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다처제-1

일부다처제

 

엄밀히 말하자면 ‘중혼’은 복수 배우자를 의미합니다.

한 남성이 두 명 이상의 부인을 동시에 둘 때 이를 일부다처(一夫多妻)라고 합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두 용어를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도 구별 없이 사용하겠습니다.

 

한 여자가 두 명 이상의 배우자를 두는 경우에는 이를 일처다부(一妻多夫)라고 합니다. 남녀가 혼성인 경우에는 이때 집단혼이 됩니다.

각 사회는 제각기 처한 시대와 놓인 상황에 따라 어느 정도 이러한 세 가지 기본적인 유형의 중혼을 행해왔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흔한 경우는 일부다처입니다. 그러나 일부다처는 몇 가지 이유 때문에 불가피하게 극 소수 특정인구에만 한정되어 저 왔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슬람이 허용하는 유일한 유형입니다.

이슬람은 다른 두 가지 유형, 즉 복수남편(一妻多夫)과 집단혼을 엄하게 금합니다.

 

유대교나 기독교가 오로지 일부일처제였다거나 일부다처제에 철저하게 반대해 왔다는 말은 심지어 오늘날에도 정확한 사실이 아닙니다. 고이테인 Goitein 등 몇몇 저명한 유대인 학자를 통해 알려진 바로는, 일부다처 유대인 이주민들 때문에 이스라엘 주택당국이 곤욕을 치렀다고 합니다.

기독교 한 갈래인 모르몬교 입장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간통, 불륜, 배우자 교환보다는 차라리 일부다처가 낫다고 하는 가톨릭 주교들의 견해 역시 모르몬교와 같은 입장입니다.

 

이슬람으로 돌아가면, 무슬림은 육욕에 사로잡혀 많은 아내와 첩을 거느린 사람이라 여기는 시각이 많습니다. 아내가 하나인 무슬림이나 미혼 무슬림을 보면 놀라움을 표시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은 무슬림이 한껏 자유롭게 한 아내 혹은 다수의 아내로부터 다른 아내로 전전할 수 있으며, 이것이 아파트를 옮기는 것만큼이나 심지어 옷을 갈아입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라 믿습니다.

이런 오해는 선정적인 영화나 싸구려 소설 때문에, 혹은 몇몇 무슬림들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더욱 커졌습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이슬람의 찬란한 빛과 사회 철학을 보지 못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해 무슬림 관점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이 글을 읽고 난 후 나름의 판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일부다처제는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야곱, 다윗, 솔로몬 등의 선지자, 왕, 귀족 가운데 여러 형태로 일부다처가 행해졌습니다.

그 중 일부는 적법하지만 다른 일부는 불법적, 위선적 형태였습니다. 또 몰래 숨긴 일부다처가 있는가 하면 공개적 일부다처도 있습니다. 숱한 기혼자가 남몰래 정부를 부양하거나 애인을 따로 숨겨 놓은 경우도 많으며, 여성들과 놀아나는 남자들이 많다는 사실은 구태여 조사 할 필요조차도 없습니다.

도덕주의자들이 좋아하든 않든 일부다처는 행해지고 있으며, 어디에나 그리고 역사 모든 시대에 있었고 지금도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성서가 계시되던 시대에는 일부다처가 공인된 관습이었습니다. 종교적, 사회적, 도덕적으로 인정되었고 이에 대해 아무런 반대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문화적 관습으로 이 문제를 성서에서 거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일부다처가 기정사실이고 당연지사였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성서는 일부다처를 금하지도, 규제하지도 않으며, 어떤 식으로도 제한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성서에 나오는 열 처녀 이야기를 한 번에 열 명의 아내를 허락한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선지자・왕・귀족의 이야기는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무함마드 당시에는 일부다처의 관습이 사회생활 속에 널리 그리고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이슬람은 이러한 관습을 무시하거나 버리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아무 제한도 없이 그대로 두지도 않았습니다. 이슬람은 이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일부다처가 조장하는 혼란과 무책임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널리 행해지는 여타 관습과 관행에 대해서도 그러했듯이, 악습을 일소하고 좋은 점을 지켜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 일부다처 제도를 체계화하고 정비하기 위해 개입했습니다.

 

이슬람은 사회기반인 가정이 혼란해 지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기에 현실적인 규정을 제시했습니다.

  1. 일부다처는 일정한 조건과 상황 아래에서만 허용된다. 하지만 이는 조건부 허용이며 종교적 신조나 필수가 아니다.
  2. 이슬람 이전에는 아무런 제한이나 방침도 없었지만, 특정한 조건에서는 최대 네 명까지 아내를 둘 수 있도록 허용한다.
  3. 두 번째, 세 번째 아내도 혼인 후에는 첫 번째 아내와 동등한 권리와 특권을 누린다. 아내들은 어떤 경우에나 첫 번째 아내가 가지는 것을 당연히 가질 수 있다. 아내들 모두에게 공평한 대우, 부양, 사랑을 해야 한다. 이는 아내를 둘 이상 둔 남성이 지켜야만 할 필수 조건이다.
  4. 이러한 허용은 예외적 허용이다. 이는 일부 사회적・윤리적 문제를 해결하고 불가피한 어려움에 대처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자 시도다. 요컨대 이는 긴급조치의 일종으로 보아야 한다.

 

이 문제에 관련한 꾸란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대가 고아에 대해 공정하지 못할까 두렵다면, 바라는 여자 두 명이나, 세 명, 네 명과 결혼할지니, 그대가 한 명처럼 공정하지 못 할까 두렵다면, 오직 한 명이거나 오른손 소유리니●, 그대의 부당함을 막으리로다.” (꾸란 4장 3절) ● 포로 한 명을 뜻합니다. 이 경우에도 첩이 아니라 혼인해야 합니다.

 

이 구절은 많은 무슬림이 전사하여 과부와 고아를 남긴 우후드 전투 이후에 계시되었습니다. 생존한 무슬림이 전사자의 아이와 과부를 마땅히 돌봐야 했습니다. 결혼은 과부와 고아를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습니다.

꾸란은 이와 같이 경고하는 한편, 고아의 권리를 보호하고 보호자가 부양가족을 불공평하게 대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선택권을 부여했습니다.

이런 배경이 있었던 만큼, 이슬람이 일부다처를 장려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미 존재하는 일부다처의 관습에 규정을 도입해서 규율 한 것입니다.

 

이슬람이 일부다처를 폐지하지 않은 이유는, 오늘날 일부다처를 허용하지 않는 헌법과 사회규범을 가진 국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폐지한다고 해도 이론으로만 폐지될 뿐 현실에서 이 관습이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은 생활에서 실천하는 종교입니다. 단지 외우기만 하는 교리나 이론이 아닙니다. 이슬람은 현실에 기반하며 이슬람 관점은 매우 실질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슬람은 제한적이고 조건을 둔 일부다처를 허용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런 제도를 없애는 것이 인류에 더 이로운 길이었다면 틀림없이 하나님은 이를 폐지하라 명했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보다 더 잘 알 수는 없습니다.

이슬람이 일부다처를 허용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런 이유들이 단지 상상이거나 가정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쉽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검토해 보겠습니다.

  1. 사회에 따라 남성보다 여성이 많은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산업 지역, 상업 지역 또는 전쟁에 휘말린 지역이 이런 경우입니다. 만약 무슬림 사회가 이런 경우에 해당하고, 이슬람이 일부다처를 금하며 법률 혼을 일부일처로 제한한다면 미혼여성은 생존과 생활문제가 발생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단순히 육체적 문제뿐이 아닙니다. 이는 도덕, 감정, 사회, 정서 문제이자 인간 본성에 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누구나가 가정을 꾸리기 원합니다. 단순히 육체적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문제가 심각해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를 방치하면 심리적 콤플렉스, 신경쇠약, 사회 혐오, 정신적 불안 등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는 현실에서 의사들이 익히 경험하는 사실입니다.

 

타고난 욕구와 감정적인 요구는 실현되는 것이 맞습니다.

어딘가에 속하고, 누군가를 돌보고, 돌봄을 받고 싶은 욕구는 충족되어야 합니다. 여성도 인생을 즐기고 자기 몫을 차지할 권리가 있습니다. 합법적이고 떳떳한 방법으로 권리를 차지할 수 없을 때는 위험하고 일시적일지라도 다른 방법을 찾습니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교제를 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남녀는 서로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습니다. 파티, 사교 모임이나 여러 행사에 참석합니다. 이러한 구애 행위가 항상 도덕적으로 떳떳하지만은 않습니다. 기혼자가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날 경우, 법을 어겨서라도 곁에 두려 합니다. 공개적이든 은밀하든, 품위가 있든 없든, 법의 형식을 갖추든 아니든 어떻게 해서든 관계를 가지려 합니다.

이는 틀림없이 기혼자의 가정 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사회의 풍기와 도덕을 파괴하게 됩니다.

배우자와 자식은 버려지고 방치되며, 가정은 파탄 납니다. 그리고 혼외 관계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도 보호받지 못하고, 품위와 권리를 지킬 수 없습니다. 도덕은 이런 관계의 시작부터 이미 치명타를 맞았고, 양심은 하나님과 인간의 모든 규칙을 어기고 관계에 빠졌을 때 마비됐습니다. 게다가 사회의 법은 혼외 관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런 관계가 반복된다면 품위와 권리를 지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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