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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

로고스

 

아마 이레나이우스 Irenaeus(~202)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150-215)는 철학자들이라기보다 좀 더 전통적인 사람 이었던 듯싶습니다.

그들은 성부, 성자와 성령 간 관계에 대해 철학적인 해석을 시도하기 보다 전통적인 용어에 기대는 쪽을 택했습니다.

로고스에 대해 그리스도론 전도자들과는 또 다른 견해를 보이며, 예수 그리스도 내에 체현된 로고스를 신과 다르지 않은 존재로 파악합니다.

 

이레나이우스는 전도자들처럼 로고스를 신에게 종속 된 파생적 존재나 신과 다른 존재로 파악하면, 예수 구원에 차질이 생기므로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보고, 로고스 혹은 성자를 성부와 완벽하게 동일시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로고스가 하나님 말씀이기는 하지만, 접근불가능하고 세상에서 유리된 신이 아니라 세상 속에 계시된 신 인 겁니다.

 

서기 2세기까지 기독교 신을 인식하는 체계와 그리스도의 위격 교리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유동적이고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유스티누스와 오리게네스 등 학식 있는 그리스도교인 사이에는 신에 대한 그리스도의 종속적인 성격과 파생적이고 부차적인 지위 개념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반면, 주류 교회뿐 아니라 전통주의자들은 그리스도가 성부인 신에 통일성, 동등성, 영원성을 가진다는 생각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적 혼란과 문제가 없지 않아서, 일종의

가현 설한 형태에서 생각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켈수스 (Celsus)등 이교도 반대자들로부터 비합리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을 뿐 아니라, 신체주의와 의인화 및, 다신론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교회의 가 현설적 태도는 양태(樣態)론 적 단 일신론 Modalist Monarchianism (역주: 단 일신론, 즉 모나키아니즘은 삼위일체 설에 반대하여 신이 하나의 위격만을 가진다는 주장이다. 양태론 적 모나키아니즘은 하나의 위격이 인간, 성령, 신 등 여러 가지 양태 mode로 나타난다는 주장이다)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납니다.

 

양태론 적 단 일신론의 지지자들은 예수와 신, 즉 우주의 창조주인 성부를 같은 존재의 다른 양태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신성한 통합론을 지지했습니다. 양태론 자 들은 말씀이신 예수 혹은 성자가 성부와 어떤 식으로든 다르다고 암시하는 것은 불가피하게 신이 둘이라고 주장하는 신성모독에 이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서기 200년경 소아시아의 프락시아스 Praxeas와 노이투스 Noetus는 예수 안에 하나님 전체가 들어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움직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중요한 신학자는 사벨리우스 Sabellius이였습니다. 그들 입장은 단순했는데. 성서에 기록된 대로 세상에는 오직 창조주이자 세상의 지배자인 하나의 신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신이다. 따라서 그는 사람들이 성부라고 부르는 창조주다”.

그들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같은 구절을 인용해 예수와 신의 절대적 동일성을 강조했으며, 주류 기독교를 ‘3신론’이라고 공격을 했습니다.

 

예수와 신의 관계에 이렇게 극단적 입장과 엄밀한 태도가 나타난 것은 주류 교리의 모호함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예수를 ‘‘주님’ 같은 절대적 호칭으로 경배하고 신이라 부른다면, 누구나 예수가 신과 비슷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기독교인 사이에는 “신이 태어났다”, “고통 받는 신” 혹은 “죽은 신” 같은 표현이 널리 퍼져 있던 까닭에, 심지어는 양태주의적 단 일신론을 혐오하는 테르툴리아누스 마저 도 이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양자 간 주요한 차이라며 는 엄밀성과 체계성입니다.

양태주의적 단 일신론은 그리스도에 대한 대중의 믿음을 명확하고도 엄밀하게 체계화했으며. 그 동안 모호한 상태에 있던 그리스도교 신학의 언어를 정교하게 다듬은 것 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양태주의적 단 일신론이 지닌 위험한 함의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즉 신체주의와 성부 수난 설 patripassianism (聖父受難說, 역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때, 성부도 고통을 겪었다는 설)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교회가 늘 희망하던 유 일신론을 보호하는 동시에 예수의 신성도 인정하는 이론이었지만, 교회가 인정할 수 없는 미묘한 의미가 숨어 있었습니다.

만약 하나님 전체가 예수 안에 체현된다면, 신의 초월성이 무효가 되기 때문입니다. 니케아 회의 이전 교회는 적어도 신의 일부가 예수 안에서 육화 되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에 중시를 했습니다. 그로 인해 예수의 신성에도 불구하고 신이 초월성을 유지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원을 구하는 신자들은 혼란스러운 이런 이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의인화와 신체주의적 구절은 신성의 삼위일체 해석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신은 초월적이어야만 했으니. 그렇지가 않다면 그리스철학에 기반한 학자들이 의인화된 신이나 여타 신이 개념을 유치하거나 이교도적이라고 조롱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주의의 틀에서 나온 부차적이고 파생적 신적 존재라는 개념은 애초에 신의 절대적 초월성을 보존하고 이교도적이라는 공격을 피하는데 도움됐지만. 반면, 이런 신 개념은 구원 목적에 부적합했습니다.

평신도들은 신의 초월성보다 자신의 구원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세상의 죄를 모두 지고 스스로를 희생한 신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리스도론 전 역사를 통해 이 같은 내적 긴장이 존재했습니다.

신의 초월성과 표현불가능성과 관련하여, 로마의 주교였던 제피리누스 Zephyrinus를 제외한 주류 신학자들은 양태론 적 단 일신론을 이단으로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기독교 역사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자들을 종종 정죄했지만, 단 일신론 류의 의인화적 태도는 계속 살아남아서 성부와 성자 간 차이를 부정한 자들은 대부분 무사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 부인은 일반적으로 비기독교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성부와 성자 간 차이 부정은 대개 무식하다고 여겨졌을 뿐 이였습니다. 양태주의 혹은 신에 대한 명백한 의인화는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광범하게 퍼져나갔고, 단순하게 사고하는 일반 기독교인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습니다. 일반 신자 대다수가 이를 지지했기에 신앙의 지배적 흐름을 이루었습니다.

 

한편, 또 다른 종류의 단 일신론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예수와 신 관계를 또 다른 극단으로 몰고 갔습니다. 서방 교회에서는 테오도투스 Theodotus(190년경)가 예수는 인간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테오도투스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는 신의 특별한 명령에 의해 성령의 힘으로 처녀에게서 태어났다.

하지만 처녀 수태가 예수를 신이나 신성한 존재로 만들지는 않았다. 신은 예수가 지상에서 생활하는 동안 독실함을 시험했고, 세례 순간에 성령이 임하게 했다. 신은 예수를 쓰기로 하고 임무를 부여했다.

예수는 천상의 본질이나 신성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라, 임무를 받았기 때문에 세례 순간에 그리스도가 되었다. 그리고 예수는 모든 덕(德)에서 다른 인간보다도 뛰어났고, 인류를 지도할 수 있는 위인이 되었다. 신이 예수를 입양했다고 해서 예수가 인간이며 신이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이라도 희석되지는 않는다. 예수는 항상 신의 충직한 종복으로 남는다.”

 

이후 테오도투스는 예수 신성을 부정하는 신학, 양자론(養子論)의 창시자로 불렸습니다.

양자론은 성서에 나오는 일신론 구절, 예수가 신과 구분되고 신에 종속된 존재라고 시사하는 복음서 구절, 그리고 예수의 연약한 인성과 세속적 본질을 강조하는 복음서 구절을 인용합니다.

이로써 신의 초월성과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통한 인간 구원을 절충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류 교회가 보기에는 양자론 해결법이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동방 교회에서는 팔 미라 궁정의 제노비아 Zenobia 여왕이 다스리는 수도 안티옥 주교 사모사타의 바울 Paul of Samosata의 지도 아래 또 다른 의견이 있었습니다.

 

사모사타의 바울은 예수가 본질적으로 신성하지 않다고 여겨 다음과 같이 생각했습니다.

“예수는 신성을 품은 채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이 아니라 땅에서 태어난 사람이었기에 본질상 순수한 인간이었다. 예수는 정상적인 분만과정을 거쳐 태어났고, 자라면서 지식과 지혜를 쌓았다. 신의 로고스는 예수에게 영감을 불어넣었고, 예수 내부의 인성(人性)으로 자리잡았다. 예수는 인성을 잃거나 인간적 본질을 잃지 않았다. 예수의 인성은 항상 지배적 본성으로 남아 있었다”.

 

로고스는 예수 인성을 정화하고 교육하고 지도했습니다.

로고스와 예수의 결합은 본질의 결합이나 본성의 통합이 아니라 의지와 품격의 결합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수태하여 세상에 보낸 것은 신성한 로고스가 아니라 다른 인간과 같은 인간 예수였습니다. 더구나 예수가 세례 받을 때 하늘에서 내려와 임한 것은 로고스가 아니라 성령이었습니다.

 

예수가 특별했던 이유는 매우 특별한 신의 은총아래서 살았다는 점입니다.

예수 의지와 기질이 조화롭게 결합한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독특했으며, 결코 본질이나 본성이 신과 통일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선천성 역시 누구보다 선하고 누구보다 신과 가깝다는 의미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신성을 믿지 않았습니다. 양자론에 더해서, 예수가 신성을 지녔다거나 신의 아들이라는 천성을 타고났다는 가정은 이중적 위격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일신론에 방해된다는 점을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바울은 교회 예배에서 어떤 식으로든 그리스도가 본질적으로 신성을 지닌다는 내용의 찬송가를 추방했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로 종교회의에 두 번에 걸쳐 회부되었고 혐의를 벗어났지만, 서기 268년 안티옥에서 열린 세 번째 종교회의에서는 유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종교회의는 예수의 선재 성, 신과의 통일성, 예수의 본래적 신성을 부정했다는 이유에서 그를 이단으로 선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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