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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주의

신앙과 세속주의 간 분열을 극복하는 법

 

언어는 사람 사회적 존재와 상호작용이 강하게 작동하는 매체입니다.

언어 덕분에 사람은 의사소통하고 동의와 합의를 만들어 냅니다.

언어는 사회와 지식 모두를 발전하게 하는 본질적 도구입니다. 하지만 또한 언어는 적대와 오해, 혼란의 근원이 될 수도 있으며, 사회 화합을 해치고 사람의 마음을 닫는 힘도 지니고 있습니다.

 

언어가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특히 서로 다른 문화 간 의사소통과 교환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미의 공통성이 문제 됩니다. 단어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어가 지시하는 대상을 경험한 것을 전제로 하는데, 역사적으로 다른 경험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을 의미 있게 교환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지식과 경험 관계는 종교, 세속주의, 자유주의 등 거대한 개념의 이해를 두고 여러 문제를 일으킵니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상대에게 투사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문화나 문명이 이런 개념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면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결정된 특정한 존재의 경험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 대상이 개인이든 공동체든 — 숨막히는 일이 될 수밖에 없고, 심지어 스스로 발전하고 성숙할 기회를 미리 제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학자, 특히 이슬람 학자는 서로 다른 문화와 문명 간 의미 차이를 탐구하고 사상과 경험을 나누는 일이 꼭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이슬람 문화와 서구 문화 모두를 경험할 기회를 얻은 이슬람 지식인으로서, 두 문화는 서로에게 배워 서로에게 커다란 도움이 된다 생각합니다.

또한 이슬람 문명과 서구 문명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의 배움과 두 문명의 성취를 기반으로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려는 의지에 인류 문명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슬람 문명과 서구 문명이 구조와 조직의 측면에서 서로 멀리 떨어진 것 같지만, 양자 모두 사회 정의, 평등, 공통선, 사회복지, 정치 참여, 종교적 자유 그리고 여타 많은 공통의 원칙과 가치를 공유합니다.

서구 문명은 위에 열거한 보편적 가치를 사회 조직 내에서 통합 함으로써 사회생활의 구조적 요소를 완성 했습니다.

하지만 서구 성공은 바로 봉건제와 조직화된 종교라는 특유한 역사적인 세력을 극복함으로써 성취 되었습니다.

이는 서구 르네상스의 기초였던 윤리적 기반, 즉 계몽 된 신앙을 탈색 하였습니다.

 

반면 거대한 영적 힘 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슬람은 현대에 걸 맞는 형식을 찾고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슬람은 과학과 종교, 세속과 신앙이 조화를 이루면서 인류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뛰어난 문명을 건설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이슬람이 현대 인 생활에서 윤리적 중심을 회복하고 포스트모던 세계의 비윤리적이고 비합리적 경향을 다잡는데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많은 이슬람 지식인이 긍정적으로 대답 할 것 입니다.

 

관건은 이슬람의 가치와 에토스 ethos를 현대적 형태로 재구성하는 것 입니다.

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슬람 학자들이 이슬람과 이슬람의 근본 원리 그리고 원리의 저변에 깔린 에토스에 관한 지식과 그 지식이 현대 사회에 미치는 의미의 다양한 측면을 다시 파악해서 개념적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이슬람의 규범에 뿌리를 둔 정치 질서는 정치 체제를 종교・문화에 한정해 해석하는 협소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기본 주장입니다.

이는 근대 세속주의 질서와 공유하는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세속주의 질서와 달리 이슬람의 정치 질서는 전체적으로 윤리적 자율체제를 유지하면서 윤리 가치를 증진 시키려고 노력합니다.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기구의 우선성, 개인과 공동체 모두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간의 상호작용을 활성화 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현대 국가의 권력을 제한해야만 합니다

 

종교와 정치의 상호작용

종교 영역과 정치 영역 간 상호 작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각각의 의미를 체계적이고 상세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지만, 이 두 개념의 경계와 서로 충돌하는 몇 가지 영역을 우선 밝혀두고자 합니다.

 

종교는 사람의 존재 의미를 결정하는 삶의 여러 측면을 말 해 줍니다. 특히 사람의 존재에 관한 세 가지 큰 질문, 즉 사람의 기원과 목적 그리고 운명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질문들은 철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들에 대한 종교의 답에는 철학의 답보다 더 큰 무게가 실립니다. 왜냐하면, 거대 질문에 대한 종교의 결론은 합리적 논증뿐 아니라 정서적 공감까지 얻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차이로 종교에 기반한 신념은 행동을 더 쉽게 이끌어 냅니다.

 

이 점에서 종교가 철학보다 유리한 면이 있습니다.

사람이 순수하게 이성적 논증에 기초해 수립한 이상에 따라 행동할 때보다 종교적 이상을 추구할 때, 더 큰 어려움을 견뎌내고 더 큰 희생을 감수한다는 사실은 역사를 통해 밝혀진 사실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종교적 힘의 근원은 약점의 근원이 되기도 합니다.

오류에 빠진 사람을 설득 할 때, 논리로 설득하기는 쉬우나 종교 신념을 동반 한 오류를 교정하기는 상대적으로 어렵습니다. 또한 공적 영역에서 종교적 신념을 공유하는 집단은 조화를 이루기가 쉽지만,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개인 간, 공동체 간에 갈등이 발생할 소지가 더 큽니다.

 

여기서 우리가 당면 한 질문은 종교와 정치가 서로 갈등하는지, 아니면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는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종교적 헌신이 사회생활의 수준을 높이고 향상시킬 수 있나 하는 것 입니다.

 

세속화의 정도

정치란 공적 영역을 조직하는 문제입니다.

즉 정치는 사람 행위를 조절하고 방향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신념과 이해관계는 공적 조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유럽은 정치와 종교가 개인 창의성을 억압하지 않고 공존하는 사회질서를 개발하려고 노력하면서 종교 개혁과 세속화라는 두 가지 연관된 과정을 걸어 왔습니다.

종교 개혁은 개인을 종교 기관, 즉 가톨릭 교회로부터 해방시켰습니다.

세속화는 국가를 특정 종교 집단으로부터 해방시켜서, 공공 정책이 종교 명령이 아니라 합리적 논증에 기초하게끔 했습니다.

 

하지만 비록 종교가 공적 영역에서 더는 눈에 띄게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되었음에도, 공공 정책과 공적 생활을 형성하는데 여전히 중요한 힘으로 작용합니다. 왜냐하면 공적 질서의 본질을 합리적으로 논증하기 위해서는 공적 생활과 사회적 상호작용의 의미를 종교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옳고 그름, 선과 악, 용인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과 같은 개념은 모두 종교적 신념이나 정치적 타협의 산물입니다.

 

세속화는 다면적 현상이란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속화의 한 면이자 초기 세속화를 추구했던 이들이 성취하고자 했던 것은 국가와 교회의 분리입니다. 하지만 이를 분리하면서 역사와 전통을 부정했기 때문에, 점차 ‘신의 죽음’까지 로 이어졌고, 20세기로 들어 설 즈음 서구 사회에 종교적 가치와 신념은 희미해졌으며, 21세기가 시작 될 무렵에는 마침내 ‘인간의 죽음’까지 낳았습니다.

이기주의, 자기 방종, 과잉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세속주의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세속주의의 근원

세속주의는 복합적이고 다면 적 태도와 관습이기에, 간략하게 설명하거나 단순하게 정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근대와 전근대의 세속주의적 태도와 관습 간에는 유사성이 있지만, 오늘날의 세속주의는 근대 서구에서 태동한 이후 각기 다른 사회에 정착된 현상입니다.

 

본질적 의미에서 세속주의는 국가가 특정한 종교적 믿음이나 가치를 증진하기 위해 개입하지 않고, 국가 권력과 조직을 종교를 탄압하는데 쓰지도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가의 정치 권력으로 편협한 종교관과 가치를 사회 전체에 강요하는 것을 막고, 특정한 종교의 상징 사용으로 여러 신앙공동체 사이에 분쟁을 유발하지 않기 위해서, 서구 지식인은 정치 기구를 종교와 분리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목적에서 계몽주의자는 여러 개념과 원리를 창안하고 이를 근대 유럽의 의식을 재구성하는 기초로 삼았습니다.

계몽주의 사상가와 실천가들이 제시한 새 정치 이데올로기는 평등, 양심의 자유, 법치 등의 개념을 강조했는데, 이러한 개념은 유럽의 구교 체제를 끝낸 종교 개혁 세력도 옹호하던 것 이었습니다.

 

유럽 세속국가 선도자들이 옹호하던 정치・사회적 윤리는 비록 합리적 용어와 공통 선이라는 논리로 주장했으나, 사실 15세기 유럽의 종교개혁가들이 만든 종교 전통에서 유래한 것 입니다.

데카르트, 홉스, 로크, 루소 등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주장하던 초기 선각자들은 종교나 신앙을 훼손하려는 의도는 없었으며, 그보다는 개혁적 사상을 신과 시민 종교라는 기반 위에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이를테면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지식의 확실성과 진리성은 오직 진실한 신을 향한 나의 인식에 기반한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어떤 것에 관해서도 완전한 지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종교를 가르치고 실천하는 전통적 방식에 비판적이었던 루소 역시 근대 국가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헌신과 믿음의 필요하다는 사실, 아니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여러 ‘교리’를 채택하고 이를 자신이 말한 ‘시민 종교’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했습니다.

“망자의 내세, 정의로운 자의 행복, 죄인의 처벌, 사회 계약과 법률의 신성, 전지전능하고 지적이며 자애로운 신성의 존재 등은 긍정적 교리다. 반면 내가 제한하고 싶은 단 하나의 나쁜 교리가 있다면 그건 ‘불 관용’이다.”

 

심지어 진리 개념을 감각 경험에만 제한하고 이성에 기반 해 도덕 준칙을 세우고자 했던 칸트조차도 다음과 같이 주장 했습니다.

“신이 없다면, 그리고 우리가 볼 수는 없지만 희망하는 그 세계가 없다면, 위대한 윤리적 이상은 목표와 행위의 준칙이 아니라 그저 동의와 찬사에 기대야 하는 개념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속주의 학자들은 종교적 진리의 가능성을 거부하고, 계시를 윤리적・존재론적 지식의 원천이라는 주장을 무자비하게 공격한 결과 종교를 변방으로 몰아내고 윤리를 손상 시켰습니다.

진리가 아닌 공익과 비용을 기반으로 윤리를 수립하려는 노력은 우리의 직관에 어긋나고, 결과적으로 허망한 수고로 판명되었으며, 결국 이기주의와 윤리적 상대주의로 귀결 되었습니다.

 

물론 종교에 더 적대적인 지식인도 있었는데, 특히 프랑스에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유럽의 보편적 정서를 대표하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프랑스 혁명이 명백히 반종교적 성향을 띄긴 했지만, 그것은 훗날 니체가 설파했듯이, 종교 자체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주로 가톨릭 교회가 대표한 조직된 종교에 대한 거부였습니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식론적 회의주의인 근대 철학은 노골적으로든 당당하게든 그리스도교에 반대한다. 물론 눈 밝은 사람들은 이것이 결코 종교에 반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 볼 것이다.”

 

애초 세속주의 정서는 종교 개혁에 있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종교적 위계와 중앙집권화된 종교에 개신교의 반발이 있었습니다.

세속주의는 종교를 사회로부터 분리하거나 신앙을 정치적 행위로부터 분리하려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교회 구조에서 떼어내고 종교 기관과 국가 기관을 분리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 세기가 지난 후 유럽의 진보 지식인 사이에는 더욱 진전된 해방과 발전을 위해 종교의 부정적 힘을 제거하는 것이 필수라는 믿음이 나타납니다.

 

칼 마르크스는 세속 국가가 성공적으로 종교를 무력화시키고 공적 영역에서 추방 했습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세속주의는 종교를 단지 개인 문제로 축소시키고 국가와 관련성만 배제했을 뿐 입니다. 하지만 종교가 개인 선택이 되면서 시민사회에서 종교는 더욱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종교가 철저하게 개인 영역으로 물러선 미국에서도 사회는 꾸준히 여러 신앙공동체로 분리되고 있으며, 이는 각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구성원의 경제생활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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