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p
Thu, 21 Nov 2024

별과 궤도

Originally posted 2024-04-19 19:44:10.

혹성이 오늘 날 천체를 정확하게 뜻 하는지 꾸란 언급 내용을 가지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혹성은 그 자체의 빛이 없습니다.

그것은 태양 주변을 도는 것으로 지구도 그 중 하나입니다. 다른 곳 에서도 혹성이 존재할지 모른다고 생각 하겠지만, 알려진 바는 태양계뿐 입니다.

지구 이외에도 다섯 혹성이 옛날부터 알려 져 왔습니다. 즉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입니다.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 등 세 혹성은 나중에 발견 되었습니다.

 

꾸란 에서는 그 숫자를 언급하지 않은 채 까우깝 (kaukab) (복수형 까와낍 (kawakib)) 이라는 말로 칭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꿈 (12장) 에서는 열 하나의 혹성을 언급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상상 일뿐 입니다.

 

꾸란 에서는 까우깝이란 말의 명확한 뜻이 여러 구절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더 깊은 의미로서 뛰어난 정신적인 면이 담겨 있으며, 더구나 해석 가들 중에서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혹성’을 칭 하는 것 같은 단어에 담긴 비유적인 이야기를 매우 흥미롭게 제시 할 수가 있습니다.

 

다음은 문제 내용입니다. (꾸란 24장 35절):

“하나님께서는 하늘들과 땅의 빛 이시다. 그 분의 빛이란 마치 벽이 있어서 그 안에 빛나는 등불과도 같으니, 그 등불은 유리 안에 있도다. 그 유리는 마치 진주처럼 반짝이는 혹성과 같도다”.

 

여기에서 주제는 태양의 빛을 받은 혹성처럼 그것 (유리)을 반사하고 진주처럼 반짝이는 물체가 된 빛의 투사입니다. 이것이 꾸란에 나와 있는 이 단어에 대한 상세한 설명입니다.

그 단어는 다른 구절 에서도 인용됩니다. 어떤 곳에서는 천체를 뜻 하는지 구분하기에 힘 들 기도 합니다 (꾸란 6장 76절, 82장 1-2절).

 

그러나 현대 과학에 비추어 볼 때 한 구절에서는 우리가 혹성으로 알고 있는 천체일 가능성이 매우 큰 것 같습니다. 꾸란 37장 6절에서 보면,

“진실로 우리는 최저 하늘을 혹성으로 장식하였다”.

 

꾸란 에서 나오는 ‘최저 하늘’이 ‘태양 계’를 뜻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최저 하늘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천체 구성체 중에 혹성 외에는 다른 영구적 구성체가 없으니, 태양은 자체 이름을 가진 체계에서 유일한 별 입니다. 혹성들이 아니고 다른 천체를 뜻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위 번역이 맞는 것 같고, 꾸란은 오늘날에 규정한 혹성 존재를 언급 한 것처럼 보여집니다.

 

꾸란 에서는 천체들과 함께 그 구성체인 최저 하늘을 여러 번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 맨 처음 것이 방금 다루었던 혹성 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꾸란 에서 이해 할 수 있고 현대 과학의 힘으로 명백히 밝혀진 구체적인 생각을 순전히 정신적인 내용과 합칠 때 그 의미가 분명 해 집니다.

 

그렇기에 위에서 인용 한 절을 같은 장 (37) 의 다음 절 (7) 에서 ‘모든 반란적인 사탄에 대한 보호자’를 말 하는 것을 제외하면 쉽게 이해 할 수 있는데, ‘보호자’ 란 말은 꾸란 21장 32절, 41장 12절에서도 나오므로 우리는 거의 다른 종류의 언급에 직면하게 됩니다.

꾸란 67장 5절에 따르면 최저 하늘에 위치한 ‘악을 몰아내는 투사 물’ 이란 무엇을 뜻 하는 것 일까요?

그 절에서 언급 한 ‘등불 들’ 은 위에서 언급했던 유성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 일까요?

 

이런 관측은 모두 본 연구 대상에서 벗어 난 듯 여겨집니다. 여기에서 완전히 언급 했더라도, 지금 단계에서 과학 자료로는 인간이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천체의 구조

이 문제에 대한 꾸란 내용은 주로 태양계를 다루는 것 입니다. 그렇지만 태양계 밖의 현상도 함께 언급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최근에서야 발견이 되었습니다.

태양과 달의 궤도에 대한 매우 중요한 구절이 두 곳에 있습니다:

 

“그분 (하나님)께서는 낮과 밤, 그리고 해와 달을 창조하셨던 분 이시다. 모든 것 (천체) 은 그 자체 궤도를 따라 떠 다닌다”. (꾸란 21장 33절)

 

“태양은 달을 따라 잡을 수 없으며, 밤은 낮을 앞지르지 못한다. 모든 것은 그 자체 궤도를 따라 떠다닌다”. (꾸란 36장 40절)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을 분명하게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즉 해와 달의 궤도가 존재하고 있고, 게다가 그 자체의 힘으로 우주에서 이동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또 위 구절을 읽고 나면 부정적인 사실도 생깁니다. 즉 태양이 궤도를 따라 움직이지만, 이 궤도가 지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 아무 언급이 없습니다.

 

꾸란이 계시 될 당시 지구는 서 있고 태양이 움직인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은 기원 전 2세기 천동설을 주장한 톨레미 (Ptolemy) 이래로 주장되어 온 지구 중심 설 이었으며, 기원후 16세기 코페르니쿠스 (Copernicus) 에 와서 야 비로서 바뀌었습니다.

비록 무함마드 당시 사람들이 천동설의 개념을 지지했지만, 꾸란 어디에서도 그런 것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태양과 달의 궤도 존재

이것은 기원전 2세기 천동설을 주장한 톨레미 (Ptolemy) 이래로 주장되어 온 지구 중심 설 이었으며, 기원후 16세기 코페르니쿠스 (Copernicus) 에 와서야 비로서 바뀌었습니다. 비록 무함마드 당시 사람들이 천동설의 개념을 지지했지만, 꾸란 어디에서도 그런 것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아랍어로 ‘팔라끄 (falaq)’ 란 말은 ‘궤도’로 번역되며, 꾸란의 불어 번역가들은 대부분 여기에다가 ‘구체’ 라고 덧붙입니다. 이것이 바로 실제의 그 기본 의미입니다.

번역가 하미둘라는 이를 ‘궤도’ 라고 번역 하였습니다.

 

달과 태양의 선회과정을 상상 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 우주 안에서 그 과정을 다소 정확하지만 불행히도 잘못 상상을 했던 옛 꾸란 번역가들에게 이 단어는 걱정거리 이였습니다. 씨 함자 부바꿰르 (Si Hamza Boubakeur) 는 꾸란 번역서에서 그 단어에 대한 다양한 해설을 인용합니다:

“그것은 물레방아가 돌 때 쇠막대기 같은 일종의 축이며, 천체 구, 궤도, 12궁, 속도, 물결 등이다.”

 

그러나 그는 10세기 저명했던 해석 가 따바리 (Tabari) 의 다음과 같은 의견을 덧붙였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에 대하여는 침묵 지키는 것이 도리이다.” (꾸란 17장 15절)

 

이것은 인간들이 태양과 달의 궤도 개념을 이해 할 수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만약 무함마드 당시에 그 단어를 천문학적으로 공통된 개념으로 표현했다면, 위 구절을 분명히 어려움 없이 해석 했을 것 입니다.

그러므로 수 세기가 지나서야 설명이 가능했던 새로운 개념이 꾸란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달의 궤도

오늘 날 달은 지구 둘레를 29일 동안 회전하는 위성이라는 개념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궤도가 완전히 원형이라는 데에는 수정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현대 천문학에서 어떤 편 심 궤도 탓이라 하기 때문이고, 달과 지구의 거리 (24만 마일) 는 다만 평균거리 일 뿐 입니다.

 

꾸란 에서 시간을 계산하는 데 달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것이 매우 유용하다고 강조 한 사실을 앞에서 다루었습니다. (꾸란 10장 5절)

이 체계는 오늘 날 율리우스력으로 쓰이는 태양을 공전하는 지구에 바탕을 둔 우리 체계와 비유할 때 낡고 비 실천적이며 비 과학적이라는 비판을 자주 받았습니다.

 

이런 비판에 대해 두 가지 의견으로 이렇게 말 하고 싶습니다:

1) 약 14세기 전, 꾸란은 태 음력을 사용하는 아라비아 반도 인들에게 직접 계시가 되었습니다. 그 들이 이해 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되고, 또 그 들이 갖고 있던 당시 공간과 시간 개념을 효과적으로 언급 함으로써 당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 직 했습니다.

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하늘 관측에 매우 특출했으며, 그 들은 별을 따라 항해했으며 달 모양에 따라 시간을 알았음은 잘 알려진 바 입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가장 간단하고도 가장 믿을 수 있는 유익한 수단 이었습니다.

 

2) 이 분야 전문가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사람들은 율리우스력과 태음력의 완전한 상호관계, 즉 태음력으로 235달은 연 365 1/4일의 율리우스력으로 19년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연 365일 이란 매 4년 (윤년) 마다 수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불 완전 합니다. 태음력으로는 매 19년 (율리우스력) 마다 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그리스 천문학자 메톤의 이름 따 메톤 주기 (Metonic cycle) 라 하는데, 그는 기원전 5세기에 태양력과 태음력의 이런 상호관계를 정확히 발견 해 냈습니다.

 

Related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