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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서로 모순된 요소들이 담긴 종교

바울은 서로 모순된 요소들이 담긴 종교를 만들어냈습니다.

 

 

 

유대인의 유니테리언 사상을 취하여 여기에다가 이교도의 철학을 접목시켰습니다.

 

이런 혼합은 바울이 몇 가지의 예수 가르침에다 자신에게 그리스도가 계시하였노라고 주장한 것을 합하여 생겨난 것 입니다. 바울 신학은 당시 그리스 사상에 비추어 해석 한 그 개인 체험에 바탕을 둔 것이었습니다.

 

예수를 신성시하였을 뿐 아니라, 플라톤의 말을 그 분의 신성한 말씀에 삽입하였습니다.

 

 

 

고해성사 라는 이론은 바울의 머리에서 나온 것으로, 예수와 그 추종자들은 전혀 알지 못한 신앙이었습니다. ‘원죄’와 ‘십자가 처형’, 그리고 ‘예수의 부활’ 등의 신앙도 그 이론에 바탕을 둔 것으로서 정당한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종합 종교인 그리스도교가 탄생하였으니, 햇수로 계산해 볼 때 너무나 터무니없고, 역사로 볼 때 허위이며, 하지만 심리로는 인상 깊은 종교가 되었습니다.

 

 

 

바울 자신이 매우 열성적으로 건립하려 한 종교의 장엄한 사원 각 방향에 문을 세웠습니다. 그 결과 바울 상표의 그리스도교를 생전 처음 접한 사람들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이 사원에 들어와 자기 자신들이 전부터 오랫동안 섬겨오던 똑 같은 신 에게 경배를 드린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도입하여 근본이 잘못 된 개념이 발달되고 수립됨에 따라, 예수를 추종한다고 생각 한 많은 신자들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 바울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인츠 잔트(Heinz Zahrnt)가 바울을 ‘예수의 복음서를 더럽힌 자’라고, 그리고 베르데(Werde)가 그를 ‘그리스도교의 두 번째 창시자’라고 부르는 데에는 상당히 정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베르데는 바울 때문에 이런 결과가 생겼노라고 말합니다:

 

“…역사 속의 예수와 교회에서 말하는 그리스도 사이의 단절이 매우 커서 둘 사이를 일치한다는 것은 거의 알 수 없게 되었다.”

 

 

 

숀필드(Schonfield)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바울 이단이 정통 그리스도교의 기초가 되었고 합법적인 교회가 이단으로 몰렸다.”

 

이렇게 바나바는 가장 사악한 이단자가 되었습니다.

 

 

 

예수의 추종자들에게는 진리의 길이 기하학의 직선처럼 길지만 폭이 넓지는 않았습니다. 이들이 예수 가르침을 바꾸는 일에 동의하지 않은 이유는 그 일이 단지 정략으로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이 모두 다 진리요, 참이었습니다. 바나바와 그 교우들은 예수로부터 직접 배운 그리스도교를 계속 전도하고 실천하였습니다. 이들은 언제던지, 그리고 당시까지만 해도 한 세력으로서 생각이 되었습니다. 이들 중에 여러 성인과 학자가 나와 그리스도교의 모든 분파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예수 추종자들과 바나바는 결코 중심 조직으로 발달하지는 못했지만, 이 지도자들이 진리에 바친 헌신 덕택에, 그 수가 급속히 늘어갔습니다. 이 사람들은 신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현명하고 학식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주로 주변의 험한 지세 때문에 서로간에 고립이 되었습니다. 잘 짜 여진 조직이 없던 것이 오히려 박해자들로 하여금 쉽게 이들을 색출 해 내지 못하게 하는 큰 원인이 되었습니다.

 

 

 

바울 판 그리스도교가 그리스와 유럽으로 전파 된 반면에, 하나님을 믿는 이 사람들은 견문을 가지고 남쪽으로 퍼져나가 결국 북아프리카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들이 구성한 공동체에서는 예수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보전 하였습니다.

 

 

 

아직까지도 예수 가르침을 구현하고 있는 사람들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상당한 지식이 전달되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행동을 모방하고 교리는 구전으로 전달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신의 유일성을 계속적으로 확신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수가 사라진 뒤 처음 수세기 동안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섬기기를 거부하는 여러 종파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들은 에비온파(Ebionites), 쎄린트파(Cerintians), 바실리드파(Basilidians), 카르포크라트파(Carpocratians), 히피시스타르파(Hypisistarians) 등 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온 우주의 전능하신 통치주요, 그 분에게는 어떤 동등자가 없이 최고 신으로 숭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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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까지는 예수 생애와 가르침에 대해 상이한 여러 기록물들이 이용 되었습니다. 예수는 아랍어의 방언 인 아람어로 말하였는데, 일반적으로 기록 용으로는 쓰이지 않는 말 이었습니다. 그래서 최초 복음서는 히브리어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이 초창기에는 어느 복음서라도 공식적으로 인정하거나 거부하지도 않았습니다.

 

 

 

각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우두머리가 어떤 책을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여부를 결정하였습니다. 각 종파는 누구한테서 가르침을 받았느냐에 따라 서로가 다른 출처를 추종하였습니다. 바나바의 본보기를 쫓는 사람들과 바울을 추종하던 세력 간의 출처는 각각 서로가 달랐습니다. 그리하여 예수가 지상에서 사라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예수 추종자들과 나중에 로마 카톨릭교가 된 바울 기독교 사이에는 분명하고 깊은 차이가 생겼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생활방식과 신앙에서 명확할 뿐 아니라, 또한 지리상으로도 크게 양분이 되었습니다. 바울 그리스도교가 점점 정립이 되어감에 따라 예수의 추종자들에 대한 적의가 커져갔습니다. 로마 제국의 통치자들과 점점 제휴하면서 처음에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가하던 박해가 이제는 신의 유일성을 확신하는 사람들에게 주로 향했습니다. 그들 신앙을 바꾸려고 했으며, 또 이를 거절하려는 사람들과 그들이 사용하는 경전을 함께 강제로 없애려는 시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초기 순교자들 중 대부분이 유니테리언 이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가 더욱 받아들여지면 질수록 이를 고수하려는 자들은 신의 유일성을 확신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반대를 하였습니다. 줄리안(Julian) 황제 집권 때까지 이런 싸움이 그 극에 이르러, 이 황제가 “어느 들짐승도 서로 미워하는 그리스도교 종파만큼 인간에게 그런 짓을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까지 말했습니다.

 

 

 

당연히 예수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자들은 자기들 의견을 지지하기 위해 경전을 또한 바꾸고 심지어 거짓 글들을 도입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톨란드(Toland)는 나사렛인(The Nazarenes)에서 초기 유니테리언 순교자 이라네우스(Iraneus)의 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고 참된 경전에 대하여 그처럼 무지한 자 들을 놀라게 하기 위하여, 그들 자신들이 만들어 낸, 그 출전이 의심과 거짓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이 경전을 강요하였다.”

 

 

 

톨란드는 계속 언급합니다:

 

“초대 그리스도교회에서 손에 손잡고 속임수와 맹신 행위가 얼마나 심하였는지는 이미 잘 알려진 바이다. 후대 교회도 초대 교회처럼 조직한 책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러한 악이 나중에 점차 커져 수도승들이 유일한 복사자 요, 모든 좋고 나쁜 서적에 대한 유일한 보관자가 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리스도교의 시작, 그 본래 역사 기록과 우화, 진리와 거짓을 거의 구분할 수 없었다….”

 

 

 

“사도들을 이은 후계자들이 스승들이 가르친 순수한 교훈을 어떻게 그렇게 많이 혼동하여 다른 자들의 것으로 잘못 생각할 수 있었을까? 또 그들이 이 문제에 대해 어두웠는데도 어떻게 더 쉽게 밝은 빛의 인도를 따를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러한 외경들을 교부들이 정전과 같은 위치에 놓은 것을 볼 수 있었으며, 그것도 우리가 이 외경을 신성하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던 때에, 전자는 후자 못지 않게 신의 경전으로 가끔 인용되었다. 나는 이에 대해 두 가지 질문을 던지려 한다.

 

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오리게네스(Origen),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와 다른 저자들이 진짜라고 인용한 모든 책들을 마찬가지로 신빙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가? 그리고 서로 모순될 뿐 아니라 흔히 자기들끼리 똑같은 사실을 놓고 의견 충돌을 보인 교부들의 증언에 대하여 무슨 강조가 필요할까?”

 

 

 

톨란드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이런 질문을 ‘생기 없는 성직자나 교회 권속들’에게 하면, 이에 논리적으로 대답하는 대신, 그 질문자를 ‘이교도니 숨어있는 무신론자’라고 불렀다.”

 

 

 

그는 또 이렇게 언급합니다:

 

“이런 행위로 말미암아 그들을 모두 사기꾼이라는 의심을 품었는데, 인간이란 취약한 부분을 건드린다면 당연히 소리지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어느 인간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해 화를 안낼 수 없을 것이다….”

 

 

 

끝으로 톨란드는 묻고 있습니다:

 

“나사렛 인 이나 에비온(Ebion)인들을 모든 그리스도교 역사가 들이 만장일치로 최초 기독교인이었노라고 인정하고, 또 자기 국민인 유대인들과 함께 살다간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그분의 행동에 대한 증인이 되었으며, 모든 사도들이 이들 가운데 나온 사실들을 생각해 보면, 내가 말하건대, 어떻게 이들이 다른 누구보다도(최초 이단자라 불렀으므로) 예수의 교리와 구상에 대하여 잘못된 개념을 지어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구분이 돌아가신 다음 그분을 전혀 알지 못하는 자들이 전하는 것을 믿는 이방인들이 어떻게 이런 것들을 더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었으며, 유대교 신자 말고 누구로부터 자기들 견문을 쌓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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