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أكاديمية سبيلي Sabeeli Academy

알 따우히드-3

Originally posted 2024-05-14 16:01:08.

이슬람에서의 종교 경험은 그만 논하고 인간론으로 넘어 가겠습니다.

이제부터는 구원론과 역사에 함축된 의미를 고찰해야만 합니다.

세상을 하나님의 정형이 구체화된 곳으로 만들기 위해 세상에 순응 성이 있어서 무정형 無定刑 이 되어 재편, 개조, 재단 될 준비가 되어있다는 점은 이미 언급을 하였습니다.

 

계시에 접할 수 있고 이성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비판적으로 정립할 수 있는 전망이 있다는 사실과 아울러 이런 준비가 있기 때문에 인간이 대리 직을 이행하지 못하면 용서할 수 없게 됩니다.

실제적으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이슬람이 아는 인간 구원의 유일한 조건입니다.[1]

 

스스로 사명을 이행하거나 아니면 그 이행이 무가치하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2]

 

누군가, 설사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그 일을 대신 해 주면 그는 꼭두각시가 되고 맙니다.

그것은 ‘도덕적 행위가 이를 자유로운 행위자에 의하여 자유롭게 의도되고 완성되지 않는 한 그 자체가 도덕적이 아니라는 도덕적 행위의 성격상’ 이는 당연한 일 입니다.

인간의 주도와 노력이 없다면 모든 도덕가치는 땅에 떨어집니다.[3]

 

그러므로 이슬람에서 의 구원론은 전통적 그리스도교의 그것과는 상극입니다.

사실 이슬람의 종교 어휘에는 “구원”에 해당하는 용어가 없습니다.

구세주도 없고 구원받아야 할 상황도 없습니다.

인간과 세상은 긍정적으로 선하거나 중립적이거나 둘 중의 하나이지 악하지는 않습니다.[4]

인간들이 아무리 온유 하더라도, ‘혹은 아우구스티누스 교단의 수도사라고 하더라도’ 원죄의 무게에 짓눌리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으로 온건하고 건전한 상태에서 자신의 삶을 시작합니다.[5]

 

사실 세상의 모든 것이 인간의 윤리적 행위를 수용 할 준비가 너무 잘 되어있음은 물론 계시와 이성의 능력이 사용을 기다리고 있다 는 점에서 인간은 태어날 때 이미 영점을 상회합니다.[6]

인간의 팔라 Falah (행복: 행위를 통한 행복; 윤리적 행복; 성공; 행복과 안락) 는 “땅에서 식물을 가꾸다” 를 의미하는 어근으로부터 파생하는 말 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7]

인간은 무지해서든 게을러서든 혹은 주제넘게 반항적 이어서든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고 있는 동안에 그 분의 자비와 용서를 기대 할 수는 있으나 거기에 의지 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운명이나 숙명은 그 자신이 만드는 것 입니다.[8]

 

하나님의 통치는 정의로울 뿐 유리하지도 불리하지도 않습니다.

그 정의의 저울은 가장 정확하고 완벽한 절대의 균형을 이룹니다.

그리고 현세 및 내세에서의 보상과 형벌의 체계는 그것이 축복이든 저주이든 의당 받아야 할 것을 각자에게 정확히 배정 하십니다.[9]

 

이슬람의 종교 경험은 세계 역사에 극히 중요하였습니다.

무슬림은 비전의 불길에 싸여 자신을 역사 무대로 내던지고 그 속에서 선지자가 (평안하소서) 자신에게 전해 준 하나님의 정형의 실현을 성취 하였습니다.

무슬림에게 이런 대의명분 보다 가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이를 위해 무슬림들은 자신의 목숨까지 내 던지는 가장 큰 대가를 지불 할 각오까지 하였습니다.

 

그 내용에 충실하게 무슬림들은 전 세계가 자기 무대를 무력으로 우리 속으로 넣으려 했던 소수의 저항세력을 제외한 모든 인류가 자기 움마 Ummah 를 이룬다고 생각 하였습니다.

무력 위에 선 이슬람의 평화 pax Islamica 는 결코 이슬람만이 지배하는 획일적 사회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꾸란의 권한으로 유태인과 그리스도교인과 사바 인이, 무함마드의 권한으로 조로아스터교 인이, 법학자들이 그러한 권한을 유추하여 불교인들이 포함 되었습니다.

그 이상 理想 은 여전 하였으니 곧 꾸란이 말하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최 고위에 있고 누구나 그런 최고성을 인정하는 세계 이였습니다.[10]

 

그러나 이런 인정이 조금이라도 가치가 있으려면 각자가 숙고하여 내린 결정이어야만 합니다.

그런 까닭에 이슬람의 평화에 들어 가는 것은 결코 이슬람으로서의 개종이 아니라 생각이 자유롭게 제시되고 사람들간에 자유롭게 설득하고 설득되는 평화관계에 들어감을 뜻 하였습니다.

 

사실 유태교, 그리스도교, 힌두교, 불교 사회가 각 교의 한계를 지나치거나 무시한 자기 교인을 그 한계 안으로 복귀시킬 수 있는 권한을 요청할 때 마다 이슬람 국가는 자신의 모든 자원을 이들 사회의 처분에 맡겼습니다.

이슬람 국가는 유태인이 마음 먹은 대로 비 유태교인이 되거나 유태인으로서 유태교의 권위에 반항 할 수 없는 유일한 비 유태교 국가 이였습니다.

기독교, 불교, 힌두교도 마찬가지 이였습니다.

 

유럽의 유태인들은 19세기에 해방이 될 때까지 자신들의 ‘바이뜨 하 딘’ Bayt ha Din (교회) 의 지시를 무시하면 파문 -이렇게 파문 당하면 법 적용이 없어져서 기독교 국가나 비 유태인 국가가 제공한 성곽 밖 유태인 거주지에서 생명과 재산이 박탈 되기만 기다렸다- 할 수 있을 뿐 이였으나 자기 ‘바이뜨 하 딘’ (교회)의 지시를 어긴 동방의 유태인들은 이슬람 국가가 그 유태인들 랍비의 이름으로 제재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슬림은 하나님의 신탁을 윤리적인 것으로 이해한다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보아 온 대로 인간은 자신이나 사회와 환경을 바꿔 하나님의 정형에 순응시킬 의무아래에 있습니다.

아울러 피조물에겐 순응성이 있고 인간의 행위를 수용하여 그 목적을 구체화 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도 보아 온 그대로입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인간에게는 책임이 있노라는 결론이 나옵니다.[11]

 

책임, 혹은 심판이 없다면 도덕적 의무의 실현이 불가능합니다.

인간에게 책임이 없다면, 인간 행위에 관해 어떻게든지 어딘가에서 심판을 받지 않는다면 또 다시 냉소가 불가피 해집니다.

심판, 혹은 책임의 완성은 도덕적인 의무나 도덕적인 명령의 필요조건 입니다.

그것은 바로 “규범”의 본질에서 나옵니다.[12]

 

심판이 시공 속에 있든, 그 끝에 있든, 그 양쪽에 있든, 그것은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다만 심판은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 복종을 하면, 즉 그 분의 명령을 실행하고 그 분의 정형을 실현하면 팔라 Falah, 곧 성공과 행복과 안락이 오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즉 그 분께 불순종하면 형벌과 고통, 실패의 괴로움이 옵니다.[13]

이들 원리는 알 따우히드 (하나님의 유일성)의 핵심과 이슬람의 정수를 이룹니다.

 

이와 똑같이 이들 원리는 하니프 주의의 (유일신주의) 핵심이요 하늘에서 온 모든 계시의 핵심입니다. 모든 선지자들이 이들 원리를 가르쳤고 여기에 의거하여 운동을 일으켰습니다.[14]

 

이들 원리는 하나님에 의해 바로 인간성 이라는 직물 속에도 똑같이 짜 넣어져서 계시 된 지식과 대조되는 인간이 획득 한 지식이 의지하는 무오 無誤의 자연종교 혹은 자연양심을 이룹니다.

이슬람의 모든 문화가 이들 위에서 건설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울러 알 따우히드 (하나님의 유일성)의 핵심으로서 이들 원리는 역사 전체에 걸쳐 이슬람의 모든 지식, 개인 및 사회윤리, 미학, 무슬림의 생활과 행위의 궁극적 기초 역할을 해 왔습니다.

 

 

 

[1] 내 (하나님)가 과 인간을 창조함은 다름아니라 나를 섬기게 하기 위함이니라. (꾸란 51장 al Zariyah 56절)

[2] 생명과 죽음을 창조하사 너희 스스로 너희 행실이 훌륭함을 보이게 한 (혹은 너희가 의로운 행위에서 남보다 뛰어나게 한) 분은 하나님 이시니…… (꾸란 67장 al Mulk 2절)

[3] 종교에서 강요란 없느니라. 이 후로 진리와 의 義 는 그 반대편과 뚜렷이 구별되나니….. (꾸란 2장 al Baqarah 256절)

그런즉 누구던지 원하는 대로 믿게 하고 또 원하는 대로 믿지 않게 하라 (꾸란 18장 al Kahf 29절)

[4] 만물을 가장 훌륭한 모습으로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니….. (꾸란 32장 al Sajdah 7절)

그 분은 만물을 창조하고 완성 하셨으며…. (꾸란 87장 al A’la 2절)

[5] 성 아우구스티누스, The Enchiridion (편람). Chap. 26. 그리스도교의 죄 개념에 대해서는 동 저자의 Christian Ethics: A Systematic and Historical Analysis of Its Dominant Ideas ‘그리스도교 윤리: 그 지배적 사상의 체계적, 역사적 분석 (McGill University Press, 1967), chap. VI. 참조.

[6] 우리가 사람에게 두 눈과, 혀와, 입술을 창조 해 주지 않았느냐? 우리가 인간에게 방향감각을 주지 않았느냐? (꾸란 90장 al Balad: 8-10절)

진실로 하나님께서 천지 가운데 있는 만물로 하여금 사람에게 이바지하게 하였나니…. (꾸란 45장 al Jathiyah 13절)

진실로 그 분은 땅을 사람의 거처로 만드시고 너희에게 길을 만들어주사 그로써 (목적지로) 인도될 수 있게 하시며…. (꾸란 43장 al Zukhruf 10절).

[7] M.M. al Zubaydi, Taj al Arus (Dar Maktabat al Hayah, 1965), s.v. “f-l-h”, vol. 2, 199.

[8] 그 날 (심판 날) 모든 사람들이 부활되어 자기 행위를 보게 되리니, 누구든 호리만한 선행이라도 한 사람은 그 때 그것을 볼것 이요 누구든 호리만한 악행이라도 한 사람은 그대로 헤아림을 받으리라. (꾸란 99 al Zalzalah : 6-8).

[9] 하나님께선 결코 당신의 종복 들을 부당히 대우하지 않으심이라…. (꾸란 3 al Imran : 182)

하나님께서 당신께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받고 대답하시되 “남자든 여자든 선행을 하면 내 결코 잊지 않고 헤아리리라” 하시리라…. (꾸란 3 al Imran : 195)

[10] 하나님께서는 불신자의 말을 맨 밑으로 낮추시고 당신의 말씀을 맨 위로 높이시니…. (꾸란 9 al Taubah : 40)

종교가 하나님의 편이 될때까지…. (꾸란 2 al Baqarah : 193)

[11] 그들 (모든 인간들)은 심판을 받으리라. (꾸란 21장 al Anbiya’ 23절)

(주로 인간 책임의 긍정을 지지하는 꾸란 구절은 더 많이 있다)

[12] 이슬람은 히삽(심판) 사상을 이렇게 이해한다. 야움 알 히삽은 심판 날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심판 (히삽) 한다” 는 사상은 꾸란 도처에 있는데 이런 사상은 바로 도덕/종교체제 전체의 기초라고 말할 수 있다.

[13] 꾸란의 수라 surah 章 들을 무심히 읽어봐도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계약이라는 이런 이해가 확인 될 것이다.

이전의 모든 선지자들과 그 교우들도 이같이 이해했다.

이 같은 계약 정신이 고대인들의 종교적, 도덕적 기초를 제공한다.

메소포타미아 의 에누마 엘리쉬 Enuma Elish, 립피트 이쉬타르 Lippit Ishtar 법전, 함무라비 Hammurabi 법전에 이런 정신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James B. Pritchard, Ancient Near East Text.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55) 참조

[14] 그대 자신을 이전 종교인 하니파(유일신자)로 돌릴 것이니,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타고 난 종교에 맞는 것이리라.

하나님의 피조물들은 변치 아니하니, 이는 참되고 소중한 종교이건만 사람들이 대부분 알지 못함이로다. (꾸란 30장 al Rum 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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