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인간은 누구나 ‘평화를 원합니다. 사실상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행위의 밑바탕에는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하는 본능과 의지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아무리 열심히 평화를 얻고자 하여도 어떤 물질이나 타인에게서 얻으려고 한다면 진정한 ‘평화’는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진 정한 ‘평화’란 오직 창조주 뜻에 순종하고 그 분의 인도에 따름으로서만이 얻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평화를 얻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강구합니다. 진정한 ‘평화를 얻기 위해 매일 아침에 일어나 새롭게 무언가를 계획하고 행동에 옮김을 반복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평화를 얻는 방법이 얼마나 쉽고 가까이에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세계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이미 진정한 ‘평화를 얻는 방법을 알고 있고 그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슬람”은 ‘평화를 의미합니다. 이슬람은 내가 누구인지, 이 세상에 왜 왔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 죽은 다음에 어디로 갈 것인지 인간 이라면 누구든 궁금 해 하는 이 질문들에 대한 확실한 답을 알려줍니다.

이 답을 아는 사람은 자신과의 평화, 자신과 창조주 그리고 자신과 다른 사람 사이에 평화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이슬람이 의미하는 진정한 ‘평화’입니다.

 

무슬림은 다른 무슬림을 만났을 때 “앗 쌀라무 알라이쿰! (당신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있기를!)”이라고 인사합니다. 그러면 상대 무슬림은 “와 알라이쿰 쌀람 (당신에게도 하나님의 평화가 있기를!)”이라고 답합니다. 이슬람의 인사는 인사인 동시에 기도입니다.

 

이 인사는, 서로 아는 사이든 처음 보는 사이 든, 서로의 국적이나 인종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평화의 순간을 만들어냅니다. 당신이 상대방의 언어를 전혀 모른다 해도 단지 “앗 쌀라무 알라이쿰”과 “와 알라이쿰 쌀람”만 알면 이슬람의 평화의 인사가 가능합니다. 이렇게 인사 하나에도 평화 의미가 부여되고 실현되는데 왜 대부분 사람들에게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로 비춰지지를 않을까요?

 

TV에서 보여주는 부정적인 이미지 “이슬람”은 세계 인구 4분의 1이 믿는 그 이슬람이 전혀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창조주 진리이자 아름다운 종교 “이슬람”을 세상에 서 가장 혐오스러운 종교로 묘사해 놓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각 진리를 추구하는 누군가에게 이슬람은 가장 아름다운 원래의 모습으로 다가옴은 창조주의 권능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입니다. 그러니 일단 TV에서 보았던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싹 지워버리고 마치 생전 처음 이슬람을 접한 것처럼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슬람 이 유대교와 기독교가 믿는 신과 동일한 신을 숭배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이슬람은 어느 누군가에 의해 창시된 새로운 종교가 아닙니다. 이슬람에서 창시자란 없습니다. 그럼 선지자 무함마드가 누구냐고요? 그는 창조주께서 보내신 마지막 선지자로서 이슬람은 그에 의해 알려 진 것뿐입니다. ‘창시자創始者’라는 말은 ‘어떤 사상이나 학설 따위를 처음으로 시작하거나 내 세운 사람’을 뜻하는데 선지자 무함마드는 이슬람을 창시하지 않았습니다. 유대교와 기독교를 거쳐 변질된 창조주의 본래 메시지가 이슬람이라는 ‘완전한’ 형태로 인류에게 ‘최종적’으로 계시 된 것뿐 입니다. 따라서 이슬람 이후에는 더 이상의 계시가 없을 것 입니다.

 

선지자 무함마드는, 태초 인간이자 선지자인 아담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와 같이 ‘오직 한분 이신 창조주만을 숭배하라’는 메시지를 인류에 전달한 ‘최후의 선지자’입니다. 이슬람은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로서 전 세계 인구의 1/4이 넘는 16억 명의 사람들이 믿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세계 일주를 한다면 그는 가는 곳 마다 무슬림을 만날 것 입니다. 그것은 곧 이슬람이 인종, 국적, 언어, 문화, 시대에 상관없이 모든 인류를 위한 창조주의 메시지임이 증명합니다. 이슬람에서는 창조주와 인간 사이에 어떠한 중재자도 허락하지를 않습니다. 따라서 성직자나 예언자 또는 그 어떠한 것도 창조주와 인간 사이에 존재하여 중재하는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창조주 : 나 = 직접적인 관계

이슬람을 통해 인간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가장 올 바른’ 방향으로 인도됩니다. 이슬람은 창조주와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가 족과의 관계, 친척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손님과 의 관계, 무슬림 형제/자매와의 관계를 체계화시켜 줍니다. 즉, 이러한 모든 관계들에 있어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권리와 의무를 분명히 확립시킵니다.

 

시민권, 결혼법과 이혼 법, 상속 법, 행동양식,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 어떻게 의복을 입 어야 하는지, 창조주를 어떻게 경배해야 하는지, 나라를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지, 전쟁이 허용되는 범위는 무엇인지, 경제 법, 무역 법 등 삶에 필요한 모든 사항들에 대한 분명한 내용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한계가 인간을 고통스럽게 할 것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이슬람은 창조주께서 정하신 한계 안 에서 인간을 한없이 자유롭게 하며 이 자유는 평화를 보장합니다. 만약 한계를 지키지 않는다면 인간은 끝없이 추락하여 결국은 파멸의 길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이슬람은 진리이자 평화입니다.

 

아랍어로 ‘알라’ = ‘하나님’

 

이슬람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가장 큰 오해는, ‘알라(Allah)’라는 특별한 신이 따로 존재한다고 믿는데 있습니다. 하지만 무슬림들 (Muslim: 이슬람 신자)은 유대인과 그리스도교인이 믿는 신과 동일한 신을 믿습니다. 즉, 한국어로 말하자면 무슬림들은 ‘하나님’을 믿습니다. ‘알라’라는 말은 ‘하나님 (하느님)’을 뜻하는 아랍어일 뿐 입니다.

*어원적  의미로   본 ‘알라(ALLAH)’는          정관사   ‘알(AL)’과          ‘신’이란  뜻의     ‘일라(ILAH)’가     결합된   단어입니다.

ALLAH = AL + ILAH (The God = The + God)

 

그러므로 아랍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모든 사람에게 ‘신神’은 곧 ‘알라’라는 명칭으로 불립니다. 즉, 아랍계 유대인들과 그리스도교인 들도 ‘하나님 (하느님)’을 ‘알라’라 칭합니다. 만약 아랍어로 번역된 그리스도교 성경Bible을 본다면, ‘알라’라는 아랍어 단어를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언어인 히브리어로 ‘엘로하 ELOAH’와 예수 시대의 언어인 아람어로 ‘엘라 ELAH’는 ‘알라ALLAH’와 아주 미세한 발음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같은 창조주를 뜻하는 단어들입니다. 한국에서는 ‘하나님(하느님)’, 미국에서는 ‘God (Lord)’ 등 각각의 나라와 언어에 따라 ‘신神’을 칭하는 명칭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인데 유독 한국에서 만 ‘알라’라는 명칭을 ‘알라신’ 부르며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알라신 X 알라

‘알라’의 개념은 앞서 설명하였듯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은 같은 신을 믿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이슬람이 필요한 것일까요?

 

창조주께서는 인류에게 그 분의 뜻을 알리고 인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계속적으로 메시지를 보내 주셨지만 유대인들은 선지자 예수 존재와 그 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자 신들만이 선택된 민족으로서 구원을 받을 것 이라 믿었으며, 그리스도교인들은 신에게 아들(예수)이 있어서 이 아들을 신과 대등한 존재로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즉, 두 종교 모두 원래의 가르침으로부터 벗어나 인 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에 부적합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슬람을 최후 메시지로서 계시하시어 인류를 혼란으로부터 진리로 인도 하셨습니다. 그럼으로 이슬람에서는 하나님이 세 분 (성부, 성 자, 성령)이라는 삼위 일체 설과, 하나님의 성 육신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 에 내려오셨다)를 믿지 않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삼위 일체 설을   믿지     않았으며           한        분이신   하나님   즉,알라 만을      믿었습니다.          ‘삼위 일체 설’은 인간들에           의해     나중에   생겨난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이 진리로서 계속 퍼져나갈 수 있는 핵심은 신에 대한 분명한 정의 입니다. 인간이 의지 하는 세상 모든 것 에는 한계가 있어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지만 인간을 창조하신 알라께서는 인간에게 가장 올바른 길을 보여주십니다. 알라께서는 인간이 방황과 혼란 속에 있기를 원하지 않으셨기에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꾸란을 통해 세심히 알려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불행이 닥쳐오면 신을 잔인하고 무자비한 존재로 비판하지만 이슬람에서 신은 한 없이 자비롭고 자애로우신 분 입니다. 불행은 인간이 스스로의 잘못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인데, 인간은 자신의 잘못은 알지 못하고 신 탓만 하며 점점 더 신을 멀리합니다. 알라께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인간에게 생명과 온갖 능력을 주시고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알라를 믿고 따르는 것은 인간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알라께서 술이 인간에게 해로운 것이기에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셨지만 술을 마시고 불행한 일을 겪게 되었다면 그것은 신의 잘못일까요? 만약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을 헤아려본다면 신 이 얼마나 자비로우신 분 임을 금세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슬람에서 신은 한 분이며 그 분은 끝없이 자비로우신 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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