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여성관 -7

전쟁으로 인해 남녀숫자가 극심하게 차이가나면 많은 여성들은 생활궁핍과 성적욕구를 이기지 못하여 타락하기 쉽습니다. 그런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일부다처제가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특수한 상황이라고 해서 사회윤리를 생각하지 않고 과부들이 성적욕구를 해결해야 하겠습니까?

이런 운명을 겪은 프랑스는 사회가 붕괴되는 결과를 맞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역사 속에서 누렸던 영광스러운 지위에서 떨어져 내려앉았던 것입니다. 만약에 부인모두를 공평하게 대우할 수 있는 경우에 한 남성이 한 번에 여러 명의 부인을 얻을 수 있도록 법이 허용했더라면 그런 사회적 붕괴현상은 생기지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슬람과 여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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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때와는 다르더라도 또 어떤 상황에서도 일부다처제는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성적욕구가 아주 과다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한 부인에게서 만족할 수 없으며 또한 넘쳐흐르는 욕구를 억제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법에 의하여 둘째 부인을 얻도록 허용해 주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을 경우 건전한 사회체제라면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여자친구와 부정한 성관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불임이나 부부행위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만성질병 등 여러 경우에서 일부다처제가 단 하나의 해결책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첫 번째 경우, 여성이 불임증일 때 그 때문에 여성 자신을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그녀 남편이 사람 마음속에서 가장 강한 욕정을 일생 동안 억제해야 하겠습니까? 다른 여인과 결혼하는 것 만이 그 경우에는 유일하게 합리적 방법입니다.

첫 번째 부인은 그들과 계속 함께 살거나 따로 살 수가 있습니다. 만성질병을 앓는 부인에 대해 논의해 보겠습니다.

성욕이 천한 본능이므로 죄 없는 부인행복과 안녕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성적만족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 하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성욕이 천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성욕이라는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적인 욕구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남편이 자기 성적욕구를 기꺼이 포기 함으로서 부인의 즐거움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고상하고 아량 있는 행동으로 높이 평가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라도 질 수 있을 만큼 이상의 짐을 지우지 않으십니다. 더욱이 현실적인 것을 피하지 않고 맞아들이는 것은 일부다처제가 허용되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일반적으로 발생되는 바와 같이 고상함을 가장하면서 모든 종류의 추행을 행하는 것보다는 더 실제적이고 훌륭한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이런 점에서 부인을 사랑할 수도 없고 이혼할 수도 없는 상황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는 일부다처제가 유일한 해결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여성문제에 대한 다른 의문점을 풀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슬람에서 당연히 허용되어 있는 대중 속에서 일하고 활동 할 여성 권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옛날에는 여성이라도 필요가 있을 때에는 언제라도 밖에서 일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슬람도 여성교육, 간호, 치료와 같은 여성봉사를 필요로 하는 사회기구에 여성이 나가 일하는 것을 금하지 않습니다. 전쟁 등에서 남성이 필요한 것처럼 이런 목적을 위하여서는 여성봉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부인이 생계비를 벌어다 줄 사람이 없다면 당연히 밖에 나가 일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슬람은 정말로 여성이 밖에 나가서 일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만 여성을 밖에 나가 일하게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성이 어머니로서 역할에 적합하도록 신체적, 지적, 본능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데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여성이 다른 중요치 않은 일에 주의를 돌린다면 여성의 이러한 본질 때문에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여성은 남성의 손에 있는 노리개가 될 뿐이며 무절제한 사치와 방종에 빠져 남성의 어리석은 요구의 희생물이 될 뿐입니다.

인간이란 변하는 상황에서도 변화하지 않는 불변의 실체라는 것을 주장하는 이슬람으로서 가장 뚜렷한 특징을 상실하게끔 할지 모르는 그런 상황을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여성은 자기자신이 없을 때라도 어린애를 돌보는 보모를 둠으로써 가정에서 엄마 노릇을 하며 밖에서 일할 수 없단 말인가?” 라는 반론이 제기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근거가 없는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보모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가능한 신체적, 지적, 심리적인 모든 도움을 어린이에게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단 한 가지, 사랑만은 엄마 아니라면 도저히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랑이 없다면 인생은 풍요로울 수가 없으며 선을 행하는 도덕저변도 마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가치 기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바보같은 공산주의 옹호자들은 아무리 노력한다 할지라도 인간성을 조금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어린이는 적어도 첫 2년 동안은 엄마가 돌보아야 합니다. 어떻게 보모가 이러한 사랑과 주의를 아이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보모는 대부분의 경우 5살에서 10살 아이를 돌봅니다. 어린이들은 그들 장난감과 그들이 함께 받고 있는 인위적인 엄마의 사랑을 위하여 서로 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리하여 싸움은 부모애착과 사랑이 없는 어린이의 마음에 싸늘함과 거침만을 남겨 주면서 삶의 필수적인 특징인 양 가슴 속에서 자리잡게 됩니다.

어떤 절실한 필요가 있다면 보모가 어린이들을 돌보게 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와 같이 절실한 필요가 없을 경우에도 어린애를 보모에게 맡기는 것은 바보짓일 뿐 입니다.

그러나 서구 사람들은 역사적, 지리적, 정치적, 경제적 생활조건을 핑계 삼아 자신들을 변명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이슬람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그럴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여성들의 노동을 필요로 할 만큼 밖에서 일할 남성근로자가 없겠습니까? 또는 무슬림 남성들 즉 아버지, 형제, 남편 또는 친척들이 그들의 딸, 자매, 부인 또는 가난한 친척들을 도와주지 않고 그들이 밖에 나가 생활비를 버는 것을 방임하겠습니까?

여성이 밖에 나가 일함으로써 경제적 독립성을 획득하여 사회에서 여성명예와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슬람이 여성에게도 경제적 독립성을 주는 것을 법적으로 부정하였는지는 의문입니다.

사실상 이슬람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체제문제가 아니라 가난 때문에 남녀가 좋은 생활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없다는 것입니다. 해결책은 모든 국가가 번영하고 누구도 가난하지 않도록 우리의 물자생산을 점점 늘리는 데 있습니다.

부인을 밖에 나가 일하게 함으로써 두 사람이 벌기 때문에 가족소득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어떤 개인적인 경우에는 이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만약 부인이 밖에 나가 일한다면 남편과 부인이 오랫동안 따로 있게 되어 도덕적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었을 경우 여성이 밖에 나가 일한 것에 대한 어떠한 경제적, 사회적, 도덕적인 변명이 통할 수 있겠습니까?

부인에게 온 마음을 다하여 인류를 돌보는 여성 본래 기능을 부여함으로써 이슬람은 사회요구와 마찬가지로 인간성의 요구에 주의를 돌립니다. 그래서 이슬람은 부인에게 높은 존경과 경의를 표하고 불필요한 걱정을 하지 않도록 부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여 도와주는 의무를 남성에게 부과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전언자님 에게 ‘가장 잘 돌보아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전언자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그대 어머님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남자는 ‘그 다음에는 누구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다시 전언자님께서 말씀하시길 ‘다음에도 그대 어머님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남자는 다시 한 번 ‘그 다음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전언자님께서는 ‘다음에는 그대 아버님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무슬림과 부카리〕

 

그러면 오늘날의 무슬림 여성들의 외침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슬람이 아직도 여성들에게 허용하지 않아서 의회대표나 투표를 통하여서만 획득해야 하는 권리나 기능이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여성은 동등한 인간지위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슬람은 이론적으로나 법적으로 이것을 이미 여성에게 부여하였습니다.

여성은 경제독립성과 사회생활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합니다. 이슬람은 이것을 여성에게 처음으로 허용한 종교입니다.

여성은 교육받을 권리를 요구합니다. 이슬람은 이것을 인정했을 뿐 아니라 여성의무로 만들었습니다.

여성이 본인동의 없는 결혼을 하지 않을 권리를 바랐을 때, 이슬람은 이 권리를 여성에게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배우자를 정할 권리까지 주었습니다.

여성이 자기 집에서 자기기능을 수행하는데 친절하고 공정하게 대우받을 것을 요구하며 만약 남편이 자기에게 공정하고 정당하게 대우하지 않는다면 남편에게 이혼을 청구할 권리를 가질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이슬람은 이러한 모든 권리를 여성에게 부여했을 뿐 아니라 이러한 권리를 보호하는 것을 남성의무로 정하였습니다.

여성이 밖에 나가 일 할 권리를 원하는 경우 이슬람은 이러한 권리까지 인정합니다.

천하고 창피스러운 타락에 빠질 자유를 여성이 가지고 있는가?

이슬람은 남성이 그런 타락에 빠짐으로써 자신들의 가치를 실추시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에게도 이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러한 권리는 의회의 여성 대표자들조차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자유를 원하는 여성이라면 사회유대와 전통이 무너지고 무질서에 빠질 때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려야만 할 것입니다. 그 때는 이러한 방종에 대한 욕구가 모두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우리들 생활여건과 가치체계가 서양과는 다르다 할지라도 실제로 동양여성의 지위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만큼 낮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구 여성들은 높은 사회적 지위뿐만 아니라 자유도 이미 획득했는데 왜 동양여성들은 그들을 본받아서 빼앗긴 권리를 되찾으려 하지 않을까요?

이것은 의심 할 여지없는 사실입니다. 이슬람국가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낙후되어 있어 존경과 우아함을 갖추지 못합니다.

여성은 수준 낮은 생활을 하고 있고 여성이라는 단어는 단지 천하고 세속적인 욕망에 대한 대명사일 뿐입니다. 여성은 행복보다는 결핍과 부자유에 쪼들리고 있으며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일시적인 감정적 존재 이상의 수준을 넘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 대해 누가 책임지는가? 이슬람이나 이슬람의 교리가 그것과 관련이 있는가?

사실 동양여성의 비참한 상태는 오늘 날 동양에서 팽배해 있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심리적 여건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 우리사회생활을 개선하고, 사회악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잘 알기를 원한다면 이런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현재 동양여성들 비참한 상태 근저에는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 수세기 동안 동양이 겪어왔던 참담한 가난이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사치와 낭비 속에서 살고 있는 반면 나머지 사람들은 먹고 입을 것조차 충분하지 못한 상태로 살며, 국민을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누어 전자는 모든 특권을 누리면서도 거기에 상응하는 의무는 지지 않는 반면 후자는 무거운 의무만을 짊어짐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따른 보상조차 받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 불공평입니다.

하늘을 뒤덮은 압제의 검은 구름은 바로 이런 사회적 요인의 결과입니다. 동양에서 현재의 여성에 대한 굴욕과 학대는 실제로 이런 여건 때문입니다.

여성자신과 자기 동반자인 남성 사이에 사랑과 존경의 따뜻한 관계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억압과 비참한 가난으로 숨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이러한 사랑과 존경이 어떻게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왜냐하면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 역시 비록 여성보다는 비교적 나은 편인 것 같지만 사실 이러한 환경의 희생물인 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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