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그리스도교 – 2

영국교회의 39개 신조 중 7신조는 “구약성서가 신약성서와 모순되지 않는다….” 라고 시작합니다. 밀톤이 매우 분명하게 밝혔듯이, 구약성서는 하나님의 유일하심을 확인할 수 있는 구절로 가득합니다. 삼위일체 논리가 담긴 말로서 신의 실체를 말하는 구절은 하나도 없습니다.

구약성서 내용을 인정하는 행동과 그 문제에서도 복음서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삼위일체 논리를 신봉한다는 것은 아마 오늘날 그리스도교 안에 이중사고를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잘 드러 내 보이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국립교회가 갖는, 예수 가르침에 바탕을 두지 않은 형이상학의 논리는 예수 본성뿐만 아니라 신의 유일성에 대해서도 명확한 생각을 갖지 못하게끔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갖는 형이상학은 예수가 전한 형이상학과 정 반대 입니다. 예수가 가져 온 형이하학적인 면, 즉 그 분의 행동규범은 오늘 날 회복 할 수 없을 정도로 손실 되었습니다. 예수가 살았던 대로 살아가는 것은 그 분의 메시지를 통하여 이해 할 수 있으나, 예수가 행동했던 방식을 적어놓은 것은 실제로 남아 있지를 않습니다.

 

그나마 남아있는 얼마 안 되는 지식도 자주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한 가장 기본적인 행동은 창조주를 섬기는 일 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창조 된 주 목적 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예수가 행한 대로 경배하는 그리스도교인은 없다는 사실이 자명합니다.

 

예수는 보통 유대교회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분은 날마다 정해진 시간, 즉 아침과 정오 그리고 밤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분이 드린 정확한 기도형식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으나, 모세가 드린 기도를 바탕으로 했다고 전합니다. 예수는 법을 유지하러 온 것이지 이를 조금도 손상시키려고 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교회에서 12살 때부터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분은 그 교회에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 분은 그 교회를 청소하곤 하였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교인들이 예수가 한 대로 할례를 하고 있는지요?

 

오늘날 교회에서 행하는 예배식들은 예수가 사라진 다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발달 되었습니다. 그 중 많은 내용은 이교인 그리스나 로마 신화 의식에서 직접 가져온 것 입니다.

교회에서 드리는 기도는 예수가 드린 그 기도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가는 예수가 부른 찬송가가 아닙니다. 바울과 그 추종자들이 만들어냈기 때문에,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계시 가르침이 전혀 남아있지를 않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은 사람은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아무 것이나 먹습니다. 그러나 예수와 그 분의 진정한 동료들은 적법한 고기 만 먹었으며, 돼지고기는 금지 하였습니다. 예수가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장만 한 음식은 유월절 음식 이었습니다.

예수가 그처럼 꼼꼼하게 지켰던, 오래 지속되어 온 유대 전통을 오늘 날 그리스도교에서는 지키지 않습니다. 예수가 언제 음식을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으로 먹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가 단식을 하였는데,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하였는지도 또한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분이 특별히 좋아하신 음식이 무엇이고 또 특별히 좋아하지 않은 음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록도 전혀 없습니다.

 

그분이 지상에서 머무는 동안 결혼을 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이를 금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 추종자가 독신을 지켜야 한 다는 복음서의 구절은 하나도 없습니다.

수도원이나 수녀원처럼 독신사회의 수립에 대하여는 그 정당한 근거가 없습니다. 비록 그 기원을 엣세네 같은 공동체로 볼 수도 있겠지만, 예수의 초기 동료들은 결혼을 하였는데, 모세가 지킨 결혼에 대한 행동 규범을 분명히 따른 것 이었습니다.

그들에 대한 본보기가 오늘 날에는 더 이상 지켜지지가 않습니다.

 

서양에서 가족 구조의 붕괴는 기독교의 결혼생활, 즉 남편은 부인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부인은 남편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효과 있는 안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복음서로부터 도덕 원리를 끌어 내 이를 지키면서 사는 내용이 어떤 면에서 예수가 행동 한 방식과는 똑 같지가 않습니다.

한 행동방식은 연역 지식에서 나온 산물이고, 또 다른 방식은 계시 지식을 따른 것 입니다.

 

예수가 어떻게 걷고, 어떻게 앉았으며, 어떻게 서 있었거나, 어떻게 몸을 청결히 하고, 어떻게 잠을 잤으며,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여, 어떤 식으로 노인에게 대하고, 어떻게 젊은이를 대하며, 어떻게 노파를 대하고, 어떻게 젊은 여성을 대하고, 어떻게 낯선 사람을 대하고, 어떻게 손님을 맞이하고, 어떻게 적을 대하고, 어떻게 시장에서 거래를 하고, 어떻게 여행을 하고, 무엇을 허용하고, 무엇을 허용하지 않았는지 그런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 받은 메시지의 기록은 완전하지 않을 뿐 더러 정확하지도 않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바탕을 두고 있는 교리들은 그 기록에서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예수가 행동했는지에 대한 기록을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조금 알려진 것 조차 실제로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제도는, 어떤 형태이든 간에, 언제나 예수 메시지에 대한 해설자요 인도자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교회를 설립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과 인간의 중재자로서 성직계급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기존 교회에서는 아주 일찍부터 그리스도교인들이 교회에서 가르친 대로 행동하고 믿으면 구원을 보장 받는다는 믿음을 항상 가르쳐 왔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디에서 그런 권한을 가져 왔습니까?

그 권한에 대한 주장은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주장하는 교황의 무 오류 설을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보여줍니다.

 

히난 (Heenan) 추기경은 이에 대하여 이런 식으로 요약하여 말 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처럼 놀랍도록 단결을 유지 할 수 있는 비밀은 교회에서는 늘 진리 만 가르칠 것 이라고 하신 그리스도 약속에 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우리가 안 이상에는 이를 수용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것이 진리임을 알기 때문이다 … 모든 카톨릭 사제들은 똑 같은 교리를 가르치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대리자에게 복종하기 때문이다. ‘대리자’란 말은 ‘남의 자리를 대신하는 사람’을 뜻 한다. 교황이 바로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다.

 

그 분이 지상에서 교회 수장으로서 그리스도 자리를 대신 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는 모든 일원이 똑 같은 신앙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 분 만이 계신다. 그들은 교회에서 거짓을 가르칠 수 없기 때문에 교회를 믿는다. 교회가 잘못을 저지를 수 없다고 말할 때 뜻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는 자기 교회를 인도한다고 약속하셨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인도하시기 위해 택하신 방법 중 하나가 그분 대리자를 지상에 두어 자기에 대해 말 하게 하셨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교황은 잘못을 저지를 수 없다고 말 하는 이유이다. 그분은 잘못을 저지를 수 없는 교회의 수장이다. 하나님께선 그 분이 교회를 잘못으로 이끌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다”.

 

히난 추기경이 예수가 아닌 ‘그리스도’만을 말 하는 것을 보면 뜻 깊습니다. 그는 자기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 복음서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 교의는 터무니 없는 것으로 자주 판명이 났습니다. 만약에 모든 교황이 잘못을 저지르지를 않는다면, 호노리우스(Honorius) 교황은 왜 파문을 당했습니까?

유대인은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 한 책임이 없다라고 최근에 말한 교황 회칙은 이전의 모든 교황들이 결코 잘못을 저지를 수 없었다는 것을 뜻 하는 것입니까?

 

오늘 날 많은 로마 카톨릭 교도들은 “교회는 진리만을 가르칠 것이라고 그리스도가 하신 약속”이 근거가 없다고 해서 이를 부정 했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은 복음서 어디에서도 없습니다.

교회 가르침과 행동에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신시내티 대 주교 조셉 버나드 (Joseph L. Bernadin)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미국 카톨릭과의 회견에서 조셉 버나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훌륭한 카톨릭교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들 신앙과 행동은 교회의 공식 가르침과 어긋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오늘날 카톨릭교도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새로운 개념이다 … 일단 금요일에 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합법화하자(1966년), 교황이 지닌 권위에 대한 의문을 갖고 산아제한, 성직자의 결혼, 또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 등을 할 수 있었다.”

 

그릴리(Greely)는 이렇게 썼습니다.

“금요일에 고기를 먹지 않은 행동은 예수가 지킨 단식을 따르고 그 분이 십자가에 처형당한 날을 기념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실제로 교회 명령이 되었고, 수세기 동안 로마 카톨릭을 나타내는 한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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