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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 바르나바스의 지위 -2

Originally posted 2024-03-23 23:29:44.

바울을 그들 공동체에 영입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바르나바스의 중요성과 그에 대한 존경심을 다시 한 번 입증할 수가 있습니다. 아마도 바르나바스는 옛 학교동료를 좋게 보고 있었으며, 그렇게 철저하게 박해를 가한 바울의 열정을 재활용할 수 있다면, 예수의 훌륭하고 뛰어난 제자로 만들 수 있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모든 사도들이 이 의견에 찬성하지는 않았으며, 베드로는 바울에게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바울이 저질렀던 과거행적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뿐만 아니라, 다른 두 가지 점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 가르침을 누구에게 전하고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서로 이견이 있었는데, 예수가 유대인들에게 내려 보낸 인도를 부활하기 위하여 왔으므로, 유대인들에게 그 가르침을 가르쳐야 한다고 베드로는 주장했습니다.

반면 바울은 유대인이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진리를 전파해야 한다고 믿고 있을 뿐 아니라, 예수가 사라진 뒤 그 분으로부터 추가명령을 받았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시대와 상황이 요구하는 대로 그 가르침을 바꾸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치를 분명히 취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바르나바스는 이 둘 사이에서 중간입장을 취했는데, 그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만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인도를 받아 은총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이면, 유대인이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고 전해야만 한다고 느꼈습니다. 바르나바스와 베드로는 둘 다 자기들에게 전달된 하나님의 인도를 유대교 연속이요 확장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이 직접 예수에게서 들은 것과는 다른 바울의 가르침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이 주장하는 새로운 교리는 주로 순전히 그 스스로가 지어낸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바울과 그의 주석가 (Paul and His Interpreters)라는 책에서 알베르트 쉬바이쩌는 “바울은 스승이 하신 말씀과 명령에 결코 호소하지 않는다.”라고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바르나바스는 이 극단적인 두 상황은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며, 바울이 특히 예수의 추종자들과 동행함으로써 이들이 아직도 예수 가르침을 거의 완전하게 이해하고 구현하고 있음을 고려하여 자기 생각을 버릴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바르나바스는 바울을 사도들이 만장일치로 반대했을 때, 그를 감싸고 보호하였으므로, 이 단계에서 바르나바스로부터 받은 지원이 바울에게 얼마나 중요했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이유 때문에 바르나바스 생애 중 이런 부분이 사도행전에 그렇게 상세히 기록된 것 같습니다.

 

바르나바스와 바울 관계는 사도행전 13장 1-2절에 나와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 (Niger)라 하는 시므온 (Simeon)과 시레네 (Cyrene) 사람 루기오 (Lucius)와 분봉 왕 헤롯의 젖 동생 마나엔 (Manaen)과 사울 (Saul)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위에서 추종자들의 서열상 누가는 바르나바스를 처음에, 바울을 마지막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함께 일하기 위해 선발된 이 두 사람은 바르나바스의 조카 요한 마가와 동행하여 그리스에 예수 가르침을 전파하러 떠났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 야메 (James)는 예수 추종세력 우두머리로 남아 있었고, 베드로 또한 뒤에 남았습니다.

 

두 전도자들은 비록 몇 군데서 돌 세례를 받았지만, 완전히 성공하였다고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진리의 사람으로 그들 명성은 멀리, 그리고 널리 퍼져갔습니다. 두 사람이 루가오니아 (Lucaonia) 지방에 이르러서 그곳 성 루스드라 (Lystra)에서 앉은뱅이를 치료하였는데, 그런 소문이 퍼져나갔습니다.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쓰스 (Jupiter)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 (Mercurius)라 하더라. 성 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시하고자 하니 두 사도 바나바스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사도행전 14:11-15)

 

바르나바스는 예수가 임무를 시작할 때부터 그분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에 대한 큰 충성과 사랑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르나바스는 계속 예수와 동반하였을 뿐 아니라, 그분 가르침에 열중하였기 때문에 곧 명성을 얻었으며, 사도행전에서는 자기 스승으로부터 배운 것을 남에게 전할 능력이 충분한 사람이라고 분명하게 이 명성을 입증합니다. 제자들이 붙인 이름은 위안과 격려의 근원인 대변인으로서 그의 위치가 어떠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진실하고 관대하였으며 예수를 만난 뒤 소유한 것 모두를 팔아 그분 추종자들에게 쓰라고 주었습니다. 예수와 제자들이 그에게 향한 애정은 그를 칭하는 여러 이름에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뒤부터’ 예수와 꾸준히 함께 한 사람들 중에 유다 지방에 사도를 선발하기로 하였을 때, 두 사람을 뽑았습니다. “하나는 바르사바스 (Barsabas)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 (Justus)라고 하는 요셉 (Joseph)이요, 하나는 맛디아 (Mathias)라.”(사도행전 1:22-23)

 

예수께서 살아 계실 때 그분이랑 동반한 사람 중 성경에 언급되어 있는 요셉은 바르나바스라고 널리 알려진 사람 말고는 달리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굿스피드가 우리에게 말한 대로, 한 때 극약을 마셨으나 아무런 해도 입지 않은 인물인 바르사바가 바로 바르나바스일 가능성이 매우 크고. 만약 그렇다면, 바르나바스가 처음 열 두 사도 중 한 사람은 비록 아니었어도, 분명히 처음 70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 점은 틀림이 없습니다. 처음 열 두 제자에 적합한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는 주장은 예수의 모친 마리아가 임종하면서 제자들을 불렀을 때 바르나바스도 거기에 간 사람이라는 전승으로 뒷받침됩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언제나 그를 자기 글에서 사도라고 불렀습니다.

 

예수가 엣세네 공동체에서 성장했던 것 같고, 바르나바스는 당시 정통유대교 최고 스승인 가말리엘 (Gamaliel) 제자였다는 전래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와 바르나바스가 만남에는 엣세네 공동체의 영지적 가르침과 사원 중심의 정통유대교가 최고 형태로 함께 용해됨을 뜻합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것은 그 두 사람을 균형 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바르나바스가 레위 인 이었으므로 한 열성파의 지도자였을 수도 있습니다.

 

바르나바스에 관해서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최근 역사연구를 통하여 예수가 지상에서 머무는 동안 그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는지 조금씩 밝혀져 가고 있습니다. 최후 만찬이 바르나바 누이 집에서 거행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오늘날 모두 대체로 동의합니다.

 

알베르트 쉬바이쩌 (Albert Schweizer)는 하나님 왕국과 원시 기독교 신앙 (The Kingdom of God and Primitive Christian Belief)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을 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추론 하건대, 제자들과 신자들이 마가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집에 모였는데, 나중에 바르나바스와 바울이 함께 떠난 최초 전도여행에 이 마가가 동참했다.(사도행전 12:25) … 신자들의 모임 장소는 편편한 지붕 밑에 위치한 ‘다락방’이었다.(사도행전 1:12-14) 이 방은 전체 동석 자 들이 한꺼번에 다 모일 수 있을 만큼 넓었을 것이다. 신자들이 오순절 날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던 곳은 바로 이 방이었다. (사도행전 2:1) 예수께서 제자들과 최후만찬을 가졌던 방과 어떻게 똑같을 수 있을까? 예수께서 제자 들 중 두 사람을 베다니로부터 성으로 보내 유월절에 먹을 양식을 준비하라고 하시며,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를 따라서 자리가 펴진 큰 다락방이 있는 집으로 가서, 유월절을 예비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이런 중요한 사실을 마가복음 (마가복음 14:13-15)에서 알 수 있는데, 마가 라고 하는 요한이 전하는 전승이다. 마태가 다만 전하는 것은 예수께서 두 제자를 성안 아무개에게 가서 전하라 하시는데,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웠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는 내용이다. (마태복음 26:18) 테오도르 잔 (Theodore Zahn)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신 최후의 만찬 장소가 요한 마가의 어머니 집이었으며, 여기서 또한 제자들이 갈릴리에서 온 신자들과 만났다는 견해를 맨 먼저 밝혔다.”

 

위에서 쉬바이쩌는 그 집이 요한 마가의 어머니 집이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마가 어머니가 바로 바르나바스 누이였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러주지는 않습니다. 당시 바르나바스는 자신이 소유했던 것들을 모두 팔았으므로, 예루살렘에 체류할 때는, 누이 집에 모든 제자들이 모일 수 있을 만큼 큰 방이 있다면, 그 집에서 머물렀을 것 같습니다. 이런 내용이 신약성서에서 분명하게 언급되지 않은 이유는 제자들이 자신들 신앙 때문에 박해 받았던 당시로서 모임 장소를 비밀로 하고 숨겨야 했기 때문인 듯합니다.

 

바르나바스가 누이 집에서 최후만찬 모임을 주재하였다면, 왜 네 권의 복음서에는 최후만찬에 그가 참석했다고 언급되지 않았는지 의아해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언급이 되었지만 나중에 삭제되었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 그가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없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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