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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에서 말하는 평화란?

이슬람이 평화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알기 위해서, 이슬람에 관한 몇 가지 기본 사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평화와 이슬람은 같은 어원에서 파생한 용어로서 동의어로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아흔아홉 이름(덕성) 중 하나가 평화입니다. 모든 무슬림이 일상 예배를 끝내며 하는 말도 평화입니다. 무슬림이 하나님께 돌아갈 때 하는 인사는 평화입니다. 무슬림이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인사도 평화라는 말입니다. 형용사로 ‘무슬림’은 평화롭다는 의미도 갖습니다. 이슬람의 천국은 평화가 가득한 곳입니다.

 

 

 

이슬람에서 평화는 근본적이고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입니다. 이슬람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과 자기 자신 그리고 모든 사람과 평화를 이룹니다. 이런 가치를 받아들이고, 세상의 모든 인간을 존중하며, 이슬람의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보고, 훌륭한 신앙과 원칙을 고수하는 사람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개선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시키며, 평등을 이루고, 보편적 형제애를 누리며, 지속적 평화를 이루는 데 이바지할 것입니다.

 

 

 

공동체

 

 

 

공동체라는 용어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 중의 어떤 것은 낭만적이고 그리운 느낌을 주는 반면, 또 어떤 것은 경멸적이거나 시대에 역행하는 듯한 느낌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근본을 살펴보려 하므로, 논의를 공동체라는 용어의 가장 기본적 의미로 제한하겠습니다.

 

 

 

기본적 의미에서 본 공동체 개념을 인용을 통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고도의 대인 친밀감, 감정적 깊이, 도덕적 약속, 사회적 결속 그리고 시간적 연속성을 특징으로 하는 모든 형태관계를 뜻한다. …… 이러한 공동체는 지연, 종교, 민족, 종족, 직업 혹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집단에서 발견된다. 그 원형이 가족이다.” (<The Sociological Tradition> Robert Nisbet, New York: Basic Books, 1966. 47 – 48면)

 

 

 

또 다른 기본적 의미의 공동체는 다음 두 가지 특징을 갖는 포괄적 집단입니다.

 

(1) 공동체는 개인이 그 안에서 자신의 주요 활동 대부분을 전개하고, 경험을 획득하는 집단이다.

 

(2) 이 집단은 공유된 귀속감과 일체감에 의해 결속된다.

 

(<Sociology: A Text with Adapted Readings> L. Broom & P. Selznick, New York: Harper & Rowe, 1968. 31면)

 

 

 

역사의 큰 흐름을 보면, 인류는 윤리와 친밀한 관계를 중시하는 ‘공동체’에서 형식적이며 실용주의적 관계를 중시하는 ‘대중사회’세대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는 이러한 움직임은 각 분야로 파급되었습니다.

 

이런 흐름으로부터 몇 가지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역사의 이런 경향이 완전히 부정적이지만은 않으나 긍정적이고 건설적이라 하기도 어렵습니다. 사람에 따라, 정도에 따라 부정적일 수도, 긍정적일 수도 있습니다.

 

둘째, 현대사회는 결코 완전하지 않으며, 해결해야 할 큰 과제가 있습니다.

 

셋째, 인류는 의미를 상실한 것도, 희망을 잃어버린 상황도 아닙니다. 위기와 진통을 겪고 있지만, 통제 불가능한 상황은 아닙니다.

 

넷째, 인류의 상호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으며, 사회는 더욱더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른 사회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이슬람의 공동체 개념을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슬람의 공동체 개념이 고유한 특징을 가진다는 말은 대체로 맞습니다. 고유한 특징이란 공동체의 기반, 역사적 사명, 목적, 여러 공동체에서 차지하는 지위, 정체성, 지속성을 말합니다.

 

 

 

이슬람에서 공동체는 인종, 국적, 지연, 직업, 친족 관계 혹은 특별한 이해 관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또 지도자나 창립자 혹은 사건의 이름을 따서 부르지도 않습니다.

 

국경이나 정치적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이슬람의 공동체입니다. 이슬람 공동체의 기초는 하나의 원칙으로, 이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대의에 기여한다는 원칙입니다. 이슬람 공동체란 오직 이슬람이 육성하는 경우에만 존재합니다.

 

 

 

이슬람 공동체는 단순한 생존이나 권력 쟁취, 민족 번영, 생리적 연속성뿐 아니라 이를 초월하는 역사적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꾸란은 이 사명을 이렇게 규정합니다.

 

 

 

“그대 가운데 공동체를 둘 것이니, 선에 초대하여 의를 내세우고, 악을 근절하리니, 이리하여 형통하리라.” (꾸란 3장 104절)

 

 

 

“그대의 공동체가 가장 뛰어나리니, 의를 행하고 악을 금할 것이며, 하나님을 믿을 것이니 ……”

 

(꾸란 3장 110절)

 

 

 

이슬람 공동체의 역사적 소임은 미덕, 건전성, 순수함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이슬람 공동체는 선을 빈틈없이 지키고, 악을 철저히 배척하는 수호자입니다. 공동체 전체에 요구되는 것이 구성원 개개인에게도 똑같이 요구됩니다. 각 개인은 저마다 하나님께 책임을 지기 때문에, 공동체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입니다. 무슬림 개개인의 소임은 선지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대 중 누구든지 악한 일을 보거든 행동으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니, 만약 그럴 수 없다면 말로 고쳐야 하며, 그것조차 할 수 없다면 거부와 항의의 감정을 격하게 표시하라. 이것이 신앙의 최소한도로다.”

 

 

 

보다시피 이러한 설명은 의미심장하고 포괄적입니다. 현재와 같은 대중매체 시대에 조직적인 행동의 힘이나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의 힘 혹은 대중적 감정의 힘을 과소평가할 수 없습니다. 꾸란은 이슬람 공동체의 역사적 소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올바로 균형 잡힌 공동체를 두게 했으니, 그대가 모든 나라의 증인이오, 선지자가 그대 증인이 될 것이로다.”(꾸란 2장 143절)

 

 

 

위 구절의 증인 역할은 중요한 의미인 동시에 어려운 것입니다.

 

 

 

이는 이슬람 공동체가 모범이 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이슬람 공동체는 가장 높은 행위 기준을 설정하고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이슬람 공동체는 극단과 사치, 경직성과 경거망동을 피해야 합니다. 균형을 지키고 확고한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수용할 것과 거부할 것을 알고, 원칙을 세우되 융통성을 견지하는 것은 개인의 특성과 사회의 가능성에 관한 아마도 가장 어려운 과제일 것입니다. 어렵지만 이것이 이슬람 공동체의 소임이며 무슬림에겐 역사적 사명입니다. 바로 이러한 평가 기준 때문에 무슬림 공동체가 인간이 지금까지 만들어낸 최선의 공동

 

체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이슬람 공동체의 정체성은 일관된 균형, 모범적 행위, 같은 목적, 서로에 대한 정서적 이해와 연대, 형평 등의 원칙이 핵심입니다. 꾸란과 선지자의 언행록에는 이런 언급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꾸란 4:135, 21:92, 25:52)

 

 

 

이슬람 공동체의 연속성에 관해 몇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무슬림 의무 중 자신이 지닌 모든 방법을 동원해 지속해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혼인과 상속에 관한 규정, 구빈세와 성지순례, 친족의 상호 권리와 의무, 개인의 양심과 사회적 책임, 이러한 사항의 지속으로 이슬람 공동체는 건전함을 지향할 수 있습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여러 방법으로 공동체 지속을 보장하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꾸란을 보존하고, 꾸란의 순수성을 지키겠다고 하셨습니다. (꾸란 15:9) 이는 꾸란을 신봉하는 공동체가 늘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꾸란을 믿는 사람이 사라지는 상황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둘째, 이슬람 자체가 하나의 연속체입니다. 한 민족이 하나님의 길에서 일탈할 때마다 말씀을 다시 다짐하고, 진리를 재확인했으며, 새로운 선지자나 개혁자를 임명하고 임무를 계속하게 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무슬림이 바른길을 버린다면 실패할 것이며, 실패한 무슬림을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겠노라고 엄중히 경고했습니다. (꾸란 47:38)

 

 

 

또한, 하나님은 경고하기를 만약 누구라도 신앙을 등질 때, 믿는 사람에게 겸손하고, 불신자에게 꿋꿋하며, 하나님을 위해 싸우고,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을 속히 만들어 내겠노라고 했습니다. (꾸란 5: 57)

 

 

 

이슬람은 자국과 자국민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제무대에서도 폭넓은 활동과 중요한 사명을 갖습니다. 이슬람의 명에 따라 생활의 모든 면에서 자국민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또한, 전체 인류에게 가치 있는 공헌을 해야 합니다.

 

이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 국가 간 우호 관계를 마련하며, 국제적 차원의 교육・경제・산업・정치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 수행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역할은 무함마드가 직접 시작했고, 후대 교우들이 본받았습니다.

 

 

 

이것이 무함마드와 충실한 교우들이 훌륭하게 실천하고 모범을 보인 이슬람입니다.

 

이는 특정 신학자나 법학자, 지배자의 이슬람이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있는 그대로의 이슬람이며, 본연의 이슬람입니다.

 

또 하나 강조할 점은 이슬람의 생활 체계는 독특하고, 여타 제도나 이데올로기와 다릅니다. 영적・도덕적・지적・문화적・정치적・경제적 관점에서, 그리고 모든 관점에서 독특한 고유의 특성을 지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1. 이슬람의 이념은 근원이 다릅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파괴적 정치가나 분노로 타오르는 경제학자의 저작에서 비롯한 것도 아니고, 실용주의적 윤리학자나 이기적 사업가의 작품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류 전체의 최선을 위해 창조한 작품이며, 무한하신 하나님의 예술품입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구속력을 가지며, 충직한 모든 이들이 존중합니다. 이슬람의 이념은 풀기 어려운 신비나 은밀한 조건, 특권의 사칭이 없기 때문에 정상인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이슬람의 이념은 목적 또한 다릅니다.

 

세계지배나 물리적인 팽창을 그 목적으로 삼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으로 안내하고, 하나님의 법 체계로 이끄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주목적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인류에 도움을 주어 창조주의 법에 따르고, 충실한 대리자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인간 삶의 모든 측면을 다룹니다. 의도는 깨끗한 마음과 순수한 정신, 살아있는 양심과 건전한 신체 그리고 감수성을 키우려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자질을 지닌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따르며, 건전한 생활의 길을 택합니다. 이슬람 이념의 목적은 단지 사람의 생각이거나 임시 방편이 아닙니다.

 

 

 

3. 이슬람의 이념은 부드럽고 유연하며, 이해하기 쉽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요소와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기본적이고 불가침한 원칙을 나타낼 뿐, 인간의 지혜로 세부 항목을 결정하고, 필요할 때마다 응용할 여지가 있습니다.

 

이슬람의 이념은 어떻게 보든 이해하기 쉽고 실천적이며, 기지에 넘치는 원칙들로 이루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슬람은 실제로 이들 원칙을 언제나 현실에 적용하고 실현해 왔다는 의미에서 실천적입니다.

 

이슬람의 원칙은 자본가나 특정 계급 어느 쪽 편도 들지 않고, 세속적인 일과 영적인 일 모두 중시하며, 현세와 내세의 삶 모두를 참작하며, 모든 일에 극단을 경계하여 온건하고 안정된 삶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중도적입니다.

 

 

 

이렇게 확립된 원칙은 차치하더라도, 이슬람은 각 지역과 시대에 맞게 상세 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융통성이 풍부합니다. 이러한 융통성은 명백한 사실이고 필연입니다.

 

왜냐하면, 이슬람의 이념은 하나님의 작품이며, 하나님의 작품 모두가 그러하듯, 인간정신이 활동할 여지, 인간이 시도와 노력할 폭넓은 여지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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