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ly posted 2023-11-03 22:54:36.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서 거의 매일 부딪히게 되는 사소한 문제를 모두 법정에서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든 일을 법정에서 해결하려면 불평 없이 지내기 위해 거의 모든 가정이 법정에 서야 만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훈계를 하기 위하여는 작은 기관이 필요합니다. 이런 것이 남성이 가정대표이자 실질적 운영자이기 때문에 남성이 사용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기관입니다. 앞 구절에서는 남편이 아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고 아내를 훈계하도록 명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순종한다면 악덕은 고쳐질 수 있으며 만약 아내가 악덕을 고집한다면 남편은 아내와 잠자리를 따로 해야 합니다. (이것은 처음 방법보다 좀 더 가혹한 형벌이라고 여겨집니다.)
이것은 또한 아름다움과 매력을 자랑하면서 때론 경솔할 만큼 애교를 부리는 여성 심리에 대한 이슬람의 통찰입니다. 남편이 아내와 잠자리를 따로 한다는 말은 남편이 아내의 아름다움, 매력 등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것은 여성의 부푼 자존심을 위축시켜 이성을 되찾게 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방법까지도 아내의 태도를 고치지 못한다면 이것은 아내의 자세 의미합니다..
이런 내용은 이슬람법의 징벌이 부드러우면서도 가혹한 일면이 있음을 밝혀줍니다,
거친 대우가 아내의 지위를 강등시키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방법은 모든 회유적인 방법이 실패한 경우에만 허용되는 것이며 매우 조심스러운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심리적 도착 상태인 경우 징벌이 유일한 치유 방법임을 알아두어야 하겠습니다.
정상적인 경우에는 위에서 언급한 회유적인 방법, 즉 훈계하고 잠자리를 달리하는 방법이 효과적이지만 아주 심한 마조히즘에 걸린 경우에 이와 같은 방법은 효과가 없으며 육체적인 징벌만이 유일한 치유 방법임을 심리학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사소한 일로 아내를 때려서는 안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남녀의 완전한 평등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는 공리적이고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것이며, 인간성과 관련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면에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점은 이슬람이 아내가 남편의 거친 대우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아내는 그런 경우에 별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1) 아내의 남편에 대한 의무는 임의적,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이런 의무는 하나의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사회 전체 이익을 위한 것이다.
(2) 대부분 아내의 의무는 남편이 아내에 대해서 지고 있는 의무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몇 가지 남편이 아내보다 우월한 위치를 점유하는 경우에 대해서 그러한 배려의 바탕은 남녀의 구조상 차이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그것이 여성을 멸시하거나 굴욕을 주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3) 아내에 대해 남편이 우위를 갖는 반면에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학대할 경우 남편을 버릴 수 있는 법적 권리를 갖는다,
앞에서 여러 번 언급한 바 있는 여성이혼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a) 여성은 자기남편과 이혼 할 권리가 보장되어 있으며 이것은 결혼을 함과 동시에 갖게 된다. 비록 지금까지 여성이 이 권리를 행사한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이슬람법은 분명히 허용하고 있다.
(b) 부인은 남편이 싫어져서 더 이상 함께 생활하기 싫을 경우 남편에 대해 이혼을 요청할 수 있다. 이 원칙은 분명히 규정되어 있으며 전언자님 개인적 예도 있고 이슬람법 일부이지만 이런 이유로 여성이 이혼하고자 할 때는 결혼할 때 받았던 지참금을 남편에게 돌려줘야 한다. 또한 남편도 아내에게 줬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이렇게 두 사람이 헤어지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c) 여성에게 부여된 세 번째 권리는 만약 남편이 자기를 학대하였거나 합의된 생계비를 주지 않았다는 증거를 법정에 제시하여 확인시킬 수 있다면 생계비도 받고 결혼지참금을 돌려주지 않고도 이혼할 수 있는 권리이다. 법정에서 여성의 이혼 요구에 대한 합법성을 확인하면 결혼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
위는 여성이 남편에게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경우입니다. 이 이혼 방법은 남성이 여성에 대해 가지는 권한과 완전히 균형을 이룹니다.
우리는 이혼으로 인해 야기된 불행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 왔습니다. 부인과 어린이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이혼으로 연유된 끝없는 가족싸움 때문에 얼마나 법정이 소란한지에 관한 것 등입니다. 즐겁게 어린애를 기르면서 행복하게 의무를 이행하며 살던 부인이 남편의 갑작스런 변심으로 돌연 이혼 장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자가 자기 아내보다 더욱 아름답고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게 되거나 새로운 성적 대상을 갖고 싶은 욕망에 빠지게 되거나 아내가 잠자리를 거절했거나 또는 아내의 무감각 때문에 이런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남성의 즉흥적이고 무자비한 이혼 요구는 평화스럽게 살아가는 여성의 생활을 짓밟고 어리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앞길에 먹구름을 덮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런 불행이 이혼에서 연유된다는 주장에 우리는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혼을 막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이혼을 선언하는 남성의 권리를 무효화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로마 가톨릭 국가에서 일어나는 상황처럼 이혼 권 폐지에서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애정이 없는 결혼생활 경우나 결혼함으로써 영원한 속박을 받으며 자유가 전혀 없는 경우에도 그 생활을 결혼이라 부를 가치가 있나요?
이런 상황이 부도덕한 범죄를 일으키지는 않을까요?
이런 부모 밑에서 어린이들이 건전하게 성정할 수가 있을까요?
우리는 위와 같은 의문을 제기할 여지가 있습니다.
「남성 이혼 권이 제한되어야 한다.」즉 단순한 선언만으로는 이혼이 성립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각기 중재자를 임명한 후에 법정만이 이혼을 선언할 권리를 갖게 하자는 것입니다. 다시 덧붙이자면 중재자는 남편을 설득시켜 그의 뜻을 버리게 하고 부인과의 화목을 되찾게 하는 등 그 문제에 대해서 완전히 토론을 해야 하고 그래도 실패한 경우에만 법정을 통해 이혼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부부 사이에 평화와 화목을 회복시키려는 그와 같은 회유적 방법채택이 법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을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슬람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들이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법정에서까지 개입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부부간의 화목과 평화는 무엇보다도 본인들의 의사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중재자를 선정하여 부부 사이를 개선하도록 권유한 후에 효과가 없으면 법정이 이혼을 선언하게 하는 문명국가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들 나라의 이혼율은 증가하고 있으며 미국의 이혼율은 무려 40%나 된다고 합니다. 이 비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입니다.
이번에는 결점이 부인에게 있다는 것이 법정에서 확인되고 남편이 그 부인과 사는 것이 불행한 일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경우에만 이혼이 성립된다는 견해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남편에게 무시당하고 더 이상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는 집에서 부인을 계속 살게 함으로써 부인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시당하는 무력한 여성에게 허용된 방법이 멸시를 감수하면서 계속 사는 것뿐이라면 그것은 분명 정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자식만을 기르고 교육시키기 위해서 사랑이 없는 집에서 계속 머물러야만 합니까? 이런 분위기는 어린이들이 건전하게 자라는 데도 도움은커녕 오히려 해만 끼칠 것입니다.
사실 이런 모든 문제의 해결은 건전한 사회생활의 기초를 제공하기 위하여 덕행과 선행을 많이 행하도록 함과 동시에 오랜 지적 수련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며 전체적인 사회 교육과 도덕적, 심리적, 정신적 수양을 통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발전을 이룩하기에는 많은 기간이 소요됩니다.
공동체 사회생활은 모든 사회제도-가정, 학교, 영화, 라디오, 신문, 문학, 종교- 목적을 정당성 있게 하려는 일반 대중과의 협동과 끊임없는 노력으로서 이슬람법에 의해 규정되어야만 합니다. 이 길은 멀고 험난하나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에 대해서 법은 기본적으로 정의실현과 관계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법은 부부가 더 이상 함께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확실할 때에 만 이혼 할 권리를 보장하며 부부에게 똑같은 권리를 부여합니다.
위의 이야기와 관련하여 다음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성에게 허용된 모든 것 중에서 이혼을 가장 싫어하신다.”〔하디스〕
일부다처제에 관해서 우리는 이것이 긴급조치법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결코 이슬람 법 기본원칙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들이 필요하다면 둘 또는 셋, 또는 네 명의 부인들을 맞을 수 있느니라. 그러나 그들 모두를 공평하게 대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면 오직 한 여성과 결혼해야만 하느니라.”〔꾸란 4장 3절〕
이 구절에서 지적했듯이 일부다처를 원하는 남성에게 요구되는 것은 공평하게 대하라는 실천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요구는 실제적으로 남성은 단 한 명의 여성과 결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이슬람법은 정상적 생활에서 일부다처제보다는 일부일처제를 옹호합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는 일부일처제가 오히려 결함이 많은 제도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한 특수상황에 처할 경우 이슬람법은 일부다처제의 문호를 개방합니다. 비록 일부다처제가 완전한 정의를 실현하기 어렵다 할지라도 일부다처제에서 생기는 결점이 일부일처제보다 덜 심각할 경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