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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의 역사

복음서가 일단 저술이 되자 이것은 신생 기독교 기본경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성서에서 언급한 내용과 같은 방법으로 복음서를 언급했다고 여긴다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 당시 가장 우선적인 전거는 예수 말씀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전하는 수단 인 구두전승뿐이었습니다. 최초로 통용된 저서는 바울의 서한이었으며, 이것은 복음서보다 먼저 오랫동안 널리 보급되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 서한은 수십 년 먼저 쓰였습니다.

 

 

 

몇몇 주석 가 들이 오늘날에 저술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서기 140년 이 전에 수집한 복음서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는 것은 이미 밝혀졌습니다. 서기 170년 경이 되어서야 네 권의 복음서가 정전문학으로서 위치를 확보 했습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예수에 관한 많은 저서를 보급 하였습니다. 그 책들은 그 후 가치 있는 출전으로서 보존되지 못하였으며, 교회에서는 그것들을 숨겨진 것, 즉 ‘외경’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책들 중 어떤 것들은, 『초 교파 역』을 인용하면, “일반적으로 가치 있다는 사실로 이득을 보았기 때문에” 잘 보존되었습니다.

 

 

 

바나바 서한은 이 경우에 해당되지만, 불행히도 나머지 책들은 “매우 무자비하게 한 쪽으로 무시당했으며”, 그 중 일부만이 남아있습니다. 이 책들을 잘못 전달한 것으로 여겼고, 신자들 눈에 띄지 않게 없애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교부들의 말을 인용하여 알려진 나사렛 복음서들, 히브리 복음서들, 이집트 복음서 들과 같은 책들은 정전 복음서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로마 복음서와 바나바 복음서도 이 경우에 해당됩니다.

 

 

 

그 외경 중에는 대중의 환상적인 산물로 허구적인 내용이 들어있는 책도 있었습니다. 외경의 저자들 또한 문자 그대로 터무니 없는 구절을 매우 만족한 채 인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구절을 모든 복음서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마태가 주장하는 예수의 죽음 당시 발생했다는 허구적인 한 사건을 생각 해 보자면. 초기 기독교의 모든 책에서 진지하지 못한 구절을 볼 수 있으니, 이를 솔직히 인정해야만 합니다.

 

 

 

교회가 아직 조직되어가는 과정에 있을 때, 예수에 관한 책들이 너무 많아서 교회 당국에서는 그 중 몇 권만을 채택 한 후 나머지는 모두 불 태워 버렸습니다. 거의 백 권 정도의 복음서가 탄압을 당했습니다. 단지 네 권만을 보존하여 소위 ‘정전’을 이루는 신약성서의 공식 목록에 포함하였습니다.

 

 

 

2세기 중엽 시노페 (Sinope) 의 마르숑 (Marcion) 은 이러한 입장을 취하기 위하여 교회 당국에 많은 압력을 가했습니다. 그는 유대인을 매우 미워하였고, 당시 구약성서 전부와 이와 너무 유사한 유대 기독교 전승에서 나온 듯한 예수 이후의 모든 저서를 부정하였습니다.

 

마르숑은 다만 누가 복음의 가치만을 인정하였는데, 누가를 바울과 그의 책의 대변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마르숑을 이단자라고 선언하였고 바울의 모든 서한을 정전에 포함시켰으며,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포함 시켰습니다. 또 사도행전과 같은 다른 몇 권의 책들도 첨부시켰습니다. 그런데도, 공식 목록은 초기 기독교에서 수세기 동안 세월이 경과함에 따라 바뀌어 갔습니다. 얼마 동안, 나중에는 가치 없는 것으로 판단하였던 책 (즉 외경) 이 그 안에 들어 있었으며, 반면 오늘날 정전 신약성서에 들어있는 다른 책들이 당시에는 배제되었습니다.

 

 

 

이처럼 결정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393년 히포 레기우스 (Hippo Reqius) 와 397년 카르타고 (Carthage) 공의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네 복음서는 언제나 변함없이 그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교회 당국이 외경이라고 선포했던 방대한 문헌 손실을, 비록 그 책 들에 대하여 역사적인 흥미가 있지만, 유감으로 생각하는 부아스마 신부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는 네 복음서의 개요에서 외경을 공관복음서와 똑같을 것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 책을 4세기 말까지 도서관에 보관하였다고 합니다.

 

 

 

4세기에 와서 잘 정돈된 복음서를 볼 수 있는데, 현존하는 복음서 중 가장 오래된 필사본은 당시 것 입니다. 이보다 먼저 기록들, 즉 3세기와 아마도 2세기 것으로는 일부 종이 사본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종이가 도입되기 전 인데?)

 

가장 오래된 것은 양피지로 된 필사본 두 권으로 4세기에 그리스어로 쓰여진 것 입니다. 이 필사본들은 바티칸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그중 두 권은 발견 장소가 알려지지 않은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산에서 발견 된 뒤 런던 대영박물관에 보관 중인 『시내 사본』입니다. 후자에는 두 권의 외경이 들어 있습니다.

 

 

 

『초 교파 역』에 따르면, 또 다른 250 개의 양피지가 전 세계에 걸쳐 11세기까지를 마지막으로 존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해진 신약성서의 사본들이 모두가 동일한 것 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책들끼리 여러 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구별할 수 있지만, 그 책들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그 차이점은 언제나 상당 했다.

 

그 책들 중에는 문법 내용이나 어휘나 어순의 차이에만 신경을 쓴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필사본 사이의 이런 차이점은 전체 구절의 의미에 영향을 미칠 정도이다.”

 

 

 

경전에서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그리스 신약성서 (Novum Testamentum Graece) 를 읽어야만 할 것 입니다.

 

이 책에는 소위 ‘중간’ 그리스 경전이 들어있습니다. 이 경전은 다른 판들에 있는 모든 차이점을 포함하는 종합 경전입니다.

 

 

 

어떤 경전, 심지어 가장 신성한 필사본에 대한 신빙성은 언제나 논란의 대상입니다. 『바티칸 사본』이 좋은 본 보기 입니다.

 

1965년 바티칸 시에서 편집 한 원본 복사판 주석에서 그 편집자는 “복사 (약 10, 11세기라고 추정됨) 후 수세기가 지난 뒤 필기자가 자기 생각에 잘못 된 것을 제외하고 모든 서한에 다시 손을 댔다.” 고 전합니다.

 

 

 

“경전에는 암갈색으로 된 나머지 부분과는 눈에 띄게 대조적인 옅은 갈색으로 적혀있어서 원본 구절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이 충실한 복원이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더구나 그 주석에서 언급하길, “수세기를 걸쳐 그 필사본을 수정하고 주석을 달았던 상이한 필법을 명확히 식별할 수 없으며, 경전에 손을 댈 당시 분명히 일련의 수정을 가했다.” 라고 했습니다.

 

 

 

모든 종교 편람에서는 그 경전을 4세기 사본이라 주장합니다. 수 세기 동안 여러 번 손을 댄 그 경전이 변질된 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바티칸에서 소장하고 있는 출전을 읽어야만 합니다.

 

다른 경전과 비교하고자 할 때, 뜻이 바뀐 변질된 내용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 수 있을까?

 

필기자의 너무 오래된 수정 결과, 수정 한 경전의 재결정판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성령이라는 말이 얼마나 빨리 그 의미가 바뀌고, 또 신학적 견해에서 그 뜻이 얼마나 다르게 바뀌었는지 앞으로 고찰하겠습니다.

 

 

 

뀔망 은 『신약성서』에서 변질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가끔 변질은 부주의한 결함 때문에 생겨났다. 즉 복사하는 사람이 한 마디 말을 빠뜨리거나, 두 마디를 써넣거나, 혹은 문장 전체를 생략했는데, 복사하고 잇는 필사본에는 똑같은 말이 두 번씩이나 나와있기 때문이었다. 또 때로는 의도적인 수정 때문이었다. 복사자가 자기 생각에 따라 경전을 멋대로 수정했거나, 혹은 상이한 숫자를 맞게 하려고 어느 정도 기술적인 시도로서 그것과 대등한 경전을 만들려고 했다. 신약성서 안에 있는 책들이 차차 조금씩 초기 기독교에서 벗어났고, 또 성경으로 받아짐에 따라, 복사 자 들 또한 선임자들과 똑같이 더 임의대로 행동하였다. 그들은 신빙성 있는 경전을 복사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변질된 내용을 적었다.

 

마침내 어떤 복사 자 는 분명하지 않은 구절을 설명하기 위하여 여백에다 주석을 달았다. 이 선임자가 여백에 적은 문장이 구절에서 빠졌다고 생각한 다음 복사 자 는 이 여백에 있는 주석을 본문에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불분명한 새로운 경전이 자꾸 만들어졌다.”

 

 

 

가끔 필사본 몇 권을 복사한 사람들은 너무 지나치게 내용을 임의대로 바꾸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두 권 다음으로 가장 신성한 필사본 중 하나로는 6세기 것인 베제 칸타리지엔시스 사본 (Codex Bezae Cantabrigiensis) 이 있습니다. 그 필기 자 는 아마도 누가와 마태에서 나온 예수의 계보가 상이함을 주지하였으며, 그래서 마태의 계보를 자기의 누가복음 사본에 삽입하였을 터 입니다. 그러나 누가 에게는 마가의 것보다 이름들이 덜 들어 있습니다. 그 외 이름 (일치하지 않는) 을 거기에 메꾸었습니다.

 

 

 

성 제롬의 6세기 불같 (Vulgate) 와 같은 라틴 번역서나 더 오래된 번역서 (Vetus Itala), 혹은 시리아와 콥트 번역서들이 그리스 기본 필사본보다 더 충실한 것 이라고 말 할 수는 없을까요? 그 책들은 이미 현존하지 않은 위에서 언급한 책보다 더 오래된 필사본에서 만들 어 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처럼 많은 판들을 공통성이 어느 정도 있는 부류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인지 말입니다.

 

뀔망에 따르자면,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 — 소위 시리아 경전은 가장 오래된 그리스 필사본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이 경전은 16세기부터 인쇄술의 발달로 유럽 전역에 널리 배포되었으며, 전문가들은 이 책이 아마도 가장 나쁜

 

경전이라고 말한다.

 

— 소위 서양 경전은 오래된 라틴어 판과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된 베제 칸타브리지엔시스 사본과 함께, 『초 교파 역』에 따르면, 그 책의 한 특징인 설명, 의역, 부정확한 자료, ‘화합’ 등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 소위 중간 경전은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을 포함하여, 상당히 순수하다고 한다. 신약성서의 근대 판은 그 경전에 역시 결함이 있지만 (『초 교파 역』), 쉽게 따르고 있다.

 

현대 경전 비판가들이 이에 관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원전에 가장 가까운 경전”을 재편성하는 것이다. 여하튼 “원전 그 자체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은 없다.” (『초 교파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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