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형성 -2

 

기독교 해석 가들은 거의 의도적으로, 그러나 모든 증거와 모순되게, 파라오의 죽음을 무시 해 버립니다. 더구나 그들 중에는 꾸란을 그것과 관련 지어 독자들로 하여금 매우 이상한 비교를 하도록 조장합니다.

 

예루살렘 성경학교가 명령한 성경 번역에서 꾸르와이예 (Couroyer) 신부는 다음과 같이 파라오의 죽음을 해석합니다:

“꾸란 에서는 이것 (파라오의 죽음을 언급하고 있고 (10장 90-92절), 널리 알려진 전승에서는 군대와 함께 익사했던 파라오가 (이 사건은 성경에 언급되지 않는다) 대양 밑에서 바다의 사람들, 예를 들면 물개들은 통치하며 산다고 한다.”

 

꾸란을 알지 못한 독자는 성경의 내용과 모순된다는 – 해석 가들의 – 언급과 위 주석에서 꾸란 다음에 언급한, 소위 널리 알려진 전승에 나온다는 이 터무니 없는 전설을 분명히 서로 연관 지으려 할 것 입니다.

 

꾸란 에서 이에 대한 실제 의미는 그 해석 가들의 주장과 무관합니다.

10장 90-92절에서 알 수 잇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은 파라오와 그 군대가 추적해 올 때 바다를 건넜고, 파라오는 곧 물에 빠져 죽으려 할 때,

“저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믿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음을 믿습니다. 저는 그 분께 복종하는 자입니다.”라고 외쳤으며, 하나님께서는 “아니, 이제 와서야! 너는 반항했으며 해를 끼쳤다. 오늘 우리는 너의 시체를 구하니, 너 이후에 온 자들에게 표적이 될 것이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상이 그 장 속에 담긴 파라오의 죽음에 관한 모든 내용입니다. 꾸란 어디에서도 그 해석 가들이 주장하는 환상적인 내용은 없습니다. 단지 꾸란 본문에서는 파라오의 시체가 구해 질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으니, 이것이 중요합니다.

 

선지자가 꾸란을 사람들에게 전달 할 당시, 오늘 날 출애굽과 관계 있다고 (옳든 그르든 간에) 생각되는 모든 파라오들의 시체는 룩소르 (Luxor) 에서 나일 강 반대 편 테베스의 네크로폴리스 (Necropolis) 의 묘지에 묻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어느 누구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으며, 그곳에서 발견되었던 시기는 19세기 말에

와서야 이였습니다.

 

꾸란 에서 언급하듯이, 출애굽 당시 파라오의 시체는 사실 구해졌는데, 어느 파라오든 간에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의 로얄 미이라 방에서 방문객들은 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진실은 꾸르와이예 신부가 꾸란에 덧붙인 어처구니 없는 전설과는 너무나 상이합니다.

 

히브리 성서의 여러 부분에 등장하는 신의 개념은 애니미즘, 다신론, 택일 신 이론 henotheism (역주: 擇一神論, 여러 신의 존재를 상정한 후, 그 중 하나의 신을 집단의 수호신으로 모시는 것), 일신숭배 monolatry (역주: 一神崇拜, 여러 신의 존재를 상정한 후, 그 중 하나의 신이 가장 위대하다고 평가하여 모시는 것. 자신들이 특정 신을 선택했을 뿐, 원래는 여러 신이 동등하다고 보는 것에서 택일 신 이론과는 다르다), 민족 신 이론, 보편적이고 윤리적 유 일신론 등으로 다양합니다.

 

유대인은 초기역사와 그 후 여러 단계에서 각각 신 개념에서 입각해 신앙생활을 했고, 성서기록자가 특별히 문제 삼지 않은 경우, 대부분 간과되었습니다.

일부 현대 학자는 심지어 첫 번째 계명인 쉐마 Shema (역주: ‘쉐마’는 ‘들으라’는 뜻으로 유대인이 아침저녁으로 하는 기도의 첫 구절이다. 기도는 토라의 일부 구절이기도 하다. 내용은 십계명의 첫 번째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차도 신의 통일성, 단일성, 초월성을 확언하지 않는다 보며 이 구절이 기껏해야 일신숭배론 혹은 단일 야훼이론을 주장 할 뿐이라 말 하고 있습니다.

 

유 일신론은 어디에서든 오직 하나의 신만 존재한다는 생각인데,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나이 산 정상에서나, 쉐마에서나, 야훼 이외의 다른 신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야훼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모세 오경 (역주: 창세기, 출애굽 기, 레위 기, 민수 기, 신명 기 다섯 권. 모세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토라’라고도 한다)에서도 초월적 유일신을 말하는 문장 찾기도 역시 어렵습니다. 유대인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첫 번째 계명을 야훼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문장으로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사실 모세오경을 둘러보더라도 신의 통일성, 단일성, 유일성과 배치되는 내용을 쉽게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파라오 메르넵타의 미이라 라암셋 2세 아들이자 출애굽의 파라오인 – 모든 증거에서 이를 입증 할 수 있습니다 – 메르넵타의 미이라 된 시체를 1898년 테베스의 왕 계곡에서 로렛 (Loret) 이 발견하였으며, 나중에 카이로 에로 이송을 하였습니다.

 

엘리어트 스미스 (Elliot Smith) 는 그 수의를 1907년 7월 8일 벗겨서 그 과정과 시체에 대한 조사 내용을 왕실 미이라 (The Royal Mummies, 1912) 에서 상세히 기술 했습니다.

 

그 당시에 그 미이라가 여러 부분에서 변질 상태에 있었지만, 만족할 만한 상태로 보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후 미이라는 카이로 박물관에서 머리와 목은 노출되고 나머지 부분은 천으로 가리운 채 방문객들에게 전시 되었습니다.

 

최근에 와서, 그 박물관에서 소장한 미이라에 대한 유일한 전체 사진은 1912년 스미스가 찍은 것입니다.

“1975년 6월 이집트 당국은 그 때까지 감추어 왔던 파라오의 시신 일부를 매우 친절하게도 본인이 조사하도록 허락했다. 그 미이라의 상태를 60년 전의 상태와 비교해 볼 때, 분명히 여러 부분들이 변질 되어 없어졌다. 미이라의 조직은 몇 군데는 인간의 손으로, 나머지는 세월이 흘러 크게 손상되었다”.

 

그러한 자연 적 변질은 그 것을 발견했던 19세기 말엽부터 보존상의 변화 때문이라고 쉽게 설명 할 수가 있습니다. 그 미이라는 3천년 이상이나 누워 있던 테베스의 네크로폴리스의 무덤에서 발견 되었습니다.

오늘날 그 미이라는 외부와 완전히 밀폐되지 않은 단순한 유리 상자에 진열되어 있기 때문에 미생물의 오염을 막지 못합니다. 그 미이라는 기온 변동과 계절의 습기 변화 때문에 거의 3천년 이상 변질되지 않고 보호된 채 있을 수 있었던 상태와는 거리가 멀게 있습니다. 그 수의로 보호받았고 어느 곳보다 기온이 일정하고 건조한 밀폐된 무덤 속 환경에 남아 있다는 이점이 있었지만, 이를 잃게 된 것 입다.

물론 네크로폴리스에서 그 미이라는 약탈자와 쥐들의 침입을 견디어내야 했으며, 상당한 손상을 입게 되었지만, 오늘날 보다 세월의 시험을 견뎌내기에 더욱 좋은 듯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본인이 제안하여 1975년 6월 미이라 연구 중에 특별한 조사가 있었습니다. 엘 멜리지 (El Meligy) 박사와 람시스 (Ramsiys) 박사의 특출한 방사능 조사와 무스타파 마니알라위 (Mustapha Manialawiy) 박사의 복부와 흉부 내부에 대한 조사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최초로 미이라에 실시한 내시경 조사 이였습니다. 이 기술 덕택에 시신 내부의 중요 부분들을 보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체칼디 (Ceccaldi) 교수는 미이라 시신에서 산발적으로 떨어져 나온 작은 부분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하여 법의학의 일반 조사를 했습니다.

 

이 조사는 미뇨 (Mignot) 교수와 뒤리공 (Durigon) 박사가 실행 했습니다. 유감스런 일은 본 책이

출판될 때까지도 결정적인 발표가 아직까지 없었습니다.

이 조사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복부에 넓은 공간이 생긴 복합 장해의 발견입니다. 어떤 것은 치명적이어서 파라오의 죽음 이전인지 이후 인지를 확실히 밝힐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는 경전의 이야기대로 익사 때문이거나, 물에 익사하기 전 심한 충격으로 – 혹은 두 경우 모두 – 아마도 죽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시신의 변질과 함께 그러한 장해 때문에, 우선 당장은 주의 깊은 복구조치가 취하여지지 않는 이상 파라오의 미이라 보존에 상당한 문제가 생길 것 입니다. 그러한 조치를 취해야만이 아직도 오늘날 출애굽 당시 파라오의 죽음과 그 시신의 구조에 관해 현존하는 유일한 구체적 증거가 당장 없어지지 않을 것 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 역사의 유물을 보존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려고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즉 모세를 알고 그의 탄원을 거절하며 도망칠 때 추적하다가 도중에 목숨을 잃은 한 인간의 미이라에 대한 실제 보존입니다.

꾸란에 적혀있듯이, 하나님의 뜻대로 그의 자취는 지상에서 파괴되지 않고 인간의 표적이 되도록

구조 되었습니다.

 

경전의 진리에 대한 증거를 현대 자료에서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에서 왕의 미이라 방을 방문하면 파라오의 시신을 다룬 꾸란 구절의 놀라운 예증을 직접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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