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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에대한 생각-2편

두 번째 장

캐나다에서의 히잡 착용의 인식과 경험

 

내가 히잡을 착용하기 시작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캐나다 퀘백주에 위치한 몬트리올에 사는 두 명의 학생들이 수업 중 히잡을 벗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에 되돌려 보내졌습니다.

 

이와 같은 사건은 캐나다 전역에 걸쳐 히잡의 의미와 히잡이 캐나다 사회에서 차지하는 지위에 대한 논란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캐나다에서 히잡에 대한 논란은 히잡 착용이 궁극적으로 ‘외국인’의 관습이며 캐나다인 들은 이러한 행동에 대해 수용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데서 기인합니다. 한 캐나다 방송국의 조사 보고서는 ‘과연 히잡은 캐나다의 일부로 수용되는 리트머스지를 통과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학교에서 쫓겨난 여학생들이 캐나다 시민권을 가진 캐나다인 이였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더 글로브 앤 메일‘ 언론에 실린 제프리 톰슨의 사설에서 그는 무슬림 여성들이 원한다면 히잡을 쓸 권리가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 하였습니다. 이 주장은 이내 히잡은 무슬림 여성들의 억압된 삶의 증표라고 주장하는 두 명의 격앙된 여성들의 반응을 촉발시켰습니다.

 

이러한 논란들 속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부분인 히잡을 실제 착용하는 무슬림 여성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무슬림인 캐나다 여성 중 에서 히잡을 착용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여러 논란들에 가로막혀 생긴 빈 공간을 그들 목소리로 채워보고자 합니다.

 

단지 이들의 말 몇 마디로 나는 무슬림 전체가 똑같이 생각할 것이라는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는 않을 것 입니다. 나의 목적은 단지 단 몇 명의 무슬림 여성들의 히집에 대한 의견을 자세히 그리고 완전하게 이해하고 싶었을 뿐 입니다.

 

나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와 그 근교에 거주하는 15명의 수니파 여성들과 한 명의 이스마일리 여성을 1996년 5월에서 7월 사이의 기간을 두고 취재하였습니다. 16명의 여성 중 여섯 명은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 들 이었습니다.

그들 중10명은 항상 히잡을 착용하였고(이중 5명이 개종자였습니다.) 5명은 가끔 히잡을 착용하였으며, 전체 여성 중 단 2명만이 앞으로 살아가며 어느 시점에서도 히잡을 상시 착용하고 싶지 않다는 의견을 보였습니다.

 

15명의 수니 여성들 중 단 1명만이 하루 다섯 번 예배드리지 않았고 이스마일리 여성을 포함한 나머지 여성들은 모두 종교적인 사람으로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북미 지역에서 극히 소수에 해당하는 무슬림으로서 성원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는 몇 안 되는 무슬림들 이였습니다. 취재 여성들의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그들의 가명의 사용했습니다.

 

히잡에 대한 인식

 

1. 왜 히잡을 착용하는가?

히잡을 착용하는 무슬림 여성들은 종종 캐나다 인 들로부터 이 같은 말을 듣게 됩니다. “여기는 캐나다야. 자유로운 곳이니까 굳이 히잡을 쓰지 않아도 돼” 이러한 조언이 어떤 방식으로 전해졌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재미난 경험일 수도 또 불쾌한 경험일수도 있습니다.

 

남아시아에서 온 학부 생 누르는 학교 도서관, 매점에서 생각하기도 싶지 않은 경험을 했습니다. 어느 날 매점에서 한 나이 든 여성이 그녀를 향해 매우 호전적인 어투로 왜 캐나다에 ‘퇴보’를 가지고 오는 것이냐고 따졌기 때문입니다.

그 여성은 누르를 향해 캐나다에서 여성 권리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 왔다고 강조하며 히잡은 그러한 노력들을 모두 물거품으로 만들 것이라고 쏘아붙였습니다. 누르가 자신은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이나 반감을 사는 타깃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이유로 히잡을 착용한다는 점을 짚어주자 그 여성은 조금은 진정하는 듯 했지만 여전히 누르의 말을 납득하지 못하고 이유야 어찌되었든 누르가 히잡을 쓰지 말아야만 한다고 여전히 믿고 있는 듯 했습니다.

 

누르는 자신이 캐나다에서 히잡을 착용하는 이유를 비 무슬림 캐나다 여성들에게 설명할 때 종교적인 이유를 들곤 하였습니다.

히잡을 거의 착용하지 않는 파티마를 비롯한 모든 취재 여성들이 히잡 착용을 종교 일부분으로 인식했습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히잡 착용이 종교의 일부라고 생각하게 하였는지 질문했을 때 그들은 모두 “꾸란에 나와 있다.” 또는 “알라가 꾸란에서 명령하신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영국출신 개종자인 바시라 또한 여성이 사춘기가 되면 그의 얼굴과 손을 제외한 모든 곳은 가려야 한다“라는 명령을 인용하였습니다.

 

2. 남성중심의 전통적인 해석?

히잡 착용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에 관한 연구를 한 대부분 여성학자들은 히잡을 착용하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그들이 인터뷰한 여성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꾸란에서 히잡 등을 착용하라는 명령이 담겨있다는 점에 의문을 품습니다.

이 학자들의 눈에는 꾸란은 단지 수수하고 검소한 옷차림을 요구할 뿐 이슬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히잡과 같은 베일을 착용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연구방향을 이와 같이 설정하는 것은 인터뷰한 여성들에 대한 무례함이라고 보여 집니다. 이는 마치 학자들 자신들이 인터뷰한 여성들보다 꾸란을 더 알맞게 해석한다고 보여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석의 차이에 대한 보다 좋은 접근법은 카람의 이집트 페미니즘 연구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카람은 이슬람주의 여성들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반면 그들의 방법론에는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슬람의 뿌리를 가지고 자란 무슬림 여성으로서 그들 이슬람의 기본인 꾸란에 대한 적법성을 부정할 수 없음과 동시에 그들이 사회적인 적용에 있어서 사용한 해석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카람은 히잡을 착용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양쪽 모두 서로가 잘못된 해석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는 점을 상기시켜 줍니다.

 

히잡을 착용하는 여성들이 잘못 된 신념의 피해자라는 주장은 서양세계에서 매우 강하게 나타납니다.

내가 대학에 히잡을 착용하고 가기 시작한 이후 동기 중 한 명이 내 친구에게 “저 친구는 자기가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니?”라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하지만 서양에서 태어나서 성장한 여성들 중 그 누구도 무슬림 사회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히잡에 관한 여러 논란들을 의식하지 않고 히잡 착용을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히잡 착용은 무슬림 세계에서 긴 역사를 가진 전통입니다. 현재의 논란들은 대부분 상대적으로 새로운 것이며, 서구와의 제국주의 시절 만남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히잡에 대한 부정적 평가들과 그로 인한 차별 및 희롱 등을 감내해야 하는 점 등을 보아 캐나다에 살며 히잡을 착용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인터뷰 한 여성들만 해도 히잡을 착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깊은 고찰 없이 매일 히잡을 착용하는 것을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히잡으로 회귀하는 움직임을 이끄는 학자들 또한 여성들이 히잡을 착용하는 다양한 이유로 정치적 지위, 경제적 이유, 종교적 신앙 등을 들고 있습니다.

 

내가 취재한 여성들은 꾸란의 여러 해석들을 고려하여 자신들에게 맞는 해석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꾸란에서 명령하는 여성들의 머리를 가리는 행위가 간결하고 확고하다고 믿습니다.

이슬람에 대한 사회의 보편적인 인식은 이슬람이 해로운 종교로써 폭력을 조장하고 여성들을 억압한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내 연구에 등장하는 취재 여성들에게 히잡은 억압도 테러도 아닌 ‘믿음’, ‘검소함’, ‘여성의 이슬람 정체성’과 하나님께 대한 복종 및 순종을 상징하는 무슬림으로서의 증표입니다. 그들은 히잡 착용을 즐겼으며 히잡을 착용하면 기분이 차분해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히잡이 사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명히 믿고 있습니다.

 

히잡이 남녀간의 불필요한 접촉을 차단해주고 여성들로 하여금 성적 대상이 아닌 인간으로서 대우 받는 느낌이 들게 하며, 히잡을 착용하는 사회에서는 질투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만약 경험을 지식의 기본으로 하는 페미니스트적 방법론이 의미가 있다면, 이와 같은 히잡의 의미 또한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하며 여성들은 그릇된 신념을 가진다는 모멸과 멸시를 받지 말아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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