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경전 자료의 현대 지식과 대조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후손들이 보낸 시기와 그들이 떠난 방법에 대해 성경과 꾸란 이야기는 현대 지식과 대조해 볼 때, 문제가 될 자료가 있습니다.

사실 어떤 자료는 많은 문제를 일으키며, 반면에 다른 것은 논쟁거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균형을 이루 지 못합니다.

 

【이집트의 히브리인 들】

성경에 따르자면 (창세기 15장 13절과 출애굽기 12장 40절), 히브리인 들이 이집트에서 400년이나 430년 동안 머물렀다고 분명히 (실수를 범할 위험이 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와 그보다 덜 중요한 출애굽기의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 이후, 야곱의 아들 요셉이 형제들과 함께 이집트로 이주해 갔을 때부터 그 기간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말하는 성경 외에, 꾸란에서도 이집트로 이주를 언급하지만, 그 연대를 말 하지 않으므로 우리에게는 이 점을 조명해 볼 수 있는 다른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몽떼 (P. Montet)에서부터 다니엘 롭스 (Daniel Rops)까지 오늘날 주석가 들은 요셉과 그 형제들의 도착이 기원전 17세기 이집트로 가는 힉소스 (Hyksos) 의 이주와 일치하며, 한 힉소스 왕이 나일

삼각주의 알바리스 (Alvaris) 에서 그 들을 영접했을 만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추측은 솔로몬 사원 건축 (기원전 971년경) 보다 480년 전에 이집트에서 탈출했다고 하는 성경의 내용 (열왕기상 6:1) 과 모순된다는 점에 대하여 아무 의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추정은 출애굽이 대략 기원전 1450년경에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집트에 들어간 것은 기원전 1880-1850년경 일 것 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아브라함이 살았다는 시대와 동일하며, 성경의 다른 자료에서는 그와 요셉의 기간이 250년이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열왕기상의 위 구절은 연대기 적 관점에서 볼 때,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나온 이론이 열왕기상에서 발췌 한 내용과 얼마나 어긋나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이 연대기의 자료가 매우 분명하게 부정확하기 때문에 결국 이에 반대할 아무 명분이 없습니다.

 

경전은 별도로 두고, 히브리인 들이 체류하면서 이집트에 남긴 자취는 매우 드물게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 인으로 판명 난 아피루 (Apiru), 하피루 (Hapiru), 하비루 (Habiru) 등의 노동자들 부류가 이집트에 존재했다고 말 하는 몇 가지 상형문자 자료가 있습니다.

이 부류에는 건축 노동자, 농민, 수학자 등이 있었는데, 그러면 이들은 어디에서 왔겠습니까?

 

이에 대한 대답을 찾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드 보 신부는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그들은 지방민이 아니었으며, 사회 한 계급으로 대접을 받지 못했고, 모두 똑 같이 한 직업이거나 높지 않았다.”

 

투트모시스 (Tuthmosis) 3세 때 그 들은 ‘마구간의 일꾼들’ 이었노라고 한 파피루스에 적혀 있습니다. 기원전 15세기에 아메노피스 2세가 가나안에서 그 사람들 중에 죄인 3,600명을 데려왔는데, 드 보 신부에 따르자면, 그들은 시리아 계 팔레스타인 중에 상당한 비율을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기원 전 1300년경 세토스 (Sethos) 1세 때 아피루는 가나안의 베트쉐안 (Beth-Shean) 지역에서 큰 소동을 일으켰고, 라암셋 2세 때 그들 중에서 채석장에 고용되거나 파라오의 공사 (예를 들어 라암셋 미아몬 (Mianmon) 의 대 탑문에 쓰이는 말뚝을 날랐습니다.

라암셋 2세 때 히브리인 들이 북부 수도 라암셋 시를 건축했노라고 성경에 기록 되어 있습니다. 아피루라는 이집트 글씨가 기원 전 20세기에 다시 한 번 언급되고, 라암셋 3세 때 마지막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아피루가 이집트인에게서는 언급 되지 않는데, 그렇다면 이 말은 히브리인 에게만 해당 되었는지요? 이 말이 처음에는 그 출신 성분에 관계 없이 ‘강제 노동자들’을 의미하는 데 쓰였을 것 이고, 종국에는 한 사람의 직업을 가리키는 형용사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불어로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스위 (suisse)’ 란 말로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스위스인, 프랑스 고 왕국의 스위스 계 외국 용병, 바티칸 수비군, 그리스도교회의 고용인 등을 뜻 합니다.

 

그러나 라암셋 2세 때 히브리인들 (성경에 따르자면) 이나 아피루 (상형문자의 자료에 따르자면) 는 파라오가 명령한 ‘강제노동’ 이라는 대역사에 참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라암셋 2세는 유대인의 학대 자였으며 출애굽기에 언급된 라암셋과 바톰 도시는 분명히 나일 삼각주의 동부에 위치 했습니다.

서로 약 십오 마일 떨어진 오늘 날 타니스 (Tanis) 와 깐티르 (Qantir) 의 이 두 도시와 같은 지역에 위치합니다.

 

라암셋 2세가 건설한 북부 수도는 그 곳에 위치했으며, 라암셋 2세는 그 박해의 장본 인 파라오입니다.

모세는 이런 환경에서 태어났습니다. 강물에서 그를 구출한 상황은 이 앞에서 간략하게 다루었습니다. 그에게는 이집트 이름이 있었습니다.

 

몽떼는 ‘이집트와 성경’ (L’Egypte et la Bible)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랑케 (Ranke) 의 상형문자 사전 인명부에 메시 (Mesw, Mesy) 란 이름이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무사 (Musa) 란 꾸란에 나온 이름입니다.

 

【이집트의 재앙】

이 제목으로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내리신 열 가지 벌을 언급하며, 각 재앙에 대한 자세한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많은 초자연적 차원이나 특성도 있습니다. 꾸란에는 홍수, 메뚜기, 이, 개구리, 피 등 다만 다섯

가지 재앙이 나오는데, 대부분이 초자연적 현상 일 뿐 입니다.

 

이와 개구리의 급속한 번식에 대해서는 성경도 언급합니다. 또 모든 땅으로 흐르는 강물이 피로 물 들었다고 하며, 꾸란에서는 보완 설명 없이 피 만을 언급합니다. 피에 관한 이 문제에 모든 가설을 구상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언급하는 다른 재앙들은 (모기, 파리떼, 독종, 흑 암, 신생과 생 축의 죽음) 노아 홍수의 경우처럼 여러 기원이 있고, 다른 출전에서 나온 구절들이 나란히 열거됩니다.

 

【출애굽의 경로】

꾸란은 이에 대하여 아무 언급이 없지만, 성경에서는 상세히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드 보 신부와 몽떼는 이를 다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출발점은 아마도 타니스 – 깐티르 지역이었지만, 성경의 이야기를 확증할 수 있는 나머지의 경로를 찾을 수 없었고, 모세와 그의 추종자들이 지나가도록 갈라 진 수로 지점을 정확히 말할 수 없습니다.

 

【바닷물이 갈라진 기적】

어떤 학자들은 천문학적 원인이거나 먼 곳에서 화산이 폭발하여 그 결과 지진에 기인한 조류현상 이였노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히브리인 들은 밀려 간 썰물을 이용하였고 바삐 추격해온 이집트인들은 다음 밀물에 휩싸였을 것 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모두 가설일 뿐 입니다

 

출애굽 당시 파라오

출애굽 당시 파라오에 대하여 더 많은 긍정적인 증거에 이를 수 있습니다. 라암셋 2 세의 후계자인 메르넵타 (Merneptah) 를 오랫동안 출애굽 당시 파라오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금세기 초에 저명한 이집트 학 학자 마스페로 (Maspero) 는 카이로 박물관의 방문객 안내서 (Guide du visiteur du Musee du Cairo) 에서 메르넵타가

“알렉산드리아의 전승에 따르면 홍해에서 죽었다고 하는 출애굽 당시 파라오였다.” 라고 했습니다.

본인은 마스페로가 주장 한 그런 근거 자료를 찾을 수 없었지만, 그 훌륭한 논평 가의 주장에 상당한 중요성을 둘 수가 있습니다.

 

몽떼 이외에 이 가설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이론을 제시하려는 성경 주석가나 이집트 학 학자는 정말 극소수 이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성경의 이야기 중에 단 한 내용과 일치한다는 점을 정당화 시키려는 유일한 목적으로 여러 가설들이 쏟아 져 나왔는데, 그런 가설들을 창안한 사람들은 경전의 다른 면에 대하여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한 가설이 이야기의 일면과 일치하는 것처럼 갑자기 보일 수 있겠지만, 그 창안자가 이를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경전에 나온 다른 모든 자료와 심지어 역사와 고고학 등의 자료와 비교까지 하였습니다.

가장 주목을 받는 이상스런 한 가설은 미셀리 (Miceli, 1960) 가 출애굽시기를 날짜까지 맞추어 기원 전 1495년 4월 9일 이라고 한 주장입니다.

그는 자기 정보를 전적으로 달력 계산에 의존하여 투트모시스 2세가 출애굽 당시 이집트를 집권하고 있었으므로 그가 파라오 라고 주장합니다. 이 가설에 대한 확증은 투트모시스 2세의 미라에서 볼 수 있는 피부 장해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 학자는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그것은 문둥병 때문이고, 성경에 나온, 이집트에 내린 재앙 중 하나가 그의 피부종기에 나타났다고 전합니다.

이런 충격적인 해석은 성경 이야기 중에서 또 다른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라암셋 도시가 성경에 언급되어 있기 때문에, 라암셋 집권 이전으로 출애굽 시기를 잡을 수는 없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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