprus)에서 돌아온 뒤에 이 복음서를 저술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이 두 사람은 함께 여행을 떠났는데 이때는 예수가 지상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가와 함께 가겠다는 바르나바 동행을 할 수가 없다며 거절 한 타르수스(Tarsus)의 바울(Paul)이 이 두 사람과 결별 한 뒤였습니다. 이 복음서가 언제 저작되었건 간에 네 권의 공관 복음서처럼 수 개 국어로 변역 되어 전해졌으나, 적어도 이 복음서만이 예수 생애를 직접 목격한 사람이 적은 내용입니다.

바르나바 복음서

바르나바 복음서

바르나바 복음서는 서기 325년까지 알렉산드리아 지방 교회들이 정경 복음서(Canonical Gospel)로 인정하였습니다. 이 책은 예수 출생 이후 처음 1, 2세기 동안 회람되었다는 사실을 신의 유일성을 지지한 이라네우스(Iraneus)가 적은 기록을 통하여 알 수가 있습니다. 그는 바울이 예수의 본래 가르침에다 이교인 로마 종교와 플라톤 철학을 융합시킨 책임이 있다고 비난하며 그에게 반대했는데 자기 견해를 입증하기 위해 바르나바 복음서를 많이 인용하였습니다.

서기 325년에 저 유명한 니케아 종교회의(Council of Nicea)가 열렸습니다. 삼위일체 교리가 바울 기독교 공식 교리로 선포되었으며, 이 결정 결과, 당시 300권 이상이던 복음서들 중에서 네 가지만이 교회에서 공식으로 인정한 복음서로 선정되었습니다. 바르나바 복음서를 포함한 나머지 복음서들은 모두 완전히 없애버리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또한 히브리어로 기록된 모든 복음서도 마찬가지로 없애게끔 했으며 인정받지 못한 복음서를 소지할 때는 누구라도 사형에 처할 것이라는 포고문이 발포되었습니다.

이것은 삼위일체와 모순되는 본래의 예수 가르침을 적은 모든 기록을, 인간 기억이든 서적이든 간에, 모조리 말살하려는 매우 조직적인 최초 시도였습니다. 바르나바 복음서 경우, 이런 명령이 완전하게 성공하지는 않았으며, 이 책이 계속해서 존재했다는 사실을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습니다.

다마수스 교황(Pope Damasus)(304-384 A.D.)은 366년 교황이 되고 난 뒤 바르나바 복음서를 읽지 말라는 칙령을 내렸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칙령을 395년에 사망한 세사리아(Caesaria)의 주교 겔라수스(Gelasus)가 지지를 하였습니다.

그는 이 복음서를 소위 외경이라는 목록에 포함시켰습니다.

외경(Apocrypha)이란 단순히 “사람들로부터 숨겨진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는 이 복음서를 일반인이 접할 수 없었으나, 교회지도층에서는 아직도 참고로 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실 그 교황은 383년에 바르나바 복음서 사본 하나를 입수하여 개인 서가에 보관하였습니다.

이 복음서에 관해 또 다른 여러 칙령을 내렸는데, 382년 서로마 교회 칙령으로, 그리고465년 인노센트 교황(Pope Innocent)이 금지를 하였습니다. 496년 글라시안(Glasian) 칙령에서도 바나바스 복음서를 금서 목록에 포함했는데 이 칙령을 514년부터 523년까지 교황 직에 있던 호르미스다스(Hormisdas)가 다시 확인을 하였습니다.

이상과 같은 모든 칙령은 스기에(Seguier, 1558-1672) 종교 고문관 장서에 있는 그리스어 필사본 목록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목록은 몽포꽁(B. de Montfaucon, 1655-1741)이 준비를 하였습니다.

바르나바 복음서는 다음과 같이 니케포루스(Nicephorus)의 행나누는법(Stichometry)에도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일련번호 3. 바르나바 전서 … 1,300줄

그리고 또 60권(Sixty Books) 목록에는 이렇게 언급 돼 있습니다.

일련번호 17, 사도들의 여행기 및 가르침서

일련번호 18, 바르나바 전서

일련번호 24, 바르나바 복음서

이상 유명한 목록이 또한 색인(Index)으로 알려졌으며, 기독교인들은 이 가운데 어떤 책도 읽어서는 안되며, 이를 위반하면 영원한 벌을 받는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프랑스 왕 장서에서 필사본들을 분류한 코텔레리우스(Cotelerius)는 1789년 준비한 경전의 색인(Index of Scriptures)에 바르나바 복음서를 삽입하였습니다. 이 복음서는 또한 옥스퍼드 보들레이안 장서(Bodleian Library)에 바로크 수집물 206번째 필사본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바르나바 복음서 그리스어 판이 모두 불에 타고 난 다음 조각만이 유일하게 아테네 한 박물관에 보관이 되어 있습니다.

서기 478년 제노(Zeno) 황제 집권 4년에 바르나바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그의 가슴 위에는 그가 직접 쓴 바르나바 복음서 사본 한 권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1698년 안트워프(Antwerp)에서 출판한 볼란드 주니(Boland Junii)의 책, 순교자 행전(Acta Sanctorum) 2권, 422-450쪽에 기록되어 있는데 바르나바의 무덤에서 발견한 복음서가 마태복음서라고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이 사본을 결코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티칸에 있는 30킬로미터 길이나 되는 긴 장서 속에 묻혀있는 것입니다.

바르나바 복음서 영어 필사본은 원래 섹투스 교황(Pope Sextus, 1589-1590) 소장품이었습니다. 그에게는 프라 마리노(Fra Marino)라는 수도사친구 하나가 있었는데, 그는 바르나바 복음서를 많이 인용한 이라네우스의 글들을 읽고 나서, 이 복음서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어느 날 그는 교황을 찾아가서 점심을 함께 먹었는데, 교황이 낮잠 든 사이 마리노 신부는 교황 사서에 가서 책을 훑어보다가 이탈리아어 필사본인 바르나바 복음서를 발견하고는 이 책을 옷소매에 감추고 바티칸을 나왔습니다.

이 필사본은 여러 손을 거친 뒤 암스테르담에 있는 ‘저명하고 권위 있는 사람’ 수중에 들어가서, 그가 “살아있는 동안 이 책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자주 들었다.”

그의 사후에, 프러시아 왕 고문관 이던 크래머(J. E. Cramer)가 소유했었는데 1713년 크래머는 이 필사본을 당시 유명한 도서수집가인, 사보이(Savoy)의 황태자 유진(Eugene)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 책은 1738년 왕의 장서와 함께, 지금은 비엔나에 있는 도서관에 보관되어져 있습니다.

초대 기독교회에 대한 저명한 역사가인 톨란드(Toland)는 이 필사본을 접하였는데, 1747년 저자가 죽은 다음에 출판한 잡록서(Miscell-aneous Works)에서 이를 언급합니다. 그는 이 복음서를 “경전과 똑 같은 문체이다.”라고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이야기가 여러 면에서 기존 복음서와는 매우 다르게 전해지고 있으나, 더 많이…그리고 특이하게 이 복음서는…현존하는 복음서와 가깝다. 혹자는 이 책을 지나치게 선호하고 있는데, 모든 일이 발생한 다음에야 잘 알려지듯이, 모든 것이 그 본래 의미에서 점점 사라져가기 때문이다.

톨란드가 이 필사본을 공표함으로써 스페인에서 한 때 존재했던 또 다른 필사본이 처한 폐기되는 운명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 필사본은 이탈리아어 필사본이 도서관에 기증된 때와 거의 같은 시기에 영국의 한 대학 도서관에 기증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하게도 이 필사본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탈리아어 필사본을 캐논(Canon)과 래그(Ragg) 부인이 영어로 번역하여 1907년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에서 발간했는데 어처구니 없고, 또 이상하게도 이 영어 번역판이 거의 모두 서점에서 한 순간 거의 동시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번역판에서 오직 두 권만이 현존하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한 권은 대영박물관에서, 그리고 다른 한 권은 워싱턴의회 도서관에서 보관을 하고 있습니다. 의회 도서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책에서 마이크로 필름으로 사본을 떠 파키스탄에서 영어 번역판을 다시 인쇄했으며 이 사본을 이용하여 바르나바 복음서 개정판을 다시 인쇄하였습니다.

맨 먼저 공관 복음서로서 인정받은 세 권의 복음서는 이름을 더 적합하게 붙이기 위하여 오늘날 연구가들이 “큐(Q)”라고 붙인, 더 이른 시기에 쓴 미지의 복음서에서 복사한 것이었다고 일반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바르나바 복음서가 실제 분실된 복음서였는지는 사실 의문입니다.

염두에 두어야만 할 것은 네 권의 복음서 중 맨 처음 것인 마가 복음서에서 요한이나 마가는 바로 바르나바 누이의 아들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생전 예수를 만난 적이 없었으며 그래서 그들 복음서에서 나오는 예수 생애와 가르침들은 분명히 남으로부터 전해들은 것 입니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내용들을 본다면, 그는 바울과 바르나바를 따라 여러 번 전도 여행을 함께 다녔는데, 그 두 사람 사이에 큰 알력이 생김으로써 결국 바르나바와 마가는 같이 사이프러스로 돌아왔습니다. 바울 역시 예수를 만난 적이 없으므로, 마가는 소식통으로 바울에 의존하였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적당한 결론을 내리자면, 삼촌 바르나바가 전한 예수에 관해 이야기를 반복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베드로 통역으로 활동하면서 그로부터 배운 것을 적었다고 혹자는 말 하고 있습니다 만 이것이 맞을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가가 바울이나 바르나바와 함께 여행 떠나지 않을 때라면, 다른 사도들과 얼마 동안 분명히 접촉했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굿스피드(Goodspeed)는 연구를 통하여, 그가 베드로에게서 배운 내용들이 결코 포괄적이지 못하다고 말해줍니다:

그는 베드로의 통역인 이었고, 비록 순서대로는 아니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행동하신 것을 기억하는 대로 전부 정확하게 기록해 두었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듣지도 않았고, 그분을 수행하지도 않았으나 본인이 말했듯이, 나중에 청중들의 구미에 맞게 가르침을 개조한 베드로를 수행하였으며, 하지만 주님의 성경을 날조하여 이야기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

사도행전을 쓴 누가 조차도 역시 예수를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바울의 주치의였는데 또 역시 예수를 만난 적 없는 마태는 세금징수 원 이었습니다.

마가 복음서가 “큐” 복음서일 것이며, 마태와 누가가 자기 들 복음서를 저작할 때에 이 복음서를 이용했다는 논란은 이미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들에는 마가복음에 나오지 않는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마가복음서 만이 유일한 출처일 수가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고 혹자는 말합니다.

마가 복음서가 히브리어로 저작되고 그리스어로 번역된 뒤 라틴어로 다시 번역되었음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마가 복음서의 모든 히브리 판과 초기 그리스 판들이 손상되었으며,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기는 동안 얼마나 많이 변질되고 개조되었는지는 다만 추측만을 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심지어 여러 복음서를 서로 종합하여 그 출전을 밝히려는 시도까지도 있었지만, 거기에서 드러난 모순 때문에, 교회 당국은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티티안(Titian)은 서기 2세기에 바울 교회에서 이미 인정한 네 권의 복음서를 공식 경전으로 통합하려고 했는데 티티안은 이 복음서를 만들며 요한복음에서 96%, 마태복음에서 75%, 누가복음에서 66%, 마가복음에서 50% 를 각각 이용하고 나머지 부분들은 무시를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쓰여진 복음서에 대하여 거의 신뢰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맨 나중 복음서에 대하여 가장 의존한 사실이 의미심장합니다. 따라서 그가 만든 종합복음서는 성공작이 되지를 못했습니다.

따라서, 마가 복음서가 정관복음서 세 권의 공동 출전으로 여길만한지 논란이 되고 있는 반면에,이 세 권에서 기록하고 있는 사건 모두가 바르나바 복음서에 들어 있습니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갖고 있는 이 세 사람이 동일한 출전에서 베껴 쓴 것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바르나바에 관한 명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가 너희에게 이르거든 영접하라.’ (골로새 서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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