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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04 Nov 2024

이슬람에서 이야기하는 예수님-4편

Originally posted 2023-12-22 13:22:40.

예수 시작을 놓고 이론이 분분했으며, 최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는 최후까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서와 지혜와 그 분명한 징표와 성령에 의한 불굴 의지로 자기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를 진심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극히 적었습니다.

 

예수는 관대하고 온화했지만, 이스라엘인의 자손들은 위선으로서 율법 정신을 저버리고 문자 속에서만 집착을 했습니다. 이런 것을 예수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인 자손들은 예수를 배척하고 반대했습니다. 실제로 그를 잔혹하게 죽이려는 음모까지 꾸몄습니다. 이스라엘인은 선지자 중 일부를 배척하고 죽인 사례가 있었는데, 예수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을 뻔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믿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실제 사건의 극화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려는 음모가 있었고, 실제 십자가형이 집행되었습니다. 누군가 형을 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는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예수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예수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직접 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잔혹한 죽음으로부터 예수를 구하시려 하늘로 높이 올리셨고, 그것으로써 지상에서 예수가 맡은 마지막 사명을 장식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 영혼만 높아진 건지, 영혼과 육체 모두가 살아나서 하늘로 올라갔는지, 아니면 그가 자연사한 후에 영혼만이 올라갔는지는 꾸란에서 밝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무슬림에게 중요한 점이라면 하나님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 하나님께 올려졌다고 계시했습니다.

 

꾸란은 예수 최후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서의 백성들이 하늘에서 계시를 내려달라고 그대에게 요구할 것이니, 하나님을 모든 군중들에게 보여주도록 하는 기적을 모세에게 요구했었으니, 현혹에 얼이 빠졌노라. 명백한 징표를 받았음에도 송아지를 섬기었으나 용서하시어 권위와 증거로서 모세를 보냈도다.

서약으로서 그들 위로다 산을 올리고 말했나니 ‘문으로 들어 절하라’

또 말했나니 ‘안식일을 어기지 말라.’ 이렇게 그들 서약을 엄숙하게 받았노라.

저들이 계약을 어기면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징표를 부정했으며, 선지자들을 부당하게 살해하면서 말함에 ‘우리 마음이 가쳤으니.’ 아니로다, 하나님께서 그들 마음을 불신으로 봉하셨으니, 오직 몇몇만 믿으리라.

 

불신으로 마리아에 큰 거짓을 말하니

‘우리가 마리아의 아들이며 하나님 선지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노라’ 말하나 아니로다, 그들은 죽이지 못했으며 십자가에 달지도 못했으니 그렇게 보였음이라.

이렇게 다른 자들은 의심 속에 있으며, 알지 못하면서 추측만을 따르나니, 결코 죽이지 못했도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올리셨으니, 하나님은 권위와 지식이 충만 하시니라.” (꾸란 4장 153 – 158절, 참조: 꾸란 3장 52 – 59절)

 

이슬람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교리와 이 교리에 바탕이 되는 사상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 인 꾸란을 따르자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사실이 아닐뿐더러, 피의 희생과 대속도 사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에서 보는 원죄에 대한 입장이라면 아담이 진 죄는 속죄로서 이미 용서받았고, 모든 죄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할 때 스스로 자기 죄에 대한 책임을 지며, 어느 누구라도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속죄를 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슬람에서 피의 희생과 대속 교리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교파 중 일부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믿지를 않았습니다.

바칠리드 교파 Bacilidan 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단지 그렇게 보였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도체태 교파 Docetae 는 예수가 결코 육체를 갖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단지 가진 것처럼 보인 거라고 하면서, 서기 138년경, 마르치온 교파 복음서 Marcionite Gospel 는 예수의 탄생 자체를 부인하면서, 단지 인간 형체로 나타났을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성 바나바스 복음서 Gospel of Saint Barnabas는 ‘십자가 대체 설’ 을 지지합니다.

무슬림은 예수 최후에 관해, 시작과 같은 시각으로 받아들입니다.

 

무슬림은 예수가 살해되거나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으며, 하나님 명예와 은총으로서 하나님께

올려 졌다고 믿습니다.

이 문제 전반에 관한 한 무슬림들 생각은 뚜렷하며 꾸란은 예수에 관한 논쟁을 명쾌하게 정리를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형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여러 의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1. 그리스도 교회가 생각하는 예수 십자가형이 하나님의 정의, 자비, 능력, 지혜에 부합하는가.

2. 죄 지은 당사자가 아닌 사람에게 타인의 죄와 악행을 회개하게 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공정하게 처리하시는 것인가.

3. 예수가 굴욕적으로 살해당했다고 믿는 것이 도대체 하나님께서 베푸신 자비와 지혜에 맞나.

4. 예수가 희생되도록 방치하는 것이 동맹자를 수호하고 사랑하는 이를 보호한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일인가. 이것이 하나님의 의지와 말씀을 지키는 것 인가.

5. 지극히 관대하신 하나님께서, 원죄로 아담과 자손들을 용서할 수 없었고, 예수의 피로 속죄할 때까지 불안과 당혹 속에 인류를 방치했다고 믿는 것이 타당한가.

6. 초기 그리스, 로마, 인도, 페르시아의 종교 교의는 별개문제로 하고 십자가형과 피의 희생에 대한 믿음이 또 어느 종교에서 나타나는가.

7. 바커스, 아폴로, 아도니스, 호르스 등 기타 처녀가 수태하여 낳은 신화 속 신들이 아닌, 인간 중에서 예수 말고 또 다른 처녀수태 사례가 있는가.

8. 예수가 했다는 말과, 바커스가 한 말. 즉 ‘내가 세상의 알파요 오메가며 피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왔다’는 말을 비교하면 새로운 관점이 생기지 않는가. 예수가 했다는 말과 유사한 사례가 많다는 사실이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나.

9. 로마 당국은 왜 예수를 처벌하려 했나. 설교자였던 그는 로마 당국이 해당 지역에서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는데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이처럼 법을 준수하는 선량한 시민 지지자를 잃어버릴 이유가 과연 무엇인 가.

10. 로마 총독 빌라도의 성품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나. 빌라도 에게 불복하여 로마에 항소한 당시 유대인들과 사이가 좋았나. 빌라도의 통치 방식으로 볼 때, 그는 유대인을 미워하고 경멸하지 않았나. 뇌물에 약하지 않았나. 아리마다의 요셉 같이 예수에게 감복한 부자의 뇌물을 받지 않을 이유라도 있었나. 누가의 말에 의하면, 요셉은 예수에게 관심이 많았고, 법률 고문으로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라는 평결에 찬성하지 않았으며, 평결 논의에서 구출 노력이 실패로 끝나자 부패한 총독에게 뇌물을 주어서라도 예수를 십자가형에서 구해내려고 할 수는 없었을까.

11. 예수의 제자 몇 명이 실제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목격했으며, 반응은 어떠했나. 제자들이 모두 예수를 버리고 달아났다는 마태의 말(마태복음 26:56)이 사실일 수 있나.

이것이 위대한 교사의 위대한 제자들이 지닌 인격이었다는 말 인가. 오직 요한만이 현장에 있었는데, 그는 얼마 동안 현장에서 있었나. 믿을만한 사료(The Chamber’s Encyclopedia, 1950. 십자가에 관한 논문 참조)에 의하면, 사형수가 십자가에서 죽는 데는 보통 며칠씩 걸렸는데, 예수의 경우에는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나. 또 함께 십자가형을 당한 두 사람은 죽지 않았는데 어째서 예수만이 죽었나. 형 집행 세 시간 동안 온 땅을 뒤덮었던 어둠은 또 어찌된 일 인가. (마태 27:45, 마가 15:33, 누가 23:44) 어둡고 혼란한 그 시간에 바꿔 치기 할 수는 없었을까.

12. 예수의 십자가형 집행을 위해 온 로마 군인들은 예수를 얼마나 잘 알고 있었나. 그들이 현장에 데려간 사람이 예수였는지 어느 정도로 확신했을 까. 또 그들이 예수를 알아보았을 까. 민중 폭동이 두려운 그때, 그들이 예수를 확인하는데 신경을 쓸 경황이나 있었을 까.

13. 단호하고 강인한 선지자셨던 예수가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비난 혹은 근심하는 투로 하나님께 말했다고 상상할 수 있나. 예수처럼 특출한 선지자가 고통으로 하나님이 자신을 버렸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가. 이것을 하나님께 말하거나 고통에 반응하는 자의 모범 혹은 선례로 간주할 수 있을 까.

14. 자비롭고 관대한 하나님께서, 죄 없을 뿐 아니라 봉사와 대의에 헌신한 이를 잔인하고 치욕적인 십자가형을 가하지 않고서는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없었을까. 이것이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의 방식인가.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의 반영인가.

 

당시 주변 상황, 당국의 행동, 민중의 반응, 하나님의 개념, 인간의 지위, 종교와 생명의 목적 등을 연구하면 비슷한 질문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러한 의문에 충분히 답할 수 있어야 비로소 평온과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관심 있는 사람 모두 이 문제를 진지하게, 깊이 연구 조사해 보기를 권합니다.

 

무슬림에게는 이런 의문이 없습니다. 이슬람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살해된 것이 아니라, 영예롭게도 하나님께 올려졌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문헌에서 의하면, 십자가형을 당한 이후 예수가 몇몇 제자에게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꾸란의 내용과 어긋나지를 않습니다.

 

예수는 스스로를 구하고 적의 음모에 반격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환으로 은신했던 것입니다. 적의 계획대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의지대로 지위가 더욱 높여지고 더욱 영예롭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위대함이 가르침 그리고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그리스도교의 신앙에서는 이런 내용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이러한 믿음이 타당하다면, 여전히 인간의 죄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의 대속은 헛된 일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예수처럼 대의를 위해 죽어간 위대한 영웅은 수없이 많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죽음으로서 신격화가 될 수 있다면 인류에게는 무수한 신이 있어야만 합니다. 누구라도 이런 신성을 예수에게만 국한하고 비슷한 상황에서 죽은 다른 영웅들을 제외한다면 독단적인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무슬림은 이런 역설에 빠지지 않습니다.

 

무슬림은 예수의 위대함이란, 하나님의 선택과 말씀으로서 영예롭게 했으며, 계시를 전하고, 가르치는 사명, 훌륭한 인격에서 비롯한다고 믿습니다. 겉과 속이 모두 진실했으며, 위선과 신성모독에 맞서 싸웠고, 태어날 때와 승천할 때 모두 특별했으며, 백성에 대한 증거이자 하나님이 보내신 자비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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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를 위해 꾸란 관련 구절을 열거합니다.

2장 87, 136, 253절

3장 42 – 59, 84절

4장 156 – 159, 171 – 172절

5장 17, 46, 72, 75, 78, 110 – 118절

6장 85절

9장 30 – 31절

19장 1 – 40절

23장 50절

33장 7절

42장 13절

43장 57 – 65절

57장 27절

61장 6,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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