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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21 Nov 2024

유대교 경전_ 토라

Originally posted 2024-04-11 14:05:06.

토라 (Torah), 펜타툭 (Pentatuch)

토라는 샘 어 명칭입니다.

 

영어로 ‘펜타툭 (Pentatuch)’ 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표현으로 다섯 부분,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뜻 합니다.

이것들은 구약성서를 구성하는 39권 중 처음 부분을 이룹니다.

 

이 책 들에는 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나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까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세 사망까지 우주 기원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의 전달은 유대인들의 종교, 사회 생활을 위한 법 조항을 기록하는 데에 필요한 일반 골격으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수세기 동안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에서는 그 저자를 모세라고 생각 해 왔습니다. 아마 그런 확신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다음 사실에 바탕을 두었을 것 입니다.

“책 안에 이것 (아말렉의 패배)을 쓰라.” (출애굽기 17:14) 고 하였거나, 혹은 출애굽을 말씀하시면서, “모세가 그들이 출발장소를 기록하였다.” (민수기 33:2) 거나, 마지막으로 “그리고 모세가 이 율법을 기록하였다.” (신명기 31:9) 고 합니다.

서기 1세기부터 계속해서 모세가 오경을 기록했다는 이론을 지지했으며, 알렉산드리아의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Flavius Josephus) 와 필론 (Philon) 이 이를 주장하였습니다.

 

오늘날 이 이론은 완전히 무시되었으며, 누구나 이 점에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신약성서에서는 그 저자를 모세라고 합니다.

바울은 레위기를 인용하여 로마서 (10:5) 에서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를 행하는 사람은…” 이라고 단언 했습니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 (5:46-47) 에서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모세를 믿었다면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여기에 교정한 예가 있는데, 본래 (그리스어로 쓰여 진) 사용한 그리스 말은 에피스튜에테 (Episteuete) 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복음서 저자들은 완전히 잘못된 예수의 말씀을 사실이라고 단언하고 있으니, 이를 다음과 같이 증명할 수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경학교의 교장 드 보 (De Vaux) 신부한테서 이를 증명할 수 있는 내용을 빌리려고 합니다. 그는 1962년 창세기 불어 번역판에서 오경 개론을 서문으로 썼는데, 그 안에서 매우 값진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의 주장은 복음서 저자들이 문제의 책을 쓴 저자라는 주장과 상반됩니다.

 

드 보 신부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열 두 사도들이 따른 유대전통’을 중세 말까지 수용하였다고 말합니다.

이 이론을 유일하게 주장한 사람은 12세기에 아베네스라 (Abenezra) 이였습니다.

 

모세가 신명기 (34:5-12) 에 자기 자신의 죽음을 직접 기록할 수가 없었다고 칼스타트 (Calstadt) 가 밝혔던 시기는 16세기 와서 일 입니다.

그리고 그는 적어도 오경의 일부분이나마 모세의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 다른 비판가들의 말을 인용합니다.

 

주지하다시피, 신약성서에 예수가 직접 지지하는 전설과 논쟁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결정적 논쟁은 루이 15세의 주치의 쟝 아스트루크 (Jean Astruc) 때문에 일어 났습니다.

 

그는 1753년 모세가 창세기를 썼던 것처럼 보이는 본래 기록에 대한 추측 (Conjectures sur les Memoires originaux dont il parait que Moyse s’est serui pour composer le livre de la Genese) 을 발간하여 복수의 출전을 강조 하였습니다.

아마도 그는 이를 알아낸 첫 번째 사람은 아니었지만, 근본적으로 중요하다고 인식한 내용을 출판할 수 없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을 여호와나 엘로힘 이라고 칭하였던 방법에 따라 각각 등장한 두 판이 창세기에 나란히 들어있다고 주장 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에는 이 두 판이 나란히 들어 있었습니다.

아이호른 (Eichorn, 1780-1783) 은 다른 네 권의 책에서도 똑 같은 발견을 하였으며, 그래서 일겡 (Ilgen, 1798) 은 아스투르크가 하나님을 엘로힘이라 칭한 것에 따라 두 경전으로 분리한 한 경전이 또 다시 둘로 나누어졌음을 알았습니다. 오경이 그야말로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19세기에 와서 출전에 대해 더 자세한 조사가 있었습니다. 1854년 네 출전이 인정 받았습니다. 그것들은 여호와 판, 엘로힘 판, 민수기, 사제 판으로, 다음과 같이 그 연대를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1) 여호와 판은 기원전 9세기 유다 에서 기록되었다.

2) 엘로힘 판은 아마 더 나중에 이스라엘에서 기록되었다.

3) 민수기는 어떤 사람 (에드몬드 야콥) 은 기원전 8세기 것으로, 다른 사람 (드 보 신부) 은 요시아 (Josiah) 시대 것이라고 한다.

4) 사제 판은 기원전 6세기 출애굽 시대나 그 이후 것이었다.

 

오경을 정리한 기간이 적어도 3세기 동안 계속되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더욱 복잡합니다.

1941년 로드스 (A. Lods) 는 여호와 판 에서 셋, 엘로힘 판 에서 넷, 민수 기에서 여섯, 사제 판에서 아홉 가지 출전을 밝혀냈는데, 드 보 신부는 “거기에는 다른 8명의 저자들이 쓴 널리 분포된 추가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언급합니다.

 

“더 최근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에 이르렀다:

‘오경에 담긴 많은 율법 중에는 오경 외의 유사한 내용이 들어있었는데, 그것은 훨씬 나중에 기록된 것이었다. 그리고 “오경에서 전하는 많은 이야기들은 이런 기록들이 알려졌던 시기보다 더 오래된 것이고, 그 출전도 다르다.’

이 때문에 ‘전통 형성’ 이란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그 문제는 더욱 복잡하여 요즈음 뒤죽박죽 상태가 된 것 같다”.

 

다양한 출전은 수많은 논쟁과 번복만을 가져왔을 뿐 입니다.

드 보 신부는 전승 이야기가 복잡한 보기를 들고 있습니다. 특히 천지창조, 노아의 홍수, 요셉의 납치와 이집트로 망명, 그리고 중요한 사건에 대한 내용이 다르고, 한 사람 이름이 여러 곳에서 서로 다른 경우 등 입니다.

 

그리하여 오경을 그 저자들이 다소 능란하게 첨부하고 삭제하면서 여러 전승을 모아 만들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가끔 그들은 가지런히 정리하여 편집을 하였으며, 또 가끔은 하나의 전체 구성을 위하여 이야기를 각색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날 그 출전에 대한 객관적 연구대상으로 남아있는 경전 속에 모순과 논쟁의 여지가 들어 있게끔 하였습니다.

 

경전 비판을 통해 오경을 인간의 손이 조작하였다는 가장 분명한 보기가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이전 세대에서 물려 받은 경전과 구두전승을 통하여 여러 시대를 걸쳐 오면서 유대인의 역사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그러한 조작은 기원전 9, 10세기에 창세기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여호와 판 에서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이 경전은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원대하신 계획에 맞도록’ 이스라엘 자신의 운명을 그리고 있습니다 (드 보 신부).

정확한 연대와 계보를 언급할 수 없는 사제 판은 기원전 6세기 것 이라고 결론 지었습니다.

 

드 보 신부는

“이 판 안에 법적 중요성을 고려한 몇 가지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천지창조 이후에 안식일 휴식, 노아와 언약, 아브라함과 언약, 할례, 야곱이 열 두 아들에게 가나안 땅을 나누어 준 막펠라 (Makpela) 동굴의 구입 등이다.”

 

염두 해야 할 것은 사제 판이 기원전 538년에 시작된 바빌론으로 추방과 팔레스타인으로 귀환 당시 것 이라고 추정된다는 점 입니다.

그러므로 순전히 종교와 정치 문제가 뒤 섞여 있습니다”.

 

창세기만 보더라도 세 출전으로 분명히 나누어 졌습니다.

드 보 신부는 번역서 주석에서 오늘날 창세기의 구절에 각 출전을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이 자료를 증거로 각 장에 들어있는 여러 출전을 정확히 지적 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의 처음 11장을 차지하는 천지창조, 노아의 홍수, 홍수에서 아브라함까지 시대 등의 경우에, 여호와 판과 사제 판이 서로 다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엘로힘 판 처음 11장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여호와 판과 엘로힘 판은 서로 분명히 중복됩니다”.

 

천지창조에서 노아 시대까지 처음 다섯 장을 각색 하기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즉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여호와 판의 구절과 서로 엇갈리고 있다. 노아의 홍수와 특히 7장과 8장에서는 출전에 따라 비추어 보면, 경전 내용이 잘려나가 매우 짧은 구절이나 단 한 문장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영어판에서는 100 줄 이상 정도 본문에 열 일곱 번이나 내용이 바뀝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오늘날 경전을 읽을 때 모순과 허위가 생겨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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