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지성 사와 이슬람 지성이 인류문명에 기여-2편

역사서에는 유대인들이 약속된 땅 (아마 기원전 13세기 말엽) 에 와서부터 기원전 6세기 바빌론으로 추방될 때까지 역사가 나옵니다.

 

여기서 강조해야 할 것은 신 말씀의 이행이라고 하는 소위 ‘민족적 사건’ 입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 속에는 역사의 정확성이 거의 무시되었으니 여호수아서 (Book of Joshua) 같은 책은 제일 먼저 신학적 의도에 따른 것입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E. 야콥은 여리고 (Jericho) 와 아이 (Ay) 도시가 파괴되었다고 추측할 경우 고고학과 본문 내용 사이에 분명한 모순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사기 (Book of Judges) 는 적에게 포위당해 싸우는 선택 받은 민족의 방어와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후원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레프브르 (A. Lefevre) 신부가 크랑뽕 성경 (Crampon Bible) 머리말에서 상당히 객관적으로 언급하듯이 사사기는 여러 번 개작되었습니다. 즉 본문의 여러 서론과 첨부된 각 주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룻 (Ruth) 의 이야기가 사사기의 이야기에 보태졌던 것입니다.

 

더구나 사무엘서 (Book of Samuel), 열왕기상하 (two Books of Kings) 는 사무엘  (Samuel), 사울 (Saul), 다윗 (David), 솔로몬 (Solomon) 에 관한 전기 선집입니다. 이 책들의 역사적 가치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E. 야콥은 그 안에 많은 오류가 들어있다고 지적하였는데, 그 이유는 똑같은 사건을 놓고 가끔 두 판이나 심지어 세 판의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엘리야 (Elias), 엘리샤 (Elisha), 이사야 (Isaiah) 등의 사도서에 또한 역사와 전설이 섞여있음을 여기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레프브르 신부처럼 다른 주석가들은  “이 책들이 갖는 역사적 가치가 아주 중요하다.” 고 말합니다.

 

역대상하 (Chronicles I & II), 에스라 (Book of Ezra), 느헤미야서 (Book of Nehemiah) 는 소위 ‘연대기 작가 (Chronicler)’ 라는 한 저자가 기원전 4세기에 쓴 것입니다. 그 저자는 천지창조의 모든

 

이야기에서부터 이 시대까지를 다시 다루었으며, 그가 만든 계보는 다윗까지 입니다. 사실 그는 사무엘서와 열왕기 상 하서를 모두 이용하면서 “내용의 불일치를 전혀 개의치 않고 기계적으로

 

복사하였지만” (야콥), 그런데도, 고고학자들이 확인한 바 있는 정확한 사실을 덧붙였습니다.

 

 

 

그 책들 속에는 신학의 필요성에 따라 역사가 신중하게 조작되어 있었습니다. 그 저자가 “가끔 신학에 따라 역사를 기록했다.” 고 야콥은 언급합니다. “신성을 더럽히는 박해자 므낫세 (Manasseh) 왕이 순조롭게 장기 집권을 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앗수르 (Assyria) 에 머무는 동안 (역대하 33:11) 그는 왕의 귀의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런 내용은 어느 성서나 혹은 비 성서 자료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가 많은 비판을 받아 왔는데, 그 안에는 모호한 내용이 가득하기 때문에, 그리고 다룬 기간이 (기원전 4세기) 잘 알려지지 않아서 비 성서 문서에서도 거의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막가비서 (Books of Maccabees) 는 거의 다른 순서인데, 기원전 2세기에 있었던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기록하였습니다. 이 이유 때문에 상당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들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적’ 이란 제명으로 수집한 책들은 서로 공통점이 거의 없습니다. 역사가 과학적이면서 또한 제멋대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사  도  서

 

위 제목으로 된 여러 사도들의 가르침을 볼 수 있는데, 모세 (Moses), 사무엘 (Samuel), 엘리야 (Elias), 엘리샤 (Elisha) 등과 같이 위대한 사도들은 구약성서에 따로 분류되어 있으며, 그들의

 

가르침은 다른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도서들은 기원전 8세기에서 2세기까지 쓰여졌습니다.

 

 

 

기원전 8세기에는 아모스 (Amos), 호세아 (Hosea), 이사야 (Isaiah), 미가 (Michah) 서 등이 있었습니다. 아모스서는 아모스가 사회부정을 비난 한 것으로 유명하고, 호세아서는 자신의 종교적 타락 때문에 (우상숭배자 매춘부와 결혼했기 때문에) 겪는 육체적 고통과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백성들이 품위를 손상시켰기 때문에 마음 아파하시지만 그들에게 또한 사랑을 베푸신다는 내용으로 유명합니다.

 

 

 

이사야는 정치 역사가로서 왕과 협의를 하고 업무를 관장하는 뛰어난 사도이기도 합니다. 그 개인의 저서 외에도, 기원전 3세기까지 제자들이 그의 성서를 출판하였는데, 그 안에는 불의에 대한 저항,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추방 당시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할 때 해방 선언 등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호세아와 이샤아의 경우 대낮과 같이 분명한 정치적 고찰과 동일한 사도 의도를 분명히 지적할 수가 있습니다. 이사야와 동시대 사람인 미가의 설교는 똑같이 보통 생각을 따르고 있습니다.

 

 

 

기원전 7세기 스바냐 (Zephaniah), 에레미야 (Jeremiah), 나훔 (Nahum), 하박국 (Habakkuk) 등은 자신들의 설교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에레미야는 순교자가 되었으며, 그의 책을 또한 에레미야 애가 (Lamentations) 의 저자로 생각되는 바룩 (Baruch) 이 수집하였습니다.

 

기원전 6세기 초, 바빌론으로 추방당한 동안에 사도들의 활동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에스겔은 자기 형제들에게 희망을 주는 위로자로서, 그의 견해가 유명합니다. 오바다 (Obadiah) 서에서는 정복당한 예루살렘의 비참함을 다루고 있습니다.

 

 

 

기원전 538년에 끝난 추방 이후에는 그 곳의 사원을 재건하려는 학개 (Haggai) 와 스가랴 (Zechariah) 가 사도활동을 다시 시작합니다.

 

이것이 끝나자 말라기 (Malachi) 라는 이름으로 저작이 계속됩니다. 그 안에는 정신적인 면을 강조하는 여러 신탁이 들어있습니다.

 

 

 

구약성서에는 요나 (Jonah) 서를 실제 경전으로 언급하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이를 사도서로 포함하였습니다. 요나 서는 중요한 한 사실, 즉 신의 뜻에 반드시 복종하라는 이야기입니다.

 

다니엘서는 세 언어, 즉 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기독교 주석가들에 따르면, 이 책은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당혹하게 하는’ 묵시록 (Apocalypse) 입니다. 아마도 기원전 2세기 마카베오 (Maccabaeus) 시대 작품으로, “그 저자는 자기 민족에게 ‘비참한 혐오’ 의 시대에 구원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확신시켜서 굳건한 믿음을 계속 가지길 바랬다. (E. 야콥)”

 

 

 

시편과 잠언

 

이 책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문학적 통일을 위한 선집입니다.

 

시편은 무엇보다도 히브리 시의 가장 위대한 기념비입니다.  다윗이 그 대부분을 썼으며, 나머지는 성직자 드르이 것입니다. 그 주제는 찬양과 기원과 명상이고, 기도서로도 역시 유용합니다.

 

지혜와 경외서로는 욥기가 가장 뛰어나며, 아마도 이 책은 기원전 400-500년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원전 6세기 초 예루살렘 함락 당시 ‘에레미야 애가 (Lamentations) ’ 의 저자는 당연히 에레미야 (Jeremiah) 일 것입니다.

 

신의 사랑을 주로 풍유로 읊조린 아가 (Song of Songs), 솔로몬과 현명한 법관들의 말을 모은 잠언 (Proverbs), 그리고 지상에서 행복과 지혜를 논의하는 전도서(Ecclesiastes, Koheleth)를 다시 한 번 언급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한 권으로 통합되기 전에 극히 다양한 출전을 이용하여, 적어도 7세기를 걸쳐 오면서 기록된 매우 상이한 내용이 담긴 선집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이 선집이 수세기 동안 분리할 수 없는 전체를 구성하고-공동체에 따라 몇 가지 다양한 특성을 지니면서- 어떻게 유대 기독교의 계시 경전이 될 수 있었을까? 이 책을 그리스어로 ‘정전(canon)’ 이라고 하는데, 그 안에는 파악할 수 없는 개념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혼합이 기독교 시대가 아닌 유대교 시대에 일어났으며, 이미 공인한 책에 나중 책들이 추가되기 전, 기원전 7세기경 아마 그 기본 단계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토라 라는 처음 다섯 권이 언제나 영예의 자리를 차지 했음을 주지해야만 합니다.

 

일단 사도들의 선언 (비행에 따른 벌의 예언) 이 끝나자, 이미 공인한 책을 자기 경전에 추가하는 데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사도들이 제시한 확실한 희망에도 해당되었습니다. 기원전 2세기까지, 사도들의

 

‘정전’이 생겨 났습니다.

 

기도서 시편 같은 또 다른 책에 에리미야 애가, 지혜서와 욥기 등이 계속해서 합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유대 기독교였던 초기 기독교를 다니엘루 (Danielou) 추기경 같은 현대 저자들이 주의깊게 연구하고 있으며 기독교가 바울의 영향을 받기 전 까지에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구약성서의 유산을 받아들였습니다.

 

 

 

복음서 저자들은 매우 엄격하게 구약성서에 집착하였지만, ‘외경 (Apocrypha)’ 을 배제하여 복음서의 ‘정화’ 가 이루어진 반면, 구약성서에 대해서는 똑같이 필요한 선별을 생각하지 않고 거의 모두를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적어도 서양에서는 중세가 끝나기 전 어느 누가 감히 그처럼 뒤죽박죽 혼합된 내용을 논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 대답은 거의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중세 말부터 근세 초에 이르기까지 한 두 명의 비판자가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이미 주지하다시피, 교회당국은 언제나 자체의 길만을 계속 고수하였습니다.

 

오늘날 순전한 경전비판을 위한 조직이 있고, 또한 교회전문가들이 방대한 내용을 조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실정이지만, 완곡한 말투로 ‘난해함’ 이라고 말하는 곳 이상은 깊이 파고들지는 않습니다.

 

 

 

또한 현대 지식에 비추어 이를 연구할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역사와 병행하여 연구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 원칙으로 역사와 성경 이야기가 일치한 것 같을 때에만 – 지금까지 과학적 개념으로

 

철저하고 솔직하게 비교한다는 언질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태까지 별 문제없이 남아있는 유대 기독교 경전의 신빙성에 대해 문제로 삼을 경우 오히려 사람들을 논쟁으로 끌어들이기만 할 뿐이라고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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