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다처제-2

특히 아이라도 딸린 경우에는 부담이 점점 더 커집니다. 결국에는 소외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존엄에 어울릴까요? 이런 처지라면 정신적 문제가 생기거나, 문제에 대한 반발로 이성 모두를 미워하거나, 거리낌 없이 윤리를 파괴하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모든 기혼자는 행복하고 원만하며 결혼생활에 만족하고 있을까요? 자신 잘못이든 아내 잘못이든, 불행한 남편은 다른 상대를 찾아 위안을 얻으려고 합니다.

남성보다 여성이 많은 경우, 정직한 경로를 통해서 뜻을 이루지 못하면, 정직하지 않은 경로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 결과 부도덕하고 음란한 관계에 빠져 사생아, 낙태, 기타 그치지 않는 두통거리로 시달리게 될지 모릅니다.

 

이는 추악하고 불편한 사실이지만, 현실에서 엄연히 존재하는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개인과 사회를 보호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이 점에 관해 이슬람이 제시하는 해결책이란 불행하고 불만족한 남편이 두 번째 아내를 맞이해 공개적으로 책임을 지고, 두 아내에게 모든 의무를 똑같이 이행하면서 살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여자 쪽에도 마찬가지로 요구를 만족시키고 소망을 실현하며 정당한 열망과 타고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합니다. 결혼하여 법적 아내로서 모든 권리와 특권을 누리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이슬람은 현실문제를 회피하거나 방관하지 않습니다. 이슬람은 솔직하며 현실에 기반합니다. 이슬람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합법적이고 떳떳하며 자비로운 것입니다. 이슬람이 이러한 해결책을 제안하는 이유는 위선적 인간관계를 용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은 법적으로 한 여자와 결혼했으면서 실제로는 은밀한 관계를 나누는 남성의 태도를 정당하고 도덕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슬람은 간통을 묵과할 수 없으며 엄격하게 반대합니다. 간통한 남녀, 간음한 자들에게는 엄한 벌을 가할 수 있습니다.

 

일부다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대안에 의지해야 하는데, 이슬람은 이런 대안을 수용하거나 특별히 선호하지도 않습니다.

자기수양을 쌓아 모든 면에서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일부다처가 필요 없습니다. 이슬람의 주요 관심은 개인존엄과 안전을 유지하고 사회의 고결함과 풍기를 보호하는데 있습니다.

사회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더 나은지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혼란과 무책임한 행위가 사회의 기초를 파괴하도록 내버려두는 쪽이 나을까요, 아니면 현실적 문제를 인정하고 이슬람의 해결책을 시행하는 쪽이 나을까요?

 

첨예한 문제들을 무시하고 위선과 외설을 용납해 간통과 밀통을 묵과하는 것이 사회를 위하는 길일까요? 사실상 실효를 거둘 수 없고 불법적이고 음란한 배출구로 몰아갈 뿐인데, 남녀의 욕구와 타고난 열망을 억누르는 것이 더 건전할까요?

사회적, 윤리적, 인도적, 영적 관점에서 고려하든,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고려하든, 개인이 법적으로 책임지면서 법 보호 하에 교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여성 관점에서 보아도, 이슬람이 여성을 합당하게 존중하고, 여성권리와 고결 성을 안전하게 지키며, 떳떳하게 교제하려는 정당한 욕구를 인정하고, 사회에 귀속할 수 있는 여지를 주며, 사랑하는 관계를 보살피고,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접근하여 교제하거나 자기 남편의 부양과 친절을 나누는 것이 못마땅하고 불쾌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남편이나 믿을만한 반려가 없는 다른 여자의 입장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녀들의 존재를 무시하고 그녀들에게는 안정의 권리도 없다고 생각해야 할까요? 외면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요? 만약 자신의 남편이 전사하고 홀로된다면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반응할까요? 사회에 귀속되고, 존중 받고, 인정받고 싶지 않을까요?

 

가득 채워 받을 수 없다면,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반 잔 혹은 반 남편이라도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어느 정도 보호와 안전을 누리는 것이 모두 다 빼앗기는 것보다 더 행복하지는 않을까요?

만약 사랑하는 남편이 모임이나 파티에 갔다가 이러한 여성에게 빠진다면, 그녀 자신과 자식들은 어찌 되겠습니까? 남편이 가족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새 출발 한다면 어찌될까요?

일생에 하나뿐인 남자가 다른 여자들과 관계를 갖고 남몰래 부양하거나 숨겨 둔 애인을 찾아간다면 어떨까요?

 

이런 남자는 해로울 뿐 아니라 위협적인 존재이며 비열하고 악랄한 인간입니다.

말인즉 옳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로만 하는 저주가 당사자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상태에서 고통 받는 사람은 여성, 즉 법적 아내와 불법적 애인입니다. 관련된 두 여성이 보살핌과 부양을 똑같이 공유하고 똑같은 관계로 똑같이 법의 보호를 받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그 남자는 이제 사실상 한 아내만의 남편이 아닙니다. 그는 비열한 위선자입니다. 하지만, 당장 피해가 생기고 영혼들이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충분한 사정과 이유가 있다면, 이슬람이 개입하여 기혼 남자의 재혼을 허용하는 것이 당사자 모두를 보호하는 일이자 부정과 해를 막고 상처 입은 영혼들을 구하는 일입니다.

 

2. 결혼을 했더라도 아내가 임신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완전한 의미에서 가정생활을 영위하고 인류보존에 기여하려면 자식이 있어야 합니다. 게다가 자식을 두는 것은 결혼의 주요목적 중 하나이므로, 남자는 선천적으로 자기 이름을 보존하고 가족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자식을 원합니다.

 

 

이러한 처지에 있는 남자에게는 보통 다음 세 가지 대안이 있습니다.

(1) 자식을 가지려는 욕구를 억눌러서 잊는다.

(2) 자식이 없는 아내와 이혼한다.

(3) 아이를 입양하여 그 아이에게 자기 이름을 준다.

 

이런 대안 모두 생명과 본성에 관한 이슬람의 일반적 견해에 맞지 않습니다. 이슬람은 정당한 욕구와 타고난 열망을 억누르라고 권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본성 억압이 제도에 포함되지 않기에, 이슬람은 적법하게 이러한 열망과 욕구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자식을 갖지 못하는 것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아내 본인이 원해서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된 것이 아니기에 아내 잘못이 아닙니다. 이혼이 정당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이혼이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혐오스러운 일이고, 다른 대안이 없는 경우에만 허용됩니다.

 

한편으로 아내에게는 남편 도움과 부부애가 필요합니다.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아쉬움과 절망에 빠졌을 때 아무런 관심조차 없이 이혼하는 건 너무나도 잔인한 처사입니다.

모든 아이는 친부의 이름을 붙여야 하며, 친부의 이름을 모를 경우에는 믿음의 형제로 부르는 것이 규정이기 때문에, 입양은 고려 할 여지가 없습니다. (꾸란 33:4 – 5)

 

물론 이것은 아버지나 보호자를 모르는 아이가 보살핌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일은 결코 없습니다. 다만 입양이란 방식이 아이에게 안전하고 만족하는 생활을 보장해주는 방법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친부모를 온전하고 완벽하게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매일 일어나는 사건, 복잡한 법원소송절차 등 가족 간 분쟁은 입양만이 문제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법원이 하루에 처리하는 재판, 소송이 얼마나 많습니까?

 

친부모는 재판으로서 낯선 가정에 입양된 자기자식을 되돌려 달라고 요구합니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식이 낯선 가정에 있는 것을 참고 볼 수만 있을까요? 양부모가 자기 자식을 올바로 양육

하고 제대로 보살펴 주리라고 얼마나 믿을 수 있겠습니까? 자식이 자란 후 친부모가 버려서 양부모 밑에서 자랐다는 것을 알 때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친부모가 누군지 모르거나 혹은 친모가 가난, 수치, 불안정이 두려워 자식을 버렸다는 것을 알면 버림 받은 당사자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친척이나 식구모두가 입양한 아이를 좋아할까요? 낯선 아이가 들어와서 자기네 이름을 갖고, 자기들이 상속받을 재산을 그 아이와 나눠 상속받는 것을 좋아할까요? 친부모가 자기 자식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거나 입양한 아이가 친부모와 같이 살고 싶어하면 기른 양부모의 마음이 어떨까요?

이처럼 복잡하고 여러 문제가 있습니다. 아이, 친부모, 양부모, 양부모의 가족, 친척, 사회에 여러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입양은 많은 사람이 무책임한 행동과 관계에 빠져들도록 조장하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게다가 요즈음에는 입양이 상업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뉴스 매체가 보여 주는 바와 같이 자식을 팔려고 내놓은 사람도 있습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이런 여러 문제 때문에 이슬람은 이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무슬림이 이를 행하는 것도 수용하지 않습니다. (꾸란 33:4 – 6)

 

이런 이유로 이슬람은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이슬람은 이런 상황의 남자가 재혼하여 선천적인 요구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자식 없는 아내를 부양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 경우에도 입양하거나, 이혼하거나, 본능을 부자연스럽게 혹은 의지로 억누르는 대신에 취할 수 있는 방법으로 허용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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