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나시우스

삼위일체 교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신성은 완전히 보존되었고, 신학적 비판뿐만 아니라 양태주의를 단죄했던 철학적 비판으로부터도 벗어 났습니다.

모든 길은 구세주 그리스도의 신격으로 통했으며, 그리스도를 숭배의 최고 단계, 즉 하나님 자체로 찬양하는 것 역시 다신론이나 반 지성주의 혹은 의인화 혐의를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령 자체 신성과 같은 비중으로 강조하지는 않았습니다. 니케아 신조에 새로 들어간 성령 관련 구절은 모호 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공의회에 모인 대다수 주교 경향을 반영하지 않고 니케아 신조를 통과시켰기 때문에, 성령 신성에 관련 된 신학적 논란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공의회는 예수의 본성에 관해서는 결정을 내렸지만, 삼위일체를 이루는 성령 역할과 본성에 관해서는 명확하게 결론 내리지를 못했습니다.

사실 공의회는 신학적 문제들에 대해 정치적 혹은 외교적인 해결에 의존 했습니다.

 

공의회가 내린 결정은 반목하는 세력과 해석을 잠재웠지만, 일시적이었을 뿐 만족스럽지가 않았습니다. 성령의 가호 아래에서 공의회의 결정이 이루어졌다는 주장이 거짓으로 판명되는 데에는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본인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고 (336년), 죽음에 이르렀을 때 (337년), 소위 성령이 공의회의 결정을 인준하고 신의 의지를 실현했다는 주장을 철회 했습니다.

 

이로써 모든 것이 뒤집어 졌습니다. 황제 칙령에 따라 공의회의 성인(聖人)은 졸지에 악당으로 변해버렸고, 악당은 다시 성인이 되었습니다.

아리우스와 그의 소위 이단적 견해는 칭송 받았고, 아타나시우스는 추방 되었습니다.

제롬이 다음과 같이 쓴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전 세계가 자신이 아리우스파라는 사실을 알고 놀라움에 전율했다.”

 

니케아 신조를 구해낸 것은 또 다시 황제의 권력 이었습니다.

발렌티니아누스 황제(364년)가 신조를 복구했고,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38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공의회에서 약간의 변경 사항을 추가 했습니다.

 

이쯤에서 삼위일체의 옹호자로 유명한 카이사리아의 바실리오 Basil the Great(330-379),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 Gregory of Nazianzuz(329-389), 바실리오의 형인 니사의 그레고리오 Gregory of Nyssa(329–394) 등 카파도키아 교부들을 언급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타고 난 신성을 부여하고 성부와 같은 실체와 본질을 지닌다는 점에서 아타나시우스와 의견이 일치했지만, 위격 문제에서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아타나시우스에 따르면, 성부, 성자, 성령은 3중 관계망으로 연결된 동일 한 존재입니다. 인간이 아버지이자 아들이고 형제일 수 있듯이, 신은 성부이자 성자 혹은 성령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독립적인 위격을 지닌 채 통일성을 유지하는 동등한 세 존재라고 주장 했습니다.

 

카파도키아 교부들의 삼위일체론 은 그리스도교사 에서 삼위일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했던 두 유형의 이론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보았듯이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삼위(三位) 검토부터 시작하는 반면, 아우구스티누스 이론은 하나의 존재 내에 각 위격이 내적 관계를 맺는 형태로 삼위를 논합니다.

양쪽 이론 모두가 불완전하고 몇 가지 약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카파도키아 이론은 속된 삼신론이 될 수 있고, 아우구스티누스 이론은 사벨리우스 주의나 유니테리어니즘 Unitarianism (삼위일체론 에 반대하고 예수는 신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기독교의 한 분파) 으로 갈 수가 있습니다.

 

세 위격이 영원성, 행위, 의지에서 일치한다고 주장을 해도, 공통 본성을 지닌 세 존재에 기반하는 신학을 일신론이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비록 카파도키아 파의 신성 삼위일체론(세 위격 혹은 세 독립적 실체가 단일한 성질로 되어 있음)이 ‘과학적 도식’으로 불리기는 하지만, 이 역시 역사적 예수 본성과 예수와 하나님의 관계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데는 실패를 했습니다.

 

삼위일체에서 각 위격을 구분하는 데 사용 한 용어는 파울 틸리히 Paul Tillich의 말 그대로 공허합니다. 카파도키아 파의 도식은 가현 설 이나 사벨리우스 주의, 혹은 아타나시우스의 양태주의로 향하지는 않을 지 모르지만, 더 위험한 그 무엇, 즉 삼신론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주류 교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되고 완벽하며 완전한 신성과 신격을 주장했음이 틀림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류 교부들은 상호 모순적 두 원칙, 즉 성부라는 형체 내에서 신의 초월성과 형언 불능 성 그리고 그리스도라는 인간의 형체 내에서 신의 완전한 육신화를 동시에 주장하려고 했던 것 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시도는 모두, 양태든 위격이든 신체주의와 의인화로 이어 졌습니다. 역사 속에 실제로 한 평생 살았던 인간을 사실상 신이 완전히 인간으로 나타난 존재라고 주장하면서 동

시에 신체주의나 의인화의 혐의를 벗어나기는 불가능합니다. 이후 논쟁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이 지닌 본성과 의지에 관한 토론에서 더 분명 해 집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널리 선언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인의 오랜 꿈 이었습니다. 초기 교부들부터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까지, 교리를 통해 신의 초월성을 유지하면서 그리스도 본래의 신성을 보존할 필요가 있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 해 왔습니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인성(人性) 역시 항상 문제였습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가 역사적 실체로 존재했기 때문에 인성을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 했습니다.

 

교회가 여러 점진적인 노력을 통해 예수는 신 이었으며 완전히 신성한 존재라고 최종 결론을 내리자, 어떤 식으로든 예수의 신(神)-인(人) 관계를 설명해야만 했고, 양자가 어떻게 통일되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신이자 동시에 인간인 그리스도 문제는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결국에는 가현 설 이나 양자론(養子論)으로 이어 졌습니다.

 

교회는 예수 신성이 절대적이고 순수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해 졌습니다.

니케아 공의회 이후 몇 십 년이 지나자 신학적인 관심은 다른 쪽으로 기울기 시작 했습니다. 이제 더는 성자의 선재 성이나 신 격인 성부와 성자관계가 아니라, 역사 적 인물인 예수를 신으로 보는 문제로 이동 했습니다.

 

공의회에서 나온 삼위일체 도식은 인간 역사의 일부가 되기에는 지나친 형이상학으로 간주 되었습니다. 만약 예수가 진실로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존재라면 진짜 본성이 무엇이었나?

인간인가 아니면 신인가?

인간의 역사에는

이런 육신화(肉身化)를 설명 할 다른 사례가 없는데 어떻게 인간 언어로 논리적인 설명과 이해가 가능할까?

 

아타나시우스와 가까운 친구였던 라오디케아의 주교 아폴리나리우스 Apollinarius(~390년)는 이 복잡한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 해 보려고 했습니다.

오랫동안 인정되어온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도 론, 즉 말씀-육신 이론을 논리적 한계까지 밀어 붙였습니다.

 

아타나시우스가 주도한 니케아 신조에도 나와 있듯이, 그리스도의 절대적 신성은 구원에 필수적이며, 오직 신의 진짜 아들만이 인간에게 계시를 할 수 있다고 간주 했습니다.

아폴리나리우스는 말씀-육신 그리스도론을 고수하면서, 구원이라는 행위는 인간 예수 그리스도가 신이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주장 했습니다.

예수는 오직 하나의 신인(神人) 본성, 즉 ‘신(神)인 인간’의 본성을 갖는다는 주장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인간의 일반적 영혼 대신 신의 말씀이 계신다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의 육신은 ‘성스러운 육신’ 혹은 ‘신의 육신’이며, 따라서 예배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는 사실상 명백한 가현설적인 설명인데, 그리스도가 진짜 인간이 아니라 단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뿐 이라 말 하는 것 입니다.

 

이 주장은 이제까지 교회 내에서도 숨겨 져 늘 존재해 왔던 신체주의적 주장의 절정 이었습니다. 이 주장은 인간으로 나타난 그리스도가 신의 우시아 ousia, 즉 영혼과 본성을 그대로 유지했으며, 인간의 이성적 영혼이나 본성을 갖지 않았다는 뜻 입니다. 나중에 ‘단성론’으로 불리는 이러한 생각은 단일신론의 또 다른 표현 이었습니다.

 

한편 안티옥 학파의 대표들은 ‘단성론’ 혹은 아폴리나리우스 주의에 대항하여 자신만의 과학적 그리스도론 교리를 주장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안티옥 학파는 예수 구원보다는 윤리 쪽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만약 예수가 진짜 인성과 자유의지를 지닌 완전한 인간이 아니었다면, 예수는 완벽한 윤리적 본 보기가 될 수 없었을 것 입니다.

 

안티옥 학파의 그리스도론 은 알렉산드리아 류의 ‘말씀-육신’ 도식보다는 ‘말씀-인간’ 도식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로고스 그리스도론 과 그리스도의 본래적 신성이라는 니케아 교리에 따르자면, 그리스도의 두 본성을 주장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안티옥 학파는 이렇게 주장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각각 필요한 모든 특성과 능력을 갖춘 완전한 인간이자 완전한 신이다.

그리고 어떤 특성이나 능력도 서로 섞이지 않는다. 로고스가 결코 육신화하지 않는다.

신의 본성이 인간 본성을 바꾸지 않는 것이다.

인간 본성을 지닌 예수는 은총과 자유의지의 힘으로 신의 본성을 따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리아가 신을 낳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는 실체적 진실이 아닌 어디까지나 은유적인 표현일 뿐이다.”

 

안티옥 학파는 신약성서의 모순을 반영하는 또 다른 사례에 불과합니다.

신약은 한편으로 초월적 일신론을 강조하고 예수의 나약한 인성과 전능한 신에 종속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특히 바울과 요한의 글에서 예수에게 일종의 신적 지위를 부여합니다.

예수의 대속 적 죽음을 통한 구원과 신과 합 일에 몰두한 전통주의자들은 요한의 해석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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