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정치생활

그렇다고 해서 이슬람의 정치 제도가 흔히 생각하는 의미의 민주주의도 아니며, 이 모든 것과 구별됩니다.

이슬람의 정치 생활은 사회경제 생활과 마찬가지로 건전한 영적・도덕적 기초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인도됩니다. 이슬람 정치제도는 구조와 기능에서 그 목적이 독특합니다.

이슬람의 정치제도는 실용주의적이거나 도구주의적이지 않습니다. 이는 특정 계급이 신적 세습 혹은 비 세습 권리를 사칭하여 국민 위에 군림하고 책임을 초월하는 신정이 아니며, 복수심에 불타는 일부 계층이 권력을 장악하는 독재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슬람의 정치 제도가 흔히 생각하는 의미의 민주주의도 아니며, 이 모든 것과 구별됩니다.

이슬람의 정치관을 제대로 인식하려면 다음 원칙을 알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법인 꾸란이 무슬림 개인과 집단을 인도해야 합니다. 꾸란은 하나님이 진실한 종복을 위해 택하신 법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판결과 통치하지 않는 자, 불신자요, 악한이오, 반역자로다.” (꾸란 5장 47 – 50절)

“꾸란 이야말로 믿는 이를 선으로 이끄노라.” (꾸란 17장 9절)

2. 이슬람에서 주권은 통치자나 심지어 국민에게도 있지 않습니다.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하며, 하나님의 법을 시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법제화하기 위해, 국민전체가 하나님의 신탁을 받아 그 주권을 행사합니다.

통치자가 누구든, 하나님 법에 따라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행정대리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슬람 기본인 바,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유일한 주권으로 계시는 이 세계에 대한 이슬람 전체 소망과 일치합니다.

꾸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권위와 권력과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으니, 모든 권능의 위에 계시니라.” (꾸란 67장 1절)

“하나님께서 명하셨으니, 그대가 받은 신임을 되돌려줄 곳에 보내고, 판결할 때는 공정함에, 하나님의 가르침이란 얼마나 우월한 가.” (꾸란 4장 58절)

“하늘과 땅의 주권과 그 사이 만물이 하나님께 속하나니, 모두 하나님께 돌아가리라.” (꾸란 5장 20절)

3. 이슬람의 목적은 피부색이나 인종이나 종교에 상관없이 하나님 헌법인 꾸란 규정과 일치하게 모든 국민에게 안전과 보호를 제공하는데 있습니다. 종교적 혹은 인종적 소수자 들도 법을 준수하고 평화를 지키는 국민으로 있는 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꾸란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 그대 믿는 이들이여, 하나님께 굳세고 증언은 공명정대할지니, 그대를 등돌렸다 하여 미움으로 공정을 벗어나지 말 것이며 경건 다음이 공정이로다. 하나님을 유념할지니, 하나님께서 그대의 일을 다 알고 계시노라.” (꾸란 5장 9절)

“진정 하나님께서 믿는 이들을 지키시니, …… 그들이 이 땅에 보내졌을 때, 예배 드리고, 구빈세를 내며, 의를 명하고, 악을 금하나니, 모두의 끝은 하나님께 있도다.” (꾸란 22장 38절, 41절)

4. 통치자가 누구든, 국민에 군림하는 권력자가 아닙니다. 통치자는 국민으로부터 선출되어 국민을 대표하는 고용인이며, 하나님이 감독하는 엄숙한 계약에 의해 통치자와 피치자를 함께 다스리는 하나님의 법에 통치자 자신도 복종함으로써 권위를 부여 받습니다.

이슬람의 정치적 계약은 정부와 국민 사이에 체결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계약은 정부와 국민을 한 편으로 하고 하나님을 다른 편으로 해서 체결하고, 인간 쪽에서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는 경우에 한하여 도덕적으로 유효하며 법적 구속력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시행하기 위해 국민에 의해 선출된 통치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한, 국민으로부터 협조와 지지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국민이나 사회구성원이 통치자에 지지와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면, 통치자가 하는 행위는 하나님은 물론 정부에 대한 무책임한 범죄로 간주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거나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똑같이 죄를 범하는 것뿐 아니라 국민의 지지와 충성을 받을 권리를 잃게 됩니다.

꾸란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 그대 믿는 이들이여, 하나님께 순종할 것이니, 선지자와 그대 중 명령 받은 이에게 순종할 것이며, 하나님과 내세를 믿는다면, 그대 사이에 의견이 다를 때 이를 하나님과 선지자에게 맡길 것이니, 최선의 좋은 결정이 될 것 이니라.” (꾸란 4장 59절)

권위가 부여된 이들에 대한 순종은, 하나님 법과 선지자에게 복종함을 조건으로 합니다. 무함마드는 다음과 같은 결정적 언명을 표했습니다.

“통치자이든 아니든,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는 한, 순종이나 충성해서는 안됩니다.”

무함마드 초기 계승자들은 정책의 제1원칙으로, 자신들이 하나님께 복종하는 한, 백성은 자신들을 따르고 도움을 주어야 하며, 자신들이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난다면, 백성들에게 따르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음을 천명했습니다.

5. 통치자나 정부 관리는 덕성과 적성, 능력을 기반으로 최선의 자격을 갖춘 국민 중에서 선출해야 합니다. 출신 인종이나 가문 혹은 경제적 지위 등은 결코 후보자의 자격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입후보자 개인 자질로 판단해야 하며, 가문의 위세, 재산, 인종, 나이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후보자는 총선거를 통해 국민의 동의로 선출하거나, 사회 여러 분야의 자유로운 합의를 통해 지도력을 인정받은 민중 지도자가 뽑아서 권한을 부여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는 필요 한 만큼, 의회나 지방자치단체를 둘 수 있습니다. 선거권과 행정 행위는 하나님 법에 따르고, 사회 전체의 최선의 이익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선지자 무함마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 적임자가 있는데도 다른 사람에게 공직을 맡기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과 선지자와 무슬림 동료들의 신뢰를 배반한 것입니다”

정치적 의미로 보면, 유권자는 윤리적으로 사회에 무관심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후보자를 신중히 파악한 다음에 투표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국가는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책임 있는 시민의식을 고양합니다. 이는 현대의 많은 민주국가가 때때로 실패하는 문제입니다.

6. 국민은 선거를 통해 통치자를 선출한 다음, 국민 각자는 자력으로 정부 행위를 감독하고, 잘못된 점을 발견하면 항시 이의를 제기해야 합니다.

만약 정부가 하나님과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다면 직무를 수행할 권리를 상실합니다. 권리를 상실한 정부는 축출하고 다른 정부로 대체해야 합니다. 국민을 위해 이런 일이 이루는 것이 시민 모두의 의무입니다.

이슬람은 세습 정권이나 종신 통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7. 국민이 선출하고 임명하지만, 통치자는 일차적으로 하나님께 책임을지며 그 다음 국민에게 책임집니다. 통치자라는 직책은 상징적 존재가 아니며 역할 역시 결코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통치자는 문서에 서명이나 하면서 국민 의사에 대한 시비를 가리지도 않고 집행만 하는 꼭두각시가 아닙니다. 통치자는 최선의 국민 이익을 위해 국민을 대신해 실권을 행사하는 사람입니다.

통치자는 이중의 책임을 짊어집니다. 자신 행위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을지고, 자신을 신뢰하는 국민에게 책임집니다.

통치자는 하나님 앞에 국민과 국민 대표자들을 어떻게 대우했는지 낱낱이 밝혀야만 합니다. 통치자와 국민은 함께 하나님 앞에 꾸란을 어떻게 대하였으며 하나님이 베푸신 법을 어떻게 대했는지 낱낱이 밝혀야만 합니다.

이는 통치자가 국민을 위해 최선의 공익을 추구하기 때문이고, 또한, 하나님의 법에 따라 책임을 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슬람 정치 제도는 인류가 알고 있는 여타 모든 정치 제도나 교리와 근본적으로 다르고, 통치자가 마음대로 국민을 지배하지 못하는 제도입니다. 통치자는 정의를 불문율로 하고, 온 세상의 주권자인 주님을 진정으로 따름을 국가의 정식 기능으로 하며, 건전한 윤리를 정부의 우선 사업으로 하여 국민에게 봉사해야만 합니다.

8. 이슬람의 법은 꾸란이지만, 하나님은 여러 사람이 모여 의논함을 통해 공공사업을 처리하라 명합니다. 따라서 국가・국제적 차원은 물론, 지방 차원에서 의회와 자문기관을 둘 수 있습니다.

국민 모두는 공공사업에 최선으로 조언을 해야 하며, 조언과 참여 권리가 주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의무와 이행을 실천적,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통치자는 학식 있고 경험 있는 국민에게

9. 모든 시민은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가지고, 사상과 표현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자신 잠재력을 계발하며 운명을 개척하고, 일하며 경쟁하고, 벌어서 소유하고, 자신이 내린 정직한 판단에 따라 찬성하거나 반대할 자유를 누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가 모든 것을 허용하는 무한 자유는 아니며, 무한 자유일 경우 혼돈과 무정부 상태로 변할 것입니다.

자유는 하나님의 법이 보장하고, 그 법이 다스리는 것입니다. 자유가 하나님의 법에 일치하는 한 국민 모두의 정당한 특권이 되지만, 법의 한계를 벗어나고 공익과 충돌하면 하나님의 법을 어길 수밖에 없고, 따라서 통제되어야 합니다.

개인은 우주 일부이므로 우주 전체를 다스리는 하나님 법과 질서에 순응해야 합니다. 개인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 일원이므로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타인 권리와 이익을 고려하여 상호 유익하게 조절해야 합니다.

한 개인이 특정한 공공 문제에 대해 다수와 다른 의견이 있을 때는, 사회적 연대와 협조를 유지하기 위해 다수의 편에 서야 합니다. 하지만 그 여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개인은 방해 받거나 왜곡되지 않는 상태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타인을 설득할 자유가 있습니다.

결국, 다수가 다른 길을 선택했음이 확실 해 지면 다수와 함께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해당 문제가 개인의 것이 아닌 공적 영역에서 처리할 문제가 됐기 때문입니다. (꾸란 3:102 – 105, 8:46)

10. 통치자의 직위는 공공의 신탁인 바, 국민의 일반적 동의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위임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국가 주인이심으로 하나님을 대표하는 이는 당연히 하나님께 충성해야만 하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는 공익에 이바지하고 국민은 물론 하나님께 대한 국가의 모든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당위입니다. 또한, 이른바 종교적・인종적 소수 권리를 보장하고 존중하기 위해서도 그러해야 합니다.

인류애 측면에서, 이러한 이슬람의 통치 방식이 잘 이해되지 못하고 곡해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이슬람은 소수를 차별하지 않고, 오히려 소수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합니다. 준법 시민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 받으며, 책임 있는 국민으로서 의무와 특권을 똑같이 공유합니다.

법에 따르고, 권리를 행사하되 그에 따르는 책임을 이행하는 한, 무슬림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위가 격하되거나 이등국민으로 전락하지를 않습니다.

이를테면 국가 존속과 자신의 안전, 복지의 대가로 무슬림과 같이 구빈세를 내려 한다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슬람 형식인 구빈세를 내는 것이 어색하거나, 무슬림이 아니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형태의 세금으로 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소수자는 무슬림에겐 해당하지 않는 선택의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소수자 역시, 국가에 기여한 대가로 국가와 사회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혼인, 이혼, 음식, 상속 등의 개인 생활에서 이슬람법에 따르고 싶다면, 그 희망을 인정하고 권리를 존중해야 합니다.

반면, 자신의 종교 교리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자유가 있으며, 누구도 권리 행사를 막을 수 없습니다. 사적인 혹은 감정의 문제는 자신이 선택한 가르침에 의지할 수 있고, 공적 규정에 의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익과 공공 사업에 관해서는 국가의 법, 즉 하나님의 법을 준수해야 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안전과 보호의 권리가 다른 국민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천국의 꿈은 아닙니다.

이는 꾸란과 무함마드의 언행록 가르침이며 이슬람 역사 기록입니다.

예를 들자면, 무함마드 이후 2대 칼리프인 우마르 이븐 알-카땁이 어떤 곳을 지나다가 가엾은 처지에 있는 나이든 유대인을 보았습니다. 우마르는 사정을 물어보고 딱한 처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마르는 안타까운 말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가 능력이 있을 때, 우리는 그대에게서 공물을 징수했다. 그런데 이제 돌보는 이 없이 버려졌으니, 진정 그대에게 불공평하였도다!”

말을 마친 후 우마르는 노인에게 연금을 정기적으로 주라 명했고, 그 명은 즉각 시행되었습니다.

우마르를 비롯한 통치자들은 무함마드가 이룬 정치적 이상을 수용했으며, 무함마드는 하나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에 관한 꾸란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대를 금하지 않으셨노라, 신앙을 침범하지 않고, 주거지를 침략하지 않는 한, 친절하고 공정하게 대할 것이니, 진정 하나님은 공정한 이를 사랑 하 시노라.

하나님께서 그대를 금하셨노라, 신앙을 침범하고, 주거지를 침략하며, 남을 충동하여 이를 조장함에 가까이하지 말 것이니, 그들은 사악하도다.” (꾸란 60장 8 – 9절)

정치적 방법론적인 원리로 관용이란 거짓이 밝혀질 때까지 현재를 수용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식론과도 연관되며, 권장되지 않는 것들이 정해질 때까지는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원리인 윤리와도 연관 지어져 있습니다.

거짓이 밝혀질 때까지 현재를 수용하는 것을 ‘시간’이라 하고, 정해질 때까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을 ‘용이함’이라고 부릅니다.

이 둘은 스스로 세상과 단절하고 아무것도 듣지 않는 보수주의로부터 무슬림을 보호 해줍니다. 이 두 요소는 인간이 더 나은 인생과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또한, 인간이 꼼꼼한 사리분별과 이성, 건설적인 노력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다루도록 북돋는 한편, 그로 인해 경험과 인생을 풍요롭게 하며, 문화와 문명을 발전시킵니다.

이슬람 문명에서 방법론적 원리로 관용이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직접 선택하시어 ‘하나님 이외에는 어떠한 신도 없다’는 점과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도록 가르치며, 악과 그 악 저주에 대한 경고를 보냄으로써, 인간을 버려두지 않았음을 확신하는 것 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관용은 모든 인간이 참된 종교를 알고 하나님의 의지와 말씀을 인지할 수 있는 공통 의식을 타고났음을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관용은, 종교 다양성이 역사적 사건과 시간과 공간의 다양한 조건, 편견, 열정, 관심사로부터 비롯됐다는 신념입니다.

종교적 다양성 너머에는 여러 종교를 지지하게 만든 문화 태동 이전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 믿던, 하나님에 대한 초기 종교, 유일신교가 자리매김합니다.

관용은 무슬림에게 태고부터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이 가르친 자취, 종교적 역사를 발견하고 책임감을 느끼고 연구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 시대, 여러 장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 선지자들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종교에 있어 관용이란 종교 간 대립과 상호비난에서 벗어나 세상 시작부터 내려진 초기 계시와 인간 역사를 구분해 종교 발전을 위한 협력적 학술연구를 할 수 있는 기본이 됩니다.

중요한 윤리 요소인 ‘용이함’이란 무슬림이 생명을 경시하지 않도록 하며, 인간의 생애에 닥치는 온갖 비극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건강,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긍정적 시각을 유지하도록 해준다. 하나님은 피조물에게 “고난 속에 쉬움, 용이함을 마련해두었노라”고 했습니다.

법학자로 하여금 매 주장을 시험하고 판결 내리기 전에 이를 분명히 하고, 선과 악을 판결 내리기 전에 실험으로 하나님의 이 말씀에 대치되지를 않는지 잘 살피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시간’과 ‘용이함’, 이 두 요소는 도덕의 형이상학적 원칙으로, ‘하나님의 유일성’에서 직결되어 비롯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갖고 스스로 행동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입증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자유롭게 유익한 행동과 긍정적인 활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슬람에서는 이것을 인간 존재이유로 여깁니다.

“하나님 이외에는 어떠한 신도 없노라”고 증언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생명체에 생명을 불어넣고 만물을 만드는 궁극적인 존재며 모든 것의 궁극, 즉 시작이자 끝임을 믿는 것입니다.

자유의지에 기반을 둔 인간의 의지로 이해하고 확신하여 이 증언을 하는 것은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 사건이, 자연 현상이나 사회 현상, 또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목적을 갖고 우리를 창조하셨음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게 되면 이는 한 사람의 또 다른 본질이 되어 사라지지 않으며. 그리하여 그 사람은 매 순간 이 깨달음의 그림자 아래 살아갑니다. 또한, 모든 사건과 사물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의지와 섭리를 인지하여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계획을 따릅니다.

자연을 관찰하고 원리를 밝히는 것이 자연과학입니다. 신성한 자연계획은 하나님이 하사한 불변 법칙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과 사회에서 하나님의 신성한 계획을 관찰하는 것은 인류애와 사회과학을 추구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온 우주가 하나님의 말씀이자 의지인 자연법칙을 펼치고 이행하는 곳이라면, 무슬림에게 우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실황 무대인 셈입니다.

무대 소품, 무대에 등장하는 모든 것뿐만 아니라, 무대 그 자체도 이러한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일체화란,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것 근원이며 다른 어떤 것도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필연적으로 ‘하나님 유일성’은 항구 불변의 자연법칙을 계획하는 하나님께 어떠한 것도 영향력을 가할 수 없게 만듭니다. 자연에서 본연 자주성이 아닌 대리자를 통한 요술이나 주술 같은 심령의 힘, 또는 자연의 진행 과정에 대한 무작위의 마법적 작용으로서 간섭 따위를 부정하는 것 입이다.

따라서 ‘하나님 유일성’은 인간이 자연 영역을 만들고 조종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나님의 뜻에 반한다고 여기노라는 것이며. 이것이 자연과학의 절대적 우선 조건입니다.

‘하나님 유일성’은 원시종교 경배 대상인 자연과 하나님을 분리했습니다. 이로 인해 종교의 형식, 문명, 자연 과학에 새로운 세계관을 부여해 영향을 미치고 발전하게 하였습니다. 자연을 경배대상이 아닌 하나님 피조물로 여기고 객관적 연구 대상으로 보는 토대를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 유일성’은 자연과학의 적이자 문명의 적인 미신이나 신화에 반대합니다. 모든 인과관계를 불가사의한 힘에서 온 것이 아닌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 섭리로 되돌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모든 자연 현상과 사물을 연속된 것으로 파악해 인과관계를 관찰할 수 있는 능력, 즉 인과관계에 대한 인지력을 갖출 수 있으며, 이 인지력이 외부의 간섭에서 벗어나 오로지 하나님 섭리로 향하게끔 합니다.

이러한 세계관의 변화는 자연 현상을 실증적인, 실험과 관찰로 인과관계 연결고리를 찾는 과학적 방법론과 태도를 견지하도록 했습니다. 모방할 수 없는 자연법칙이 하나님 섭리라는 것은 하나님이 다양한 원리를 통해 자연 현상을 작동시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설계이자 섭리는 항상 같은 인과관계를 가가집니다

이러한 불변성을 관찰해 원리를 발견하는 것이 과학의 기본 토대입니다. 과학이란 이렇게 자연 속에서 반복되는 현상을 찾는 것입니다.

자연 현상에서 밝혀진 인과관계법칙은 다른 요소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됩니다. 이런 반복성 발견이 자연법칙 발견입니다. 또 인간이 자연을 공학적으로 활용하고 통제하는데 필수적 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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